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임신을 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무엇을 고려해야하고, 준비해야 하는걸까요?
특히 요즘처럼 저출산문제를 해결한다며 정부는 낙태방지캠페인을 펼치겠다고 하고, 프로라이프 의사회를 비롯한 낙태 반대론자들이 낙태에 대한 단속과 처벌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연 나는 나의 온전한 의지로 출산 여부를 결정할수는 있는걸까요?
상담소는 이런 고민을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 싶어서 지난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와 젠더연구소,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위원회와 함께
내가 결정하는 몸,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하는 영화상영회 “내가 임신을 한다면?”을
개최했습니다.
이번에 상영된 영화는
<더 월-If These Walls Could Talk> 와 <4개월 3주...그리고 2일> 이었는데요.
두 편 모두 여성들이 낙태를 결정하는 맥락과 고민, 낙태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드러내는 영화였습니다.
두 편의 영화는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영화 속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아서 출산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만한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해서,
또는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낙태를 결심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인 과거 미국이나 루마니아에서
합법적으로 낙태시술을 받을 수 방법을 찾기 어려운 여성들은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낙태시술을 시도하지요.
영화 속 주인공 여성들의 절박한 상황을 마주하면서
지난 2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시술 병원 세 곳을 고발조치 한 이후,
낙태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어려워지고, 비용도 높아지고 있는
한국사회가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왔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과 루마니아지만
낙태를 범죄화하는 사회 분위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의 고민이나 경험은 한국 여성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영화상영회 참가자들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낙태를 해야 하는 여성들의 절박한 상황에 같이 슬퍼하기도 하고
위험한 낙태시술을 받으며 여성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영화 상영에 이어 참가자들과 함께
임신, 출산, 낙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한국에서 낙태시술에 대한 단속과 처벌 분위기가 계속 된다면
영화에서처럼 '한국여성들도 안전하지 않은 낙태시술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했습니다.
또 '영화 속 여성들처럼 만약 자신이 임신을 한다면,
출산 여부를 과연 나의 온전한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막막함을 토로하기도 했고요.
낙태를 경험한 한 참가자는
'비혼 여성의 임신과 낙태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얼마 전 출산을 했다고 밝힌 참가자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심각하게 출산여부를 고민했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낙태를 둘러싼 현재의 논의가
여성의 현실이나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만한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단지 태아의 생명의 문제로만 집중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임신, 출산, 낙태에 대한 논의에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이 보다 폭넓게 드러나야 한다는 의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임신, 출산, 낙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많은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여성의 몸과 삶의 권리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앞으로의 낙태 논의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나 국회의원보다
임신, 출산, 낙태의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리고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낙태논의의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대부분의 낙태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많은 여성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현행법도 재검토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자신의 삶의 계획에 따라
언제 누구의 아이를 몇이나 낳을 것인가를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