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토론회]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후기
2018년 7월 26일 오전 10시, 창비 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긴급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안희정 사건의 재판 결과가 실시간으로 보도됨에 따라 피해자에게 무분별하게 가해지는 2차 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위력 간 성폭력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 전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하고, 350개의 시민 단체로 구성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본 토론회를 주최하였습니다. 김은실님의 사회로 토론회가 진행되었고, 김수아, 배복주, 김언경, 장임다혜, 권김현영 총 다섯 분이 차례대로 발제해주셨습니다.
사회 – 김은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교수)
발제 1 –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첫 번째 발제는 ‘미디어 보도 윤리와 2차 피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성폭력 사건 보도는 일반적인 사건을 보도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복합적인 윤리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언론의 보도 행태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성찰 없이 가해자 중심적 시각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이 일방적 주장을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행실이나 인격에 대해 언급하며 피해자의 ‘순수함’을 심판하려 드는 가해자 측의 발언을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말이 주장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인 양 전달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피해자가 사실은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식의 프레이밍을 반복하며 2차 가해를 가중시킨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나아가 언론이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주목했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위력’에 의한 성폭력 개념과 폭력 피해자 유책론에 대한 문제의식임을 언급하였고, 성폭력 보도와 관련된 저널리즘 윤리를 구축할 필요성을 촉구하는 말로 발제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발제 2 –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장애여성공감 대표)
두 번째 발제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경과와 쟁점’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배복주 발제자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공동대책위원회의(이하 공대위)가 어떻게 대응하였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린 이후 허위 사실이 담긴 ‘찌라시’들을 고발하고, 재판 방청에 나온 피해자가 “이례적”이라는 기사가 수동적인 모습의 ‘피해자다움’을 재생산한다고 지적하는 등, 잘못된 언론 보도 행태에 맞서 싸워왔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증언 중 반복적으로 헛기침을 하며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증인으로서 편향된 사람들을 고르는 안희정의 태도 역시 비판했습니다. 안희정 측 증인들은 피해자를 ‘거짓말하는 사람’, ‘안희정을 좋아한 사람’으로 몰고 가며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받게 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공대위는 정정 문자와 성명을 통해 증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노력해왔고, 공적인 업무를 사적화시키면서 피해자에게 개인적인 책임을 묻는 언론을 비판해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대위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탄원서와 의견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연서명, 탄원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발제 3 –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세 번째 발제는 ‘‘국민 알권리’ 빙자해 ‘피해자 인권침해’하는 안희정 성폭력 공판보도’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언경 발제자는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안희정 재판을 모니터 해본 결과를 바탕으로 언론이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언론은 성폭력 재판 보도를 생중계 수준으로 전함에 따라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 받으며, 사건에 대해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언론이 가해자 측에 편향된 정보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이를 객관적 사실인 양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성폭력 재판 특성상 사적 자료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피해자가 제출한 산부인과 진료 기록의 내용을 기사 제목에 선정적으로 활용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그 외에 “고학력 여성”, “직접 호텔 예약” 등 가해자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데에 사용된 증언을 그대로를 보도하는 실태, ‘피해자 대 가해자의 부인’의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행위 역시 지양되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인권 침해 보도를 멈추고 보도 윤리를 준수해줄 것을 강조하며 발언을 마쳤습니다.
발제 4 –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네 번째 발제는 ‘업무상 위력간음에서의 ‘위력’ 해석’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장임다혜 발제자는 법적인 위력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살펴본 뒤, 기존의 위력 해석이 협소하게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며 위력에 대한 새로운 법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미성년자 및 장애인 대상 위력간음 사건에서 기존의 위력 판단 기준은 최협의 폭행협박에 이르지 않는 유형력의 행사와 저항행위를 주요 요건으로 삼고 있는데, 강간죄보다 법정형이 낮은 업무상 위력의 경우에서도 이를 동일하게 적용하게 되면 강간죄와 업무상 위력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안희정 사건과 같은 업무상위력간음, 즉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에서는 피해자-가해자 관계를 비롯한 객관적인 사정을 위력 판단의 요건으로 검토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를 종속시킬 수 있는 행위자의 우월적 지위가 존재하는지를 위력 판단의 객관적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고, 우월적 지위 여부에 대한 판단은 행위자와 피해자의 업무 등 관계에서 부당한 요구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 요구를 피해자가 감내할 것이라는 행위자의 인식이 있었는지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발제를 마쳤습니다.
발제 5 –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다섯 번째 발제는 ‘이것이 성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이 성폭력인가?’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권김현영 발제자가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바탕으로 한 본 발제에서는 성폭력은 무엇보다도 권력라는 점, 법적으로 성폭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특히 위력에 의한 피감독자 간음죄 성립요건에 대한 재고가 필수적임이 강조되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학교, 직장, 대학, 군대는 강한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곳이고, 권력에 따른 무형적 성적 강압이 피해자의 자기방어권을 심각하게 제한합니다. 하지만 폭행 및 협박이 동원된 경우만 강간으로 인정하는 강간최협의설은 이를 간과한 채 부당한 사회적 압력을 법적으로 승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항 여부가 아닌 ‘명시적 동의의 결여’를 강간죄 구성 요건으로 삼아야 하며, 강제성에 대한 해석 시에도 심리적 협박과 불안을 포함하는 유무형적 강압을 고려해야 함을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도지사라는 매우 위중한 자리에 있던 피고인이 수행 비서에게 성적 강압을 행사하였고, 이들의 관계를 데이트 관계라고 볼 수 있는 증거도 전무하므로, 안희정 사건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를 사용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며 발제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활발한 질의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언론의 2차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언론 윤리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기자들이 성폭력 피해 보도 윤리에 있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들이 오고 갔습니다. 질문에 대한 발제자들의 대답은 언론 보도 윤리 가이드라인의 확립, 비윤리적 보도에 대한 고발 등의 외적 규제와 더불어 기자 스스로의 자성적 목소리가 핵심적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언론의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 2차 피해의 중요한 문제점은, 해당 성폭력 범죄사건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 성폭력 범죄에 대해 증언하는 이들에게 피해가 가중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어 자신의 피해를 용감하게 증언하거나 또한 돕기 위한 조력을 위한 증언을 하는 용기를 꺾는 것에 있다” (김수아 발제자 발제문 중)
이어서 ‘위력’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발제자들은 피해자의 증언이 매우 일관적이며, 검사들은 본 사건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전망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권김현영 발제자는 위력 관계가 해소될 수 있는 데이트 상황에 대한 증거가 거의 제시되지 않았으므로 위력에 의한 간음이 명백하다는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본 사건 경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하며 긴급토론회를 마쳤습니다.
본 긴급토론회를 통해 안희정 사건에서의 문제가 되는 언론 보도 실태와 ‘위력’과 ‘성폭행’을 판단하는 기존의 법적 요건의 한계를 살펴보았습니다. 피고인 안희정에 대해 검사 측에서는 5년을 구형했고, 1심 재판관들이 결심을 앞둔 지금, 본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피해자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선정적인 언론 보도 때문에 사건의 의미와 본질이 흐려졌지만, 안희정 사건을 통해 권력형 성폭력에 경종을 울리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 성추행 등에 대한 법적 변화와 사회적 관심을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토론회 발표 자료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서 PDF로 다운로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본 상담소 자원활동가 서영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