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와 함께한 여름 결산 보고서 - 2017 청년젠더활동가 활동 후기
상담소에서의 청년젠더활동가 활동을 마치게 된지 열흘 남짓이 되었습니다. 처음 상담소에 가던날부터 땀이 뻘뻘 나는 날씨에 익숙해지는 법을 익히곤 했는데, 그 사이에 날씨는 바뀌어 긴 팔을 입어도 감기에 걸릴 듯 합니다. 저는 지난 7월 3일부터 8월 18일까지, 40일 정도의 시간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출퇴근했습니다. 활동을 마친 지금, 상담소가 위치한 합정역 7번 출구 일대가 제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청년젠더활동가’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며 활동했던 시간이 사실은 그리 길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맞이하는 환절기를 싱숭생숭하게 보내야 할 정도로 제게는 큰 의미를 남겼습니다. 그 시간을 나누고자 이렇게 후기를 남겨 봅니다.
올 초에 저는 이전에 하던 활동을 그만두고, 평일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치를 찾기 힘든 일에 하루하루 피곤하게 보내면서 뭔가 악을 쓰듯이 여성주의 강연을 들으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친구를 통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청년 여성에게
‘청년젠더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여성단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민단체 상근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제게 여성주의 단체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없는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평소 공동체 내 성폭력 문제를 마주하며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을 풀고 싶기도 했지요. 조마조마한 선발과정을 지나 다행히 선발되었고, 여러 단체들 중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무고죄 재판을 방청했던 법원에서의 하루
▲ 출근 이틀 차였던 7월 4일, 유명연예인 박OO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재판을
방청하고 먼저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 당일 재판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활동기간 중 무엇보다 가장 많이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법정을 방문했던 시간인 것 같습니다. 활동을 시작한지 불과 며칠 만에 유명연예인 박OO의 성폭력 피해 여성 중 한 분에 대한 무고죄 재판을 방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1심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루 종일 법정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성폭력 무고죄가 무엇인지, 어떻게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였기에, 피해를 호소한 자에게 이러한 상황 또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은 들어보았지만, 검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발언들을 직접 마주하니 그 무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기도 했습니다.
꼭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이 그간 어떤 곳들에서 어떤 이들을 지원했을 지, 왠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누군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밤 늦게까지 법정을 지키는 여성주의자들과의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당시 피고인이 된 피해 여성의 변호를 맡은 이은의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며, 성폭력 사건과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일반적 시선이 내게도 얼마나 익숙한지, 하지만 그것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다르게 뜯어봐야 하는지 반복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유흥업소 종사자였던 피해 여성의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이렇게나 큰 차이가 난다는 것에 거듭 놀라게 되었습니다. 수업을 듣는 것 같은 하루였고, 저에게도 과제가 주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당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에 대응하고 있는 피해 여성의 의연함을 보게 된 것도 저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자원활동가 분들과 함께했던 퀴어문화축제
▲ 퀴어퍼레이드 행진을 기다리면서 촬영한 한국성폭력상담소 깃발
비 오는 날의 퀴어문화축제도 기억에 남습니다. 참여자로서 축제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부스 운영을 같이 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자원활동가분들과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한 자원활동가 분께서는 여성주의를 배우면서 성소수자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 무지했던 자신을 반성하던 와중에 자원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스스로를 ‘앨라이’라고 소개하게 된 그 분을 생각하며, 사회에서 어떤 기회들이 필요하고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청소년 자원활동가분과도 함께 부스를 홍보했는데, 그 분의 엄청난 활력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삶의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다양한 여성주의자들과 연대의 자리에서 만나기를 계속해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100시간 만큼의 고민,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다른 여러 실무들도 있었지만, 사실 활동 기간의 대부분은 올해 상담소에서 7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진행한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보조하는 것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안젤라홀에서 35명의 수강생 분들과 평일을 내내 함께했습니다. 지구력이 필요한 일정이었어요. 매일 아침 출석체크를 하면서 수강생분들과 한 분 한 분 인사를 나누었지만, 더 깊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페미니스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 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 약간은 설레기도 합니다.
한 번도 여성주의나 성폭력 문제를 체계적으로 배워보지 못했으니까 모르는 게 많으리라고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을 들으면서 어쩜 이렇게나 좀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새로이 알게 되고 놀랄 수밖에 없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낮은 성폭력 사건의 신고율이나 기소율, 성폭력의 법적 구성요건인 폭행 협박과 최협의설의 문제는 기본적인 내용이었을텐데도 충격적이었습니다. 피해를 신고하기 어렵게 하는 무고죄 역고소나 명예훼손 문제도 말이죠. 왜 이것들을 이렇게나 몰랐어야 했을까요? 한 강사님께서 수강생들을 독려하고자 “한국에서 성폭력 문제를 100시간동안 공부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자부심이 생기는 동시에 이것을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것인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돌이켜보면 수강생 분들과 함께 분노하고 가슴을 치던 순간들은 그런 고민들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제29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기본교육을 마치고 수강생분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수업 시간에 우리가 싸워야 할 것으로 이야기된 것들, 그러니까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기대하고 강요하는 것이나, 피해자가 놓인 구조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성폭력을 해석하려 하는 것, 성폭력 피해를 절대 이야기하거나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 모든 것들을 저와 분리하고 싶었지만 실상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나 스스로가 무결한 여성주의자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한편으로 경계하면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다시 떠올리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피해생존자의 힘을 믿는, 이런 것들이 행동으로 가능해진다면 좋은 성폭력 사건 지원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났다고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지는 않았습니다. 교육도 활동도 끝난 지금,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 100시간을 느리게 되새김질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연구소 울림에서 근무했던 자리. 환영 문구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상담소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을 글자로 적어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위에 서술한 활동들만큼이나 좋았던 건 그냥 일하다가 다른 활동가분들과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셨던 시간들입니다. 활동의 고민이나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이나 열정 같은 것을 느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겪어보지 못한 상담소의 다양한 활동들도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의미에서, 활동을 마친 지금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느껴집니다. ‘청년젠더활동가’로서의 저의 상담소 업무는 끝났지만, 또 다른 저의 모습으로, 또 다른 활동의 모습으로 상담소와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 글은 청년젠더활동가 이세린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