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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상] 낙태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
  • 2011-06-15
  • 3252
갑론을박_낙태 허용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 이유
 
 
태아의 생명권을 사람과 동등하게 보았다면 낙태죄의 형량은 살인죄와 동등해야 할 것이며, 강간과 (임신 계획 없이) 피임하지 않는 성관계는 마땅히 살인미수죄의 수위로 처벌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모체 안에서 태아의 생명이 유지되어 출산되기까지 태아는 모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생명권과 그 법적 지위를 동등하게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낙태죄를 살인죄와 동등하게 취급할 수 없고, 태아 생명 수호의 의무를 개인의 인격권을 초과하는 정도로 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태아에게 생명권의 주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서로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낙태책임, 누구에게 있나?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 개인이 마치 도덕적 책임감이 없고,자기 삶에 벌어지는 불편함을 견디기 싫은 이기적인 존재인양 낙태 비난 여론을 조성하고, 생명보다 우선되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어떻게 있을 수 있냐며 낙태권 논쟁을 오염하는 주장이 숱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임신 종결은 태어날 아이, 이생명권의 온전함과 위대함. 세상의 어떤 권리가 감히 생명권과 이해관계를 다툴 수 있을까? 그 어떤 경
우에도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권리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을 규제하고 있는 우리법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지 않다. 요즘 많은 불임부부가 시술받고 있는인공수정은 다태아 임신인 경우 다태아 축소술을 받게 된다. 임신을 하기 위해 선택한 다태아 축소술은살인인가 아닌가? 이처럼 다툼의 여지가 없는 절대영역처럼 보이는 ‘생명권’이 실은 다분히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태아는 생명이니 낙태가살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법체계에서 태아 생명이 갖는 지위는 사람의것과 확연히 다르다.
낙태 허용 찬 성
National Assembly Review
MARCH
116
이 태어나 있는 가족과 주변인, 여성이 감내하는 삶에 대한통합적인 고찰 끝에 내리는 ‘책임있는’ 결론이라는 사실은 쉽사리 무시된다. 미혼모 출산, 10대 출산 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사라지고, 결혼여부나 나이 등과 관계없이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낙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제도와 인프라가 갖추어진다면 원하지 않는 낙태는 줄어들 것이고, 사회를 믿고 출산하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다. 100%를 보장할 수 있는 피임방법이 개발되기만 하면 불가피한 낙태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불평등하고 일방적인 남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방적, 폭력적 성관계로 인해 피임권을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다.낙태를 허용하기 때문에 낙태율이 높은 것인 양 낙태 단속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의 낙태율이 높게 나타나진 않는다. 낙태율은 그 사회의 사회보장제도, 즉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삶의 질이 높은 사회에서 낮아졌던 출산율이 다시 상승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한 사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로 UNDP에서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 여성권한척도(GEM) 등이있는데, HDI와 GEM이 높은 국가가 출산율도 높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가 저출산 국가에 속했다. 우리나라는 108개 국가 중 HDI는 22위, GEM은 65위로 OECD국가들 중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의 여성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율을 비교해보아도 여성들의 경체활동참가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 나라의 삶의 질이 높을수록, 특히 성평등한 사회일수록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는 것으로 여성의 사회적 삶의 조건이 출산율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것을 함의한다1). 그어떤 경우에도 낙태수술 음성화와 같은 여성의 건강을 해치는 위험천만한 결과만을 낳는 낙태 단속은 낙태율 감소나 출산율 제고를 위한 해답이 아니다.
 
삶의 권리, 낙태권
‘불법’ 낙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그러나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많은 낙태를 불법화하는 현행법부터 전면 재검토 하여야 한다. ‘사회경제적’이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사유는 바로 앞에서말한 ‘책임있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고려된 사유들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순간이나 배아가 세포분열하는 과정을절대화하는데 힘쓰는 것만으로, 태아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성장하여 사회적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구성원들의 삶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어떤 의무와 책임이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결과를 실천해야한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온전히 예방할 수 없고,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이상사회 또한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그 고민과 실천에는 합리적인 내용과 방식으로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내용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 윤 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 글은 2008년 「2008 릴레이시민토론」(주최: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발표한 “낙태
권, 가부장제 국가와 싸워라”와 , 2009년 「낙태 불편한 진실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주최:홍일표 의원실)에서 발표한 “생명보호 어떻게 해야할까?”의 글을 토대
로 재작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