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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보통의 김지은들의 기자회견 11/29(목)
  • 2019-01-03
  • 1489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 


2018. 11. 29(목) 오후 2시30분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




지난 8월 14일, 서부지방법원 형사제11부가 안희정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후, 분노한 여성들은 당일 500여명이 모여, 그리사흘 후 2만명이 모여 '사법부가 유죄'라고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흔한 성폭력의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상하 지휘관계에서, 부르면 가고 시키면 해야 하는 입장에서, 성폭력을 겪었고, 일을 잘 해내기 위해 -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 나만 잊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암시하며 시간을 견뎠고, 수개월이 지나서 다른 여성들의 용기에 힘입어 사건을 밝힌. 지극히 평범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평범성은, 여성들의 삶 속에서 재생되어 왔습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여성들 50명이, 문구를 보내오셨고, 현장에서 30명이 그 문구로 엮인 기자회견문을 읽었습니다. 


처음 문은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혜영님이, 직장에서의 남성중심문화, 술자리 강요, 불이익 등을 겪은 이야기, 그 때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에 대해 발언해주셨습니다. 







이어 한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했습니다.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 



우리의 또다른 이름은 ‘김지은’이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JTBC 뉴스룸을 통해 처음 만난 김지은씨. 그 분의 떨리는 말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화가 치밀고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두 달 동안 문제적이고 무분별한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어떤 사람들은 김지은씨를 비난하는 말을 뱉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어렵게 용기를 냈으니 합당한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8월 14일, 1심 재판부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 결과를 보고 분노했습니다. 일상을 버텨내야 했기에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권력 앞에서 침묵하고 움츠릴 수밖에 없던 내가 그 재판장 앞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나의 또 다른 이름은 ‘김지은’입니다.


지켜보겠습니다.


이 재판은 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나, 미투라는 외침조차도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던 나, 1심 무죄판결이 나던 그 날도 상사의 성희롱을 참으며 점심밥을 삼켜야 했던 나는 ‘보통의 김지은’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많은 ‘여성’들은 ‘김지은’의 모습으로 살아가곤 합니다. 성폭력을 일상폭력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직장에서, 가정에서, 연인관계에서, 학교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끝없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이번 판결을 지켜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심 판결을 보면서 과연 국가가 여성을 인간으로 보고 있는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1심은 ‘성적자기결정권’과 ‘위력’에 대한 몰이해로 점철된 결과였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따질 것이 아니라 가해자측 주장이 믿을만한 것인지 물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해자를 벌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무죄선고는 보통의 김지은들이 겪었던,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국가가 방치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성을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까?

이번 사건의 판결은 여성들의 삶과 남성들의 사고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직장 내 성폭력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한 판결이기도 합니다. 충남도지사이자 유력 대권후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한 사건이기 때문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집니다. 재판부 역시 이러한 파급력을 고려하여 더욱 공정하고 합당한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더 많은 안희정을 막기 위해, 권력형 성폭력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재판부는 1심의 오류를 바로잡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 사회의 권력은 젠더폭력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투운동을 통해 자신의 피해경험을 용기내어 말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재판부는 사법정의 실현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구호처럼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안희정에게 유죄가 선고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여성들은 반드시 사법부에게 그 죄를 물을 것입니다. 이제 성폭력이 묵인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바꿔내겠습니다.


아직도 용기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나는 먼저 용기를 내준 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는 나는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보려고 합니다.

김지은씨를 비롯한 미투운동에 나선 모든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할 것입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에 후원해 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조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1심 재판과정의 문제점,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 안희정 측근에 의해 확산되고 있는 악성루머, 온라인에서의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2차 피해 등을 똑똑히 기억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남성 카르텔을 비판하겠습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글이나 기사에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정정을 요구하겠습니다.

청원, 서명운동, 탄원서 제출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 변화를 촉구하겠습니다. SNS 좋아요, 공유, 리트윗 등 작은 실천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 사건의 문제점을 알리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무엇이 문제인지 말하고 떠들겠습니다. 침묵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연대를 요청하겠습니다.

일상을 살아내는 나는, 나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내가 일하는 공간의 성차별적인 문화와 성폭력에 맞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용기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동료가 있다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언론인의 윤리, 법관의 윤리, 시민의 윤리가 무너진 사회에서 내가 가진 직업윤리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비윤리와 부당함에 단호히 맞서겠습니다.

집회와 기자회견에 참여하여 더 많은 김지은들과 연대하겠습니다. 직접행동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2심을 성평등하게 바꾸기 위해, 사법적폐와 성차별을 청산하기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대한민국 남성과 권력에 고합니다. 여성들이 폭력당하는 세상은 이제 끝났습니다. 내가, 보통의 김지은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2018년 11월 29일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 참여자 일동



2시 55분에 기자회견을 마치고, 함께 서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방청권을 배부받고, 재판이 열리는 곳에서 방청연대를 진행했습니다. 검찰측에서 항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에 입증계획을 물었고, 검찰은 1심 공판이 사실오인, 법리오해, 심리미진을 했다고 제기하며, 2심에서는 새로운 증인 심문, 피고인 심문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위력 성폭력에 대한 법리가 제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2심 재판부는 안희정 2심 재판부, 적극적으로 재판해야 합니다. 


_ 1심에서 피해자 확인없이 그냥 받아들여진 피고측 증인 재심문
_ 1심에서 하지 않은 피고인 안희정 법정 심문
_ 1심의 2차 피해 더이상 없는, 전체 비공개 재판 진행
_ 1심에서 오해한 위력 법리에서 다른 유죄판결 법리 동일적용



2차 준비기일은 12월 7일(금) 오후 2시반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를 만들어가요. 함께 이깁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