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28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입니다.
작년 2017년 9월 28일에는 수 년동안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 등으로 활동했던 연대체를 재정비하여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발족한 날이기도 합니다.
올해도 임신중지를 터부시하는 법과 사회에 반대하고,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다양한 국제 활동이 있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해시태그를 통해 전세계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목소리와 연대의 힘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LetsTalkAbortion #NormalisingAbortion #IResistWePersist #Sept28 #28Sept #EndAbortionStigma
올해 한국은 낙태죄 폐지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강력하게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5월 24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소원의 공개변론을 시작하였으나, 임기 종료를 앞둔 헌법재판관들은 낙태죄 위헌 선고를 다음 재판부로 미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언제 다시 심리가 재개되고 위헌 결정이 선고될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지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며 시술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을 공시하였고, 이에 반발한 산부인과협회는 낙태죄 폐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보다 임신중지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였습니다. 2016년에 여성들의 분노를 모아 검은 시위를 일으켰던 사태가 다시금 반복된 것입니다.
게다가 식약처는 모자보건법 상 합법적인 임신중지 사유도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유도약의 국내허가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미프진 승인을 촉구해 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한 것이죠.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도록 2018년 9월 29일 토요일 오후 12시로 일시를 정하고
9월 초부터 온라인을 통해 시민 참여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것인지 홍보가 부족했던가 봐요.
9월 중순까지 모인 참여자는 불과 50여명. 269명을 모으겠다는 목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습니다.
안 되겠다. 지금, 이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자! 해서 두번째 홍보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두번째 홍보가 나간 이후로 많은 분들께서 참여 신청을 해주셔서 무사히 목표했던 인원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269명만 받고 그 이상은 오지 말라! 는 행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최대한 오시도록 안내 드리고, 269명을 초과하는 분들은 빨간 천을 들고 269 숫자를 가로지르는 역할을 맡기로 하였습니다.
대망의 9월 29일 토요일!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스탭은 오전 10시부터 청계천한빛광장에 모여 준비물을 확인하고 위치와 촬영 각도를 결정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촬영을 해야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퍼포먼스여서 리프트를 준비했습니다!
정면에 있는 건물에서 리프트 주차를 허가해주지 않아 부득이하게 측면에서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왼쪽) ⓒ녹색당 라용(오른쪽)
11시 30분이 되자 드레스코드 블랙을 몸에 두른 참여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참여자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팀별로 역분을 하며 치밀하게(?) 체계적으로(?) 움직였습니다.
한 명 한 명이 본인의 위치와 역할을 정확하게 숙지해야 퍼포먼스를 멋지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녹색당 라용
마침내 12시! 리허설에 앞서 사회를 맡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님이 본 퍼포먼스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각자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확인하고 리허설을 시작했습니다.
리프트 위에서 담당자가 확성기로 외치는 지시에 따라 숫자 만들기, 붉은 천 가로지르기, 다같이 구호 선창 등을 3번에 걸쳐 연습했습니다.
검은 면을 위로 할지 하얀 면을 위로할지도 이때 결정했는데요. 테스트 촬영 결과 검은 면으로 할 경우에는 그림자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흰 면으로 들어올리기로 했습니다.
ⓒ 녹색당 라용
아마도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는 퍼포먼스가 하늘에서 어떻게 보일지 예상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리프트를 올려다 보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질서정연하게 리허설에 임하며 우드락을 높이 들어 올리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습니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낙태죄는 위헌이다!"
"미프진을 승인하라!"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하라!"
"성적 권리 성교육 제대로 보장하라!"
"저출산 핑계말고 다양한 가족 보장하라!"
"저출산 핑계말고 양육환경 보장하라!"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하라!"
이어서 본 퍼포먼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참여자들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개인적으로 우리의 움직임이 기록된 영상을 보자 낯설기도 하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269명+@의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이번 퍼포먼스에 대한 정식 스케치 영상은 강유가람 감독님이 촬영하여 편집 중에 있습니다.
완성되는 즉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에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트위터 https://twitter.com/safe_abortion_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afeAbortionOnKorea/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구호를 외치고 일단 화면 밖으로 흩어진 참여자들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손피켓을 들고 다시 중앙으로 모였습니다.
사회자가 선언문을 읽고 구호를 선창했습니다.
국회, 헌법재판소, 청와대, 보건복지부, 법무부, 그리고 전세계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해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습니다. 국제 행동의 날인만큼 영어 구호도 외쳤습니다.
"Repeal the 269!"
"Safe abortion now!"
"Legal abortion now!"
"End stigma!"
"Leaving no one behind!"
그리고 다함께 손피켓을 하늘 높이 던졌습니다.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왼쪽) ⓒ녹색당 라용(오른쪽)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란 무엇일까요?
오늘날 한국에서 임신중지가 위험한 것은 시술 그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불법이기 때문에, 터부시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전문성 있는 의료기관을 찾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워서 위험합니다.
음성화된 시장에서 비합리적으로 책정된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워서 위험합니다.
임신 사실을 쉬쉬하거나 비용을 마련하다가 초기 대응이 늦어져서 위험합니다.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기 어렵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어서 위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죄는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해친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번 퍼포먼스에서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에서 만든 <낙태죄, 여기서 끝내는 10문10답> 소책자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에서 만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안내서>를 무료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책자들은 향후 자료집 1권으로 편찬하여 온/오프라인을 통해 배포할 예정입니다.
<이 후기는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