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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우리의 의지에 관하여> 강간페소모임 완독 후기
  • 2019-01-03
  • 1924

책읽기모임 강간페 구성원들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 강간의 역사> 완독 후기 모음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강간의 역사를 정치적으로 고찰한 페미니즘 고전입니다.

1975년 미국에서 출간된 내용임에도 현재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듯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간을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 남편이나 아버지의 재산권 침해로 여기는 초기 법의 인식은 약간의 변화만 있을뿐 현재진행중입니다. 성폭력 피해로 인해 임신한 경우 낙태를 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러한 시각의 반영인 것 같습니다.


사법의 민주주의라고 국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에서 성폭력 재판이 유독 무죄 비율이 높은 이유가 단지 배심원들의 성향 때문일까 궁금했었습니다.

배심원은 강간에 관한 수많은 신화를 믿는 시민들로 구성되며, 그들은 그 뿌리깊은 신호에 의거해 여성을 판단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삽입성교 순간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서만 심사를 한정하지 않고, 사건 발생 이전의 여성의 행실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수많은 무죄 사례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면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피고인들은 무죄를 끌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하기도 합니다.


성범죄자들이 인터넷 상담글을 올리면 법조인들이 경쟁하듯 댓글을 달면서 위로하고 정보를 주는 반면, 피해자들은 원인 제공을 했다면서 익명의 공격들을 받게 됩니다.


저 또한 강간 생존자로서 이 책의 책장을 넘기는 것이 버거울때가 많았습니다. 성폭력 수기를 읽을때처럼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강간의 역사가 이 정도로밖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나마 모임에서 각자의 경험들을 나누고 성토할 수 있어서 견딜 수 있었지 혼자 읽었더라면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겁니다.


이 책이 성기 결합 중심의 강간에 대해서 주로 분석한 점은 아쉽긴 하지만 강간 통념의 역사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석한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장에서 다루어진 프로이트주의의 강간 이데올로기를 접하다보니 강간 판타지의 왜곡된 해석과 여성의 욕망에 대한 책을 다음 모임에서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12월의 공백이 허전할테지만 내년 모임에서 새로운 멤버들도 합류하여 페미니즘의 뜨거운 열정을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 지은



그동안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한 것은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었다. 위계관계에서 생긴 성폭력은 ‘연애관계’로 둔갑되기 마련이었고, 피해자가 선택한 것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슬그머니 가해자의 위력을 지워버리곤 했다. 무엇보다 사실관계 여부와 상관없이 진보적인 정권 재창출을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희생’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여성인권보다 진보가치가 우선이었고 내가 속한 사회에서도 똑같이 희생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억울한데 당연히 너도 참아야지라는 심보였다. 

 그런데 진보정치를 위해 여성인권을 희생해야 한다고? 내가 따르던 사회와 사람들의 진보에 여성인권은 없었다는 걸 자각하게 됐다. 난 음담패설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남성이 되려고 노력했다. 내 친구들에게 이것이 진보라고 소개하기에 너무 쪽팔렸다. 부끄럽지 않으려고. 나와 내가 속했던 사회의 후진 인권의식 수준의 위치를 파악하고, 배우기 위해서. 그리고 오랜시간 혼자 공포에 질려 숨겨와야만 했던 과거 성폭력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책읽기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강간의 역사”라는 책을 읽으며, 강간이 너무 흔하다 못해 남성들의 “여가생활”이 “강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성을 재산으로 여겨온 ‘남성지배사회’에서 강간을 범죄화 한 것도 가장의 재산인 ‘순결의 재산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성의 ‘선택권’과 ‘인권’, ‘존엄성’을 침해한 행위 따위가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함부로 대해지는 관계는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것을 ‘연애’라고 주장할 권리 또한 오직 행위 당사자에게 달린 일이다. ‘강간’을 남성기득권이 정의 하는 한, 그것은 ‘남성들의 여성’을 지키는 수단일 수 밖에 없다. ‘강간’이 가해자와 남성기득권의 용어가 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용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겐 말하기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가해자’는 교수였고, 철학을 전공했다. 자신이 허용하는 단어 외에 다른 단어에 대해 모욕주고 배제시키면서 ‘피해자의 용어’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는 감정과 사고 흐름을 마비시켰다. 용어는 사람을 지배하게 만든다. 나는 가해자를 위해 아주 오랜 시간 사람들과 스스로를 격리하며 살아왔다. 책읽기 모임을 시작했고 내 감정이 상대에게 전달되고 경험과 감정이 함께 이야기 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그동안 어떠한 단어들도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내가 결정하는 모든 단어들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무식함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가해자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권력욕’이 ‘지식권력’을 실천함으로써 ‘지배욕’을 충족시켜 온 것이라 생각한다. 


 책읽기 모임이 가장 즐거웠던 건, 우리들의 용어를 함께 경험하고 찾아나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책읽기 모임에서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롤모델이 되어 줄 사람을 찾았다. 헤리엇 터브먼. 노예농장에서 벗어나 노예해방을 이끌고 여성 참정권 활동을 해 온 역사속의 인물. 나에겐 항일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걸어 투쟁한 최고 명문가문 출신보다, 노예농장에서 벗어나 여성참정권 활동을 해온 여성을 존경할 권리가 있다. 


나는 아직 나의 많은 시간들을 용서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독서토론을 통해 내가 잃어버리고 강제주입된 남성기득권의 용어들에 저항하는 단어들을 만들고 싶다. / 껌냥



태초부터 존재했던 강간.. 뿌리깊은 슬픈 역사. 성경에도 등장하고 전쟁 시에는 증폭되었던..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소유물로 여겨진 여성이라는 존재는 강간을 당하면 가족에게서 사회에서 배타되는 역사 속 강간을 접하면서 분노가 밀려들었고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책을 집필했던 미국 19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사회 현실에 답답함도 느껴야 했습니다. 전쟁, 폭동, 혁명, 노예제, 인종문제, 감옥, 가해자에 대한 신화, 통계로 살펴본 편견 등 다양한 불편한 진실들과 접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념과 인종 복수에 이용당하고.. 피해자 행동이 평가되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는 일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힘든 과정이었지만 알아야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새기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편안한 삶을 위해 가해자의 신화를 믿고 남성연대에 편승하여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았습니다.  함께 나누는 시간들 속에서 스스로의 성인식을 점검하고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생각, 감정들을 느끼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성인식을 위해 함께 나눌 수 있는 앞으로의 삶을 기대해봅니다. / 혜나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 

-우리의 의지의 반하여!


그동안 내 생애 전체는 종교에 속해있던 것 그자체로 순종의 미덕을 실천하는 자, 그대로였습니다.

종교적 행위로 이루어진 은혜와 기도로 가해자들을 끊임없이 용서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였고 또 그것은 영성의 정점에 이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뻔히 보이는 예상된 결과겠지만 결론은 보상도 없는데다  나 혼자 너무 오랜 시간 열심히 했던 고독한 기도였으며 그것이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시간만 연장시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게 된 그당시는 차라리 죽기를 원할 만큼, 내가 철저히 무너졌기에 그런 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실패의 연속을 인정하면서 나의 어리석고 덧없는 생을 탄식하며 어둡게 빠져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2차로 가해진 주변의 맹목적 용서의 굴레와 피해사실을 편협하게 치부하는 것들로 인해 다시 한 번 분노로 숨 막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랬던 내가 처음, 페미니즘으로, 여성으로, 또 생존자로, 만난 강간의 역사인 이 책은  그동안에 살아온 이력만큼 굳게 다져진 가부장제 체제 속에서  조용히 없는 듯 살아가려는 나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책 전반부 이상을  온통 차지하는 강간과 또 강간.. 그 현장과 역사는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의 쌓인 만큼 그 수와 무게감이 컸으며 읽는 것 자체가 버거웠습니다.

이유는 무한 반복인데다 또 너무 유사해 사건 자체가 제대로 구별이 안될정도였습니다.  


글 행간사이에는 수많은 여성과 약자, 심지어 어린아이들...소수와 차별받는 자들의 눈물, 그 고통의 시간이 온전히 느껴졌기에 읽다가 책을 조각조각내던지고 싶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우울함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강간은 국가가 국가에게 향하는 침략의 증표로 이용되었고 종교는  위로와 피난처가 아닌 순결주의와 공동체 체제를 위한 도구로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고 덮는 행위의 종교지도자만보였을뿐입니다. 


가해자의 죄를 고발하고 처벌해야 하는 법조차도 강간이 오로지 남성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한계를 지었고 강도와 폭행의 중간이라는 애매한 정의를 내리면서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죄로 남겨두었습니다  

분명, 신체와 정신 모두를 빼앗고 모욕과 수치심으로 살아가는 피해자의 삶의 무게는 재지 않은 더럽고 추악한 죄악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사회는 피해자에게 개인의 불행으로 한정짓고 개인이 살아가야 할 위치를 오히려 박탈시키는 역사를 기록합니다.

이것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가부장제 문화속의 강간이란 개인의 존엄성 인간성, 모두를 차별하고 철저히 약자를 짓밟고 있습니다.

그동안 순리처럼 여겼던  가부장제의 무한한 폭력적인 권력이 무섭게 스며들어서 여성을 나약하게 만들고 어떻게 피해자화 하는지 느끼게 됩니다.

심지어 여성이  강간을 원하다는 강간 신화까지 나옵니다. 

우리의 생애에 얼마나 깊이 남성위주의 사상들이 파고들었는지 너무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심리학 입문에 서있는 성욕과 충동 욕구의 프로이트가 또 얼마나 구닥다리 이론인지도 절감했습니다.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욕정이론의 프로이트를 끌어내 왜 그따위로 범죄인 강간을 변명하게 했는지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범죄학에 있어서는 피해자학이나 가해자학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심기를 건드려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라는 피해자 촉발 이론을 까지 들먹입니다.  


읽다 보면 너무 거슬리 것이 많아 질문도 유독 많았고, 나누고 싶었던 것도 많아서 정말 많은 말을 했던 강간 페미였습니다.

그래도 한줄기 위로가 되었던 것은 헤리엇 터브만이란 흑인 여성 지도자 인물을 만났던 것과 저자가 말하는 혁명을 내가 겪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어서 다행이란 것입니다. 

가부장적인 틀 안에 숨죽이고 살아왔던 나를 깨우는 "자기 혁명"이 이제  시작 되었다는 걸 밝히고 싶습니다. 


반격하라는 저자의 마지막 당부는 아직은 소심한 나를 너무 잘 알기에 지금 말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떨리는 마음입니다.

용기 없는 나로서는  혼자는 할 수 없고  연대하고 다수가 협력해야 한다고 가능하다 했으니, 그것을 기대 하는 맘으로 내가 먼저  나를 일으켜 세워 함께 하고자 마음을 열어봅니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강간의 역사가 흘러왔다면 이제는 

그 역사와 다르게 우리의 의지로, 남성과 여성 다수의 연대로 모두 더해서 완벽한 반격을 꿈꿔봅니다.

그동안 함께 마음 나누었던 강간 페미 연대자님들께 우선 감사하다 전합니다.

앞으로도 달라지는 내 자신을 지켜봐 주시길 바라면서 꼭, 다짐만 아닌 실천과 반격을 온전히 하는 나를 다시금 기대해봅니다. / 푸른나비



처음에는 남성인 제가 끼어들어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닌 가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환대해주셨고 이에 감사드립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도 많이 있었고,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발제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정확하고 구체적인 발제와 토론주제까지 생각해서 철저하게 준비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아쉬운 건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적극적으로 의사개진을 하고 토론을 했으면 좋았는데, 내성적이라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리딩할때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사개진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성범죄 웹하드카르텔 문제가 화두인데요. 얼마전, 여성가족부에서 리벤지포르노. 몰카 등을 막기 위해 외국에 서버를 둔 음란사이트 150곳에 접속을 차단시켰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이 자주가는 MLB PARK 사이트에서 남성들이 부글부글 한 일이 있습니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라 참을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다.’, ‘매춘을 없애거나 포르노를 없애면 성범죄가 증가할 것’ 이라는 말은 어떤 통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거짓말입니다. 남성중심적인 실용주의자 킨제이 박사조차 “진실인지 거짓인지 증명해 줄만한 데이터가 전혀 없다.”(12장)라고 말했고, 책 12장에서는 “강간은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욕정에 의한 범죄가 결코 아니다. 정복자가 되고 싶은 남성이 여성에게 두려움을 주고 협박하려는 의도로 계획된 비하 및 점령행위, 즉 의도적으로 여성을 적대하는 폭력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강간의 실체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욕은 본능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충분히 통제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강간 및 성범죄물과 매춘을 정당화시키는 남성의 강간이데올로기 라고 생각합니다. 100원.200원에 여성들이 안타깝게 죽어가는 현실, 그 아픔에 공감하며 성범죄 웹하드 카르텔 자체를 없애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찍는 자, 유포하는 자 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소비하는 남성들 또한 처벌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리는 여성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출판된 책이지만,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하고 중요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다시 한 번 정독하면서 책에서 던져주는 의미를 현실에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빌려본 책 중에서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라는 책은 제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라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전 그동안 계속 운동을 해왔는데, 운동을 하면서 세상이 바뀌면 어머니의 고통도 멈추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 페미니스트들이 성폭력과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을 얘기합니다. 왜 진보운동은 이런 얘기를 지금까지 못한 것일까요?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제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세계이며 아름답고 충분히 가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아름다운 신세계에 빠져서 거의 중독될 거 같습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가슴으로 느끼며 몸으로 실천하며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리딩 때 만나요 ^^ / 경일



'강간의 역사'라는 주제와 주제만큼이나 무거운 책을 함께 분노하고 고민하며 읽을 수 있는 분들이 있어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미국사회에서 쓰여진 책 속에서 2018년 한국사회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는데요, 세상이 여전하다는 생각에 착찹하면서도 갈 길이 머니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갈 사람들이 필요하겠죠. 그런점에서 2019년에도 책읽기모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2019년에는 <나쁜여자 전성시대>를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요??'▽') / 선미



“데이트 강간을 비롯해 사건 전부터 피해자와 관계가 있던 남성이 저지른 강간에서도 강압적 권위는 피해자가 단호히 저항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사회적 통념상 데이트에서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압력이 피해자에게 일종의 ‘권위’로 작용하는 것이다. (...) 공손하고 여성스럽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관습적 제약과 사회적 예의범절 때문에 피해자는 우아하게 참거나 가능한 한 요령껏 빠져나가야만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며, 피해자가 정면으로 맞서면 행동규범의 선을 넘은 것이 된다. “그녀가 나중에 마음을 바꿨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에만 자기 통제력을 되찾아 강간당한 현실과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잔브라운, 2018: 395)


올 한해 가장 뜨거웠던 미투운동과 함께 시작된 책읽기 모임은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간에 대해 역사적으로 들여다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적절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남성중심적인 관점에서 해석되어온 강간은 여성 통제 수단으로서, 남자다운 행동으로 찬양하거나 농담처럼 무마하거나, 혹은 대중문화를 통해 강간을 미화하는 방식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현실에 같이 분노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대안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꺼이 나누어진 소모임 회원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경주



저는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 '책모임'을 찾습니다. 

혼자서는 잘 못 읽는데, 같이 읽으면 한줄을 읽어도 여러 생각이 거미줄 처럼 연결되고 퍼지거든요. 


<강간의역사>라는 책이 나왔을 때, 수잔브라운밀러! 정말 많이 들어보던, 고전의 저자였고, 

그 책이 두꺼운 책으로 출간되었다니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여성학을 차분히 배우거나 하지 않으면, 고전이 어느 배경에서 나왔고 누가 어떻게 쓴 책인지 잘 모르니까요.


책을 펼치자, 수잔브라운밀러는 미국에서의 제2물결 페미니즘 시작기에 페미니스트로 있던 사람이었고, 

그 전에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크게 영향받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강간말하기대회를 다녀온 후로

이 문제에 빠져들어, 모든 공개서가, 폐쇄서가 도서관을 다 뒤지면서 '강간'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료를

모았던 것 같습니다. 그 사료를 엮어 배치하며, 사례들에서 찾아지는 공통점들, 구조와 의미를 가지고 

분석하고 언어를 붙이고 해석의 살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목차만 보더라도 그 질문이 배열된 순서를 알 수 있는데요, 최초에 왜 도대체 왜 여성이 최초에 

'강간'을 당하기 쉬웠을까, 하는 질문도 등장합니다. 먹고사는과정에서 남성의 물리적인 힘이 소요되었고

어떤 권력관계가 형성되는지도 등장하지만, 신체구조 이야기도 나옵니다. 침입하기 쉬운 구조, 침입되기 쉬운 

구조. 아 정말 생경하고 적나라하고 물리적이고 - 어쩌면 정말 성기중심적이고 생체주의적인 해석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에서의 강간을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강제적인 성폭력이든, 점령지에서의 제노사이드로서의 집단강간이든, 

성매매를 형식화한 것이든 전쟁에서 남성성을 호출하고, 그것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여성의 몸에 접근하게 쉽게 해주는 것' 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습니다. 

노예제에서의 강간에서는 흑인여성이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교차하는 조건속에서 어떻게 이중 삼중의 

착취와 억압상태에 놓여있었는지 절절하게 함께 읽어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사료가 많을 수록, 공통점도 도출할 수 있지만, 각 사례에서 등장한 요소들의 다양함을 분석하며 

성폭력이 단일하고 단선적인 구조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우리모임은 매번 발제자를 정하고, 문서에 텍스트로 발제를 정리해오고, 진행도 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었는데요

제가 처음 발제를 하고 났더니, 가뿐한 상태로 책을 열심히 읽....은 게 아니라! 점점 바쁘다는 핑계로 

못읽고 모임에 참석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분의 발제문이 얼마나 단비 같았는지! 감사해요오:)


책에 대한 비평적, 비판적 토론을 많이 못해서 아쉽지만, 발제문 끄트머리에 우리의 고민들은 아직 목록들로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이 고전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지금 읽혀야 하는지 함께 알아갔던 것 같아요. 

재판에서 가해자를 합리적 의심을 최소한의 상태조차 없게 대우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아니면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지시하는 가부장적인 보호법익의 성폭력 법적용 - 이런 것은 어쩜 지금도 똑같냐.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 그만큼 성폭력 '통치구조'로서 어떻게 자리잡고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지 명확한 것이지요.

어떻게 싸워갈 것이냐. 우리는 같은 심정으로 한숨 쉬었고, 같은 심정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 주목하고 있는

사건과 대응들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다음 책은 무엇을 읽을까, 기대되네요! 페미니즘 책이 많아 행복하고, 빨리 읽어야 하는데! 싶기도 합니다. / 오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