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문]
‘낙태죄폐지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폐지 이후의 세계
우리는 더 이상 어제와 같은 세상에 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낙태죄를 폐지할 것이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은 통제하고, 징벌하며, 건강과 삶을 위협해온 역사를 종결할 것이다. 국가가 인구를 줄이기 위해 ‘강제 낙태’와 불임시술을 강요하다가, 다시 저출산 해소라는 명목으로 임신을 중지하는 여성을 비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기만적인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낙태죄를 폐지할 것이며,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들은 더 이상 요구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며, 이제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직접 그러한 사회로 변화시켜나가고자 한다. 헌법재판소와 정부, 국회는 이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하나.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하고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여성의 판단을 의심하고, 훼손하며, 처벌하는 사회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삶에 대한 결정은 늘 한 사회의 사회구조적인 조건들 안에서 이뤄진다. 장애, 질병, 연령, 경제적 상황, 지역적 조건, 혼인 여부, 교육 수준, 가족상태, 국적, 이주상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회구성원들이 아이를 낳을 만한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여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우리는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성평등 사회,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65년간 존치되어온 악법인 낙태죄 폐지가 그 마중물이 될 것이다.
둘. 포괄적 성교육을 보장하고 피임 접근성을 확대할 것이다. 피임의 접근성과 성교육의 필요성이 오직 임신을 중지하는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사회, 실질적인 의료접근성과 포괄적 성교육의 도입 여부가 탁상공론에만 머무르는 사회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 중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국가가 보장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재생산 권리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나서서 비과학적이고 차별적 내용의 성교육을 시행하며 모두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 우리는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포괄적인 성교육이 표준이 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회적 낙인 없이 자신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건강을 보장받는 사회에서 살아갈 것이다.
셋. 약물적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고 여성건강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임신중지는 합법적이고 안전한 의료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병원과 공공의료기관은 앞장서서 안전한 임신중지와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며, 국가는 최신지견의 의료 기술에 대한 의료인 교육을 제도화하고, 약물적 유산유도제를 지금 당장 도입하고,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약품처방과 시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권리가 있고, 그것을 실현할 것이다.
넷.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으로 인권 억압의 역사를 청산할 것이다. 모자보건법은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기 위해 국가가 만든 법이었다. 그 법 아래, 국가가 나서서 특정한 생명을 선별하고, 누군가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제약하고, 경제개발에 도움이 되는 인구만을 늘리겠다는 끔찍한 사고방식으로 자행된 수많은 국가 폭력이 존재한다. 우생학적 모자보건법이라는 치욕의 역사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임신중지 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 하는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며, 임신중지에 대한 합법화를 기초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다섯. 낙인과 차별을 해소하고 모두의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 아래, 임신과 임신중지를 모든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 책임 있게 판단하리라는 것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사회, 안전한 의료서비스와 복지제도를 통해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위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사회를 요구한다.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 모두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인권 존중의 사회를 향한 출발점이다. 우리는 한 사회가 다음 세대를 재생산해나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 사회 부정의에 대항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낙태가 죄가 되는 어제와 같은 세상에 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019년, 낙태죄를 반드시 폐지할 것이다.
2019년 3월 30일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