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X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 10회 연속 기고
2017년 12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여성신문은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라는 타이틀로 총10회에 걸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활동가들의 연속 기고를 실었습니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작가
1회 발랑 까진 년 혹은 순수한 소녀라는 이분법 깨자 (변예진 /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청소년과 여성의 성은 일종의 금기로 취급된다. 학교에선 연애를 금지하거나, 성적 행동을 규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교 내 성교육은 ‘건전한 이성 교제’, ‘책임감’, ‘순결’, ‘자제력’을 강조해 성행위에 대한 공포와 고정관념을 만들어 낸다. 일선 성교육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리 없는 비명’이란 영상은 낙태반대진영에서 1984년에 제작한 조작 자료다. 교육에 부적합한 영상을 통해 임신중절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을 여성들에게 심고 순결을 강조한다. 여성들은 학습을 받으면서 임신과 임신중절에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엔 낙태가 끔찍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합리적인 지식으로 구성된 교육을 제공 받을 학습권에 대한 침해이다. 나는 더 다양한 교육을 받고 싶다. 이성과, 또는 동성과, 또는 혼자서 어떻게 성행위를 해야 더 좋은지, 모두에게 다 성욕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비롯해 다양한 피임법, 임신 과정과 출산 후 몸의 변화는 어떤지 등을 알려주는 교육을 원한다.
2회 임신중절 가르치지 않는 의대, 여성 건강권 외면하는 사회 (박건 /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현재 한국 사회는 임신중절을 불법화하고, 여성을 처벌하는 낙태죄를 통해 임신중절을 “소외질병화”시키며, 임신중절을 선택한 수많은 여성을 위험하고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환경에 노출시킴으로써 여성의 건강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만 유행하는 질병이 그러하듯이, 한국에서의 임신중절 관련 의학기술과 지식은 아무도 애써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더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결국 여성에 대한 건강의 위협, 경제적 불평등으로 나타난다. 임신중절이 불법이다 보니, 산부인과 커리큘럼이나 임상 실습, 수련과정에서도 임신중절 시술을 교육하지 않는다. 수련을 마치고 임상에 나가서야 인공임신중절 실태와 최신 지식을 접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임신중절이 일정 수준에서 합법화된 미국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중 97%, 산부인과 레지던트 중 36%가 임신 제1/3분기 임신중절 수술 경험이 없었다.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과대학 교육 프로그램 중 소수만이 의학 수련에서 임신중절 교육을 제공하고 있었다.
3회 그의 허락을 기다리는 동안 (박지영 / 페미몬스터즈 활동가)
우리는 이제까지 ‘찬성 혹은 반대’, ‘여성의 결정권 혹은 태아의 생명권’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낙태죄를 이야기 해왔다. 나는 누군가의 찬반 의견 따위와 상관없이 안전과 생명을 위해 기꺼이 불법이 됐다. 생명을 가볍게 여겨 임신중절을 결정하지 않았다. 내겐 어떤 결정권도 오롯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과 맥락들,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통하여 낙태죄 사안에 접근해야 한다. 피임, 섹스, 출산, 임신중절, 양육까지 모든 논의의 주체와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일을 멈춰야 할 것이다. 현행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 남성의 문제도 아니며 우리 모두가 관심 갖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다. 그래서,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4회 '정상적' 시민만 탄생시키려 한 국가, '낙태죄' 물을 자격 있는가 (최나은 /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 장애인을 비롯해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위협받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비장애 이성애 성인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장애여성, 청소녀, 비혼여성, 여성 노숙인, HIV 여성 감염인, 가난한 여성, 저학력 여성, 비이성애 관계에 있는 여성들의 성적 실천을 통제하고자 하며, 이들이 임신했을 때 쉽게 중절을 권한다. 이런 차별적인 행태는 이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어렵게 하며, 이들이 ‘무책임한’, ‘낳지 말아야 할 사람을 낳는’ 사람들이라는 낙인을 강화한다. 국가가 낙태죄를 통해 태어나도 되는 존재 혹은 태어나선 안 되는 존재로 시민을 선별하는 한, 소수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계속될 것이다.
5회 '낙태죄', 협박의 도구가 되다 (홍연지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낙태죄’는 관계 유지, 여성의 임신 유지가 지속되지 못한 원인이 남성에게 있더라도 그 ‘남성이’ 여성을 고소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게 한다. 현행법상 여성만 처벌 받는 점을 악용한 남성들이 ‘낙태죄’를 협박의 도구로 쓴다. 이와 같은 비극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 C는 말한다. “혼자만의 고통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흘러 자신의 경험을 주변에 털어놓자,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이 너무나도 많았다”고. 그는 결국 낙태죄가 문제라고,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6회 여성의 삶을 대가로 지불한 '평범한' 삶 (조재연 /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
임신, 출산, 양육의 경험은 결코 연속적이지도, 단일하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그것은 개인의 과업이나 의무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이며, 성과 재생산의 권리, 건강권, 돌봄권, 가족구성권, 안전권, 노동권 등 일련의 권리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임신과 출산, 양육의 문제에 대해 “덮어놓고 나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했다가 “아파트 줄게, 애 셋 낳아라”는 식의 인구정책의 수단으로 주요하게 접근해왔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얄팍한 유인책으로 ‘출산 억제’ 혹은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칠 것이 아니라 차별이나 배제, 강압과 폭력 없이 임신, 출산, 양육에 관한 권리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성별, 장애, 질병, 연령, 경제적 상황, 지역적 조건, 혼인 여부, 교육 수준, 가족 상태, 국적, 이주상태, 성적지향 등에 따른 복합적인 차별과 다양한 필요에 대응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성평등과 인권의 관점에 입각해 포괄적이면서 개인 또는 집단의 특성을 고려한 접근이 중요하다.
7회 교회는 무엇을 지켰을까 (달밤 / 믿는페미 활동가)
그러니까 교회는 낙태죄를 지지함으로써 스스로 ‘수호한다고 믿고 있던’ 생명권을 지킨 게 아니다. 국가가 이미 법체계를 이용해 생명을 선별하고 있으면서도, 이 구도를 가리고 여성의 임신 중지에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낙태죄를 수호했을 뿐이다. 낙태죄가 배우자에게 임신중단 수술의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쥐어주고,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여성만을 독박처벌 하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매우 상징적이다. 이제 교회는 더이상 국가가 자기의 모순을 숨기고 여성만을 희생양 삼도록 작동하고 있는 낙태죄에 협력해서는 안되며- 여성들이 생명 대 결정권의 구도가 아니라 불평등하게 기울어진 사회를 상대로 스스로의 생명권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점을 들어 낙태죄 폐지에 동참해야만 한다.
8회 국가주도 가족계획, 그때도 지금도 틀렸다 (박은주 /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 재생산은 기본이 되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그 접근법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 전체 맥락은 무시한 채 단지 임신중단이라는 하나의 행위를 부각시키고 범죄화하는 것으로 출산율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재생산을 과정으로 보지 않고 낙태를 금지시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얄팍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재생산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이를 국가가 보장하는 것만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안일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를 위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 낙태죄 폐지는 사회구성원의 재생산 문제를 풀어가는 실질적 논의를 시작하는 지점이다. 다양한 사회적 조건 안에 위치한 개인의 건강, 임신, 출산, 양육, 가족 구성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바라보며 보다 큰 틀 안에서 논의를 하는 것이 불필요한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서는 생산적인 논의다.
9회 권리 그 이상의 요구,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나영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그래서 우리의 낙태죄 폐지 요구는 이제 단지 ‘임신을 중단할 권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정상성과 효율성의 기준에 따라 생명을 관리·통제하고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면서,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낙태죄를 유지해 온 그 구조를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 사회가 원하는 생명이 아니라, 우리의 총체적 삶을 보장하는 과정으로서의 생명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는 게 행복’이라는 요구에 얽매이고 통제되는 삶이 아니라 홀로, 혹은 누구와 어떠한 형태로 삶의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가든 그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이다.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그 변화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낙태죄 폐지는 단지 임신 여부에만 관련된 요구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임신중지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되듯이, 그 변화를 위한 요구의 책임도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다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함께 낙태죄를 폐지하자. 그래야 변화가 시작된다.
10회 '낙태'죄 및 모자보건법 상 예외 조항의 한계 (최영지 /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이처럼 과거를 뒤돌아보면 국가는 ‘낙태’죄 적용 여부를 시대적 필요에 의해 판단해 왔다. 태아의 생명권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의 몸과 안전에 대한 가치가 시대적 조건에 의해 자의적으로 유지돼 온 것이다. 국가 스스로 인구조절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근거로 임신중절을 허용했음에도 오늘날 개인의 임신중절은 불법으로 감시되고 있는 현실은 모순적이다. ‘낙태’죄의 유지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여성의 몸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현실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임신중단은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일다 X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 3회 연속 기고
2018년 2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일다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이라는 타이틀로 총 3회에 걸쳐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 활동가의 연속 기고를 실었습니다.
1회 '인권이 아닌 인구'에 따라 임신중단 담론이 바뀌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①낙태죄의 역사 살펴보기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임신중단은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여러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임신중단의 불법화는 임신중단율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낙태’죄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와 접근권을 빼앗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이 터무니없는 비용으로 위험하고 불법적인 임신중단 수술에 내몰리고 있다. 임신중단이 합법인 나라에서는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간단한 알약 복용으로 임신중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2회 '저출산 문제' 해결하려면 '낙태죄'가 필요하다고?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② 임신중단에 관한 Q&A
국가가 ‘낙태’죄와 예외조항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여성은 임신중단을 하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또한 ‘낙태’죄는 임신중단을 한 여성만 처벌하는데, 예외조항은 여성의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여성의 몸 안에서 장기간 벌어지는 임신의 지속 또는 중단 여부에 대하여 왜 본인의 결정이 아닌 배우자의 동의를 강제하는가? 비혼여성도 예외조항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혼여성만을 전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3회 ‘낙태죄’ 폐지가 끝이 아니야…패러다임을 바꾸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③ 성‧재생산권을 위한 과제
‘낙태’죄가 폐지된 이후에는 새로운 성교육 패러다임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 이상 임신에 대한 공포로 여성의 성을 억압해선 안 된다. 그동안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 억지로 출산을 해야 하거나, ‘낙태’죄라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야 하는 이중구속에 시달렸다. 완벽한 피임법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낙태’죄는 여성에게 금욕주의를 강제하는 수단이 됐다.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한 자기통제감을 떨어뜨리는 주범이었다. 그러나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이 가능해지면 여성들은 지금처럼 심리적, 정서적으로 위축되지 않고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성관계와 피임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 없이 임신 가능성에 대한 위협만으로 성교육을 ‘퉁’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