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해군 간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무죄판결 규탄 기자회견
2018년 11월 8일과 19일에 걸쳐 고등군사법원(법원장 홍창식)은 성소수자 여성 해군대위에게 성폭력을 가한 해군 간부 2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보통군사법원 재판에서 인정된 공소사실은 가해자 A(당시 소령, 현재 소령)에 의한 상습적 강제추행 및 강간과 이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였고 가해자 B(당시 중령, 현재 대령)에 의한 강간과 이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였다. 직속상관인 가해자A는 성소수자인 피해자에게 ‘네가 남자랑 관계를 제대로 안해봐서 그런 것 아니냐’,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며 피해자의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 혐오를 드러내며 성폭력을 가했고 해군 함정이라는 폐쇄적인 근무 환경, 군대라는 상명하복 위계질서를 악용하여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추행, 강간했다. 피해자는 A로부터의 성폭력 피해로 임신중지 수술 등 조력을 받기 위해 피해 사실을 당시 함장이었던 B에 알렸다. 하지만 B는 성폭력사건의 즉각적 중단 및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해야 할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임신중지 수술을 한 피해자를 위로해 주겠다며 본인의 숙소로 불러 성폭력 가해를 했다. 1심 재판부는 수사부터 재판 과정까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신빙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피해자의 상관이라는 상하관계를 이용하여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 A와 B에게 각각 징역 10년, 8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고등군사법원 특별재판부는 1심의 징역형을 선고를 정면으로 뒤집어 무죄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7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피해자의 기억에만 의지하여 진술한 것이어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으므로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의사를 오해할 여지가 있었으므로 가해자에게 ‘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에는 해당할 수도 있겠으나 ‘강간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계급, 지위에 따른 상명하복의 위계가 업무 수행에서 일상적으로 작동되는 군대라는 조직에서 함대에 처음 배치되어 업무를 익혀야 하는 하급자, 100여명이 넘은 함대에서 유일한 여성, 성소수자라는 다중적인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던 피해자가 직속상관과 함대의 총괄 책임자인 상관인 가해자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애초 가능하지 않은 조건임을 재판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상관인 가해자가 업무관계에 있는 부하인 피해자의 ‘적극적 동의’ 없이 한 성적 행동을 ‘강간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해 처벌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또한 진술의 신빙성은 피해사실에 대한 구체성과 일관성, 객관적 증거들과의 부합 등으로 판단해야 함에도 2심 재판부는 일관되고 구체적인 피해자의 진술을 ‘오래전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의심했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적인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가해자 측근의 일방적 진술은 문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피해자의 반박을 검증하지 않은 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등 가해자의 근거 없는 여러 주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고등군사재판부가 합리적 이유나 근거 없이 피해자의 증언은 배제하면서 가해자의 주장은 무턱대고 신뢰하는 성평향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달 대법원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라는 판단 기준을 강조하였고,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18.10.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참조). 이는 성폭력이 성차별 구조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성평등 실현을 위해 ‘성인지적 감수성’에 기반을 두어 성폭력 사건의 심리와 판단을 해야 하는 법적 판단의 기준과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고등군사법원은 성차별적인 ‘군대의 위계적 조직문화’에서 발생한 해당사건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명백한 오판을 했다. 피해자가 저항조차 하지 못한 것은 무죄 판단의 근거가 아니라 저항조차 할 수 없는 피해자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상급자의 위치에 가해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적극 해석해 유죄 판단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
군검찰은 2심 판결에 대해 불복해 상고를 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유형력의 행사를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으로 협소하게 해석한 2심의 오류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해군 본부는 가해자들이 성폭력 가해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도록, 피해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진행해야한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군뿐만 아니라 전군의 성폭력예방을 조치가 제대로 환류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더불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폭력, 혐오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군내 내 성소수자 인권과 성폭력예방을 위한 체계를 조속히 마련하고 작동시켜야 한다. 법조계는 ‘위계는 존재하지만 행사하지는 않았다’며 유형력의 행사를 협소하게 판단하고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 없이 배제하는 법원의 성편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부의 자성, 성인지적 감수성을 가진 법관의 양성 등 구체적인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해야한다.
고등군사법원의 첫 번째 가해자에 대한 무죄 판결 직후 개설된 해당 사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현재 18만명에 달하는 서명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고등군사법원의 무죄판결에 대해 분노하며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요구한다. 우리는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싸움을 지속해 나갈 것이며 고등군사법원의 오판을 반드시 바로 잡을 것이다.
2018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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