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10. 17. 논평]
법무부가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촛불 이전의 정권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하겠다는 접근이 어불성설임은 재차 강조할 필요도 없다. 법무부의 대책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 불가피한 때다. 전쟁이나 차별의 선동을 허용하지 않는 인권의 원칙이 세워진 이유는, 그것이 '허위'나 '나쁜' 표현이라서가 아니다. 특정 집단에 속한 사회구성원들이 말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짜뉴스'로 말할 수 없게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성소수자고 난민이고 이주민이고 HIV/AIDS 감염인이고 청소년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편견과 혐오의 표적이 되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결국 공론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 어렵고, 아무도 듣지 않는 자리에서만 말하기가 허용된 사람들. 폭력은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누려 마땅한 권리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이들이 '가짜뉴스'의 피해자이며, 이들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 '가짜뉴스'의 핵심 문제다. 정부의 대책은 이 문제를 풀기는커녕 숨겨버렸다.
정부의 대책으로 '가짜뉴스'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더 크게 말할 수 있게 되는가? 더 널리 들릴 수 있게 되는가? 아니다. 대통령부터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범정부 대책을 만들면서 지키려는 것이 겨우 '개인의 명예'-대부분은 그들 자신의 명예-인가? 혐오표현이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심각성이, 오히려 명예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온 현행법의 문제는 여전히 외면할 것인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허위조작'정보들이, 과거 간첩을 조작해온 국가를 대신해, 소수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소수자들을 희생양 삼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도 소수자들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아무런 자리도 마련되지 않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가짜뉴스'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대책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범죄로 다뤄지고 있는 명예훼손 등의 행위를 새삼 호들갑스럽게 엄포 놓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신장한다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아직 범죄가 아닌 혐오표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짜뉴스 대책의 본질이어야 한다. 기존의 '배후에 숨은 제작 유포 주도자들까지 추적 규명'하는 것은 허위조작정보일 때가 아니라, 혐오를 선동하여 차별을 조장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자들일 때 필요한 일이다. '허위성이 명백하고 중대한 사안'보다 폭력성과 인권침해가 명백하고 중대한 사안에 주목해야 한다.
'가짜뉴스'를 고사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더 많은 말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국가는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가짜뉴스'에 똬리를 튼 편견과 혐오를 걷어내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동료시민으로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방법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 방법이다.
2018년 10월 17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