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단호한 시선]
언어, 사람, 나를 새롭게 알려준 페미니즘
#십대페미니스트와_스쿨미투를_응원합니다.
학교 안에 있거나 학교를 졸업한 많은 여성들/소수자들이 용기내어 학교 내의 고질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목소리에 우리의 목소리를 더해 더 평등한 학교로 변화하자고 외치고 있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교실 안의 성차별과 성폭력, 여성혐오 문화를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 #스쿨미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그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느꼈던 해방감을 기억합니다.
여성으로 혹은 소수자로 자라면서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주변을 배회하며 느꼈던 외로움과 좌절감, 분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거든요. 여성을 성적인 대상 혹은 물건으로 취급하는 대중문화에서 느꼈던 불편함, 여성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참고 견뎌야 했던 불합리한 대우,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차별의 장면을 내 경험으로 언어화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되었던 순간이었어요. 내가 깨닫기 이전에, 이 모든 불편과 불합리를 느꼈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상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면서,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내 생각이, 내 느낌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구나’ 깨닫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죠.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도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 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반갑고 기뻤습니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세상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죠. 당신들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세상이 사실은 매트릭스처럼, 누군가 만들어 놓은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당연한 것”이 배제하고 있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페미니스트의 말과 글을 열심히 읽고 또 열심히 퍼날랐죠.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 말들을 듣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내가 느끼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페미니즘의 언어로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겨왔던 것들을 돌아보고, “누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나?”를 묻는 순간,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웃자고 한 얘기에도 죽자고 덤벼들고, 당연한 것을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골칫덩이’, ‘자기주장이 센 여자애’, ‘프로불편러’, ‘트러블메이커’로 불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나에게 “왜”냐며 질문을 쏟아냈지만,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이해하려 하지도 않은 채 나를 멀리했어요. 나를 응원해 줄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를 말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나는 외톨이가 되었지만, 페미니즘을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아니,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내 감정과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손에 쥐었고, 내 목소리를 갖게 되었거든요. 이제 더 이상 화날 때, 불편할 때, 불쾌할 때, 이상하게 느껴질 때 참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잘못된 것은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소수자이기 때문에 차별과 인권침해를 경험한 사람들을 응원할 수 있게 되었고,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에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았고, 나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것이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선물이에요.
지겹고 끔찍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일상의 성폭력과 성차별을 드러냈던 #미투의 파도 앞에서, 어떤 이는 볼멘소리를 했고, 어떤 이는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고, 또 어떤 이는 ‘여자 빼고’ 일 해야한다고도 했죠. 그때 우리가 외치던 #미투, #위드유는 광장을 가득 채웠어요. 당장 그 차별과 폭력을 멈추라고 포스트잇으로, 대자보로, SNS로 말했죠. 가족에게, 친구에게, 선생님에게, 동료에게, 사장에게, 가해자에게 말했어요. 그들은 꿈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흔들리고 있고, 위협을 느끼고 있고, 그들만의 카르텔에 크고 작은 균열이 나고 있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거세진다는 것은 철옹성같은 그들만의 리그가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죠.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거에요. #미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힘이 들 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하죠? 페미니스트가 힘이 들 땐 전화기를 들어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불러요. 함께 웃고 떠들고 소리쳐요. 광장으로 나와 함께 외쳐요! 우리는 여기 있어요! #미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죠.
2018.7.9.
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 #위드유 #함양고 #노원여고 #문영여중 #용화여고 #대명여고 #정의여고 #진명여고 #스쿨미투 #십대페미니스트를_응원합니다
댓글(1)
안녕하세요. 이번 판결에 너무 걱정스러워 이 위원회에 찾아왔습니다. 이번 안희정사건이 무죄가 될경우, 회사내 유부남상사들의 성관계요구는 더 노골적이 될 것임을 예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윗상사를 모시는 부하직원인 경우 그 회사상에서 살아남기위해 눈감을수도 있는 일인데
회사내 여성들의 인권에 심각한 일이 아닐수없습니다. 이 판결대로라면 부하직원이 바로 성폭력당했다고
신고하여야 하는데. 그럼 자기위치에서 해직해고 당할 위험이 전혀없을까요? 그 회사에서 그 일을 하려면 모른척 지내야할수 밖에 없는 일인데
이런 판결로 상사들의 성관계요구는 능글맞게 또는 직위에 약한자에게 더 성행하게 되겠네요.
나중엔 성관계 응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판결로 인해 사회적 파장을 예견해본 내용이며,
안희정사건은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목사 사건과 이치를 같게 봐야합니다.
신도들은 성폭행 하루덩시에도 목사를 존경하고 하는님처럼 따를 뿐입니다. 나중에
그 상황에서 벗어나 현실파악이 되면 그때 비로소 내가 당했구나를 인지할 뿐입니다.
성폭행 당할 당시 존경하고 믿고 따랏다고, 목사는 사랑이었다. 성폭행은 아니다.주장하는
꼴입니다. 이것이 똑같이 판단되기 위해선 안희정의 또다른 피해자를 찾아야합니다.
피해자들의 한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위원회에서 이사실을 같이 찾아 다음 항소 준비를 해주십시오
이글을 보고 같이 대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