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이끈 정의로운 판결, 이제 시작
: 연극연출가 이윤택 성폭력 사건 1심 유죄 판결 환영 논평
9월 18일, 연극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고 묵묵히 따랐다고 해서 동의했다고 볼 수 없고, 명백히 동의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해도 수긍할 수 없는 추행이 명백하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2018년 2월, 미투운동으로 이윤택 성폭력 사건이 고발된 이후 7개월 만이다. 어떤 피해자에게는 피해 이후 10년 이상 지난 후였다. 이윤택이 수많은 피해자들에게(미투운동에 참여한 피해자 3명, 이후 고소에 이른 피해자 23명, 사건의 횟수 62건, 공소사실 기재 피해자 8명, 이상 파악된 사실만 해당됨) 행사해온 상습적인 성폭력을 유죄로 인정하고, 최협의설을 넘어 성폭력 피해의 특수성을 고려한 재판부의 판결을 환영한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수많은 연극인들이 염원해온 자유롭고 평등한 예술계 내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주춧돌이 될 것이다.
피의자 최후 진술에서 이윤택은 ‘피해자들이 거부하지 않았다(범죄인지 몰랐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피고인측 변호인은 ‘독창적인 연기지도를 처벌하면 연극예술계의 씨가 말라버릴 것’이라고 변호하였다. 이윤택이 성폭력을 연기지도라고 변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독창적인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극단을 기업에 빗댄다면, 감독은 고용주, 스텝과 연기자들은 피고용자라고 말해왔다. 위계적인 조직 시스템 안에서 권력에 맞서는 것은 생계와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정작 예술제작 시스템에 대해서는 ‘독창적인 방법’을 도입하지 못한 채 갑과 을의 위치를 공고히 해왔으면서, 성폭력에서만 '갑과 을의 위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비양심적, 비도덕적이다.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아 범죄인지 몰랐다’는 ‘피해자 탓하기’는 더 이상 가해자들의 방어논리로 통할 수 없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며 가해자의 책임이라는 상식이 이번 판결을 통해 세워지길 바란다.
이번 이윤택 성폭력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은 많은 시민들이 목소리 높인 결과이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거나 연극인을 꿈꾸는 여성들은 성폭력과 성희롱 없이 연극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워야 했다. 예술과 연극의 이름이 더 이상 성폭력의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민들도 이 재판을 주시하며, 미투운동으로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한국사회 각 분야에서 젠더 불평등과 적폐가 드러나고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왔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보복성 역고소와 싸우고 있고, 성폭력 피해와 피해자에 대한 통념과 2차 피해와도 싸우고 있다.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싸움과 시민들의 목소리에 법원이 정의로운 판결로 계속 응답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분투에 함께 할 것이다.
2018.09.20.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