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제도화
여성운동의 제도화 - 2003. 봄. 나눔터 44호
-정경자(본 상담소 국제협력위원)
여성운동은 위기인가 아니면 아주 사라져 버린 것인가?
여성운동이 변하고 있다. 아니 변해버렸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운동이 놓여 있는 여건의 변화에 따라, 또한 여성 활동가들의 면면이 바뀜에 따라 여성운동 또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 미국의 여성학자 라이넬트(Reinelt)는 여성운동 조직이 점차 위계적이고 비민주적으로 변함에 따라, 여성운동 조직과 다른 조직간에 구분이 모호해지며, 또한 누구를 여성운동가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호한 상황에서 여성활동가들은 그들이 서있는 이념적인 기초마저 흔들림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덧붙여서, 여성운동과 운동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의 활동이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기여하는지 아니면 아주 교묘한 형태의 여성 억압인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질문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성운동가들과 여성학자들은 이러한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이 과연 여성운동이며 어떻게 여성주의를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운동, 무엇이 변했는가?
여성운동의 전략이 달라졌다. 거리 시위 등과 같은 전투적 전략에서 로비, 증언, 법제정, 교육 등 보다 온건한 전략들이 채택되어 지고 있다. 더불어 여성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여성운동의 양태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여성주의자들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연대하고 각각의 나라에서의 여성문제들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성 운동의 가장 큰 변화는 여성운동의 제도화이다. 여성운동계는 여성문제를 이슈화하고 그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으며, 그 성과 중의 하나가 정부에게 여성문제의 해결에 대한 책임을 인지시키고 법제정 등을 통해 여성운동 조직에 대한 지원을 의무화 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운동에 대한 정부의 증가된 지원은 운동 조직들이 여성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재정적인 안정을 제공했으나 거기에 따른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고 호주의 사례 연구를 통해 문제점과 해결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여성운동의 제도화 혹은 주류화
여성운동은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의식적이며 집단적인 활동을 지칭한다. 여성운동은 성차별의 철폐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들을 채택해 왔다: 의식화 작업, 공동체 등과 같은 새로운 삶의 방식의 채택. 고유한 여성 문화의 창조, 성폭력 상담소, 여성 책방 등 대안적인 여성 조직 만들기. 조직의 형태 또한 민주적이고 평등한 조직을 원칙으로 자매애, 보살핌,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 참여 등의 가치를 강조했다. 여성운동은 안정된 구조에서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 기존 조직- 국가나 정부기구의 자원을 요구, 이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도화이다. 프리만(Freeman)은 제도화란 운동이 기존의 주류 조직에 흡수되거나 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조직의 자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제도화는 문헌에 따라 참여의 정치 혹은 관료화, 주류화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제도화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동의하고 있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도화를 지지하는 겔브(Gelb)와 같은 학자는 제도화를 운동의 동원력(mobilisation)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믿을만한 자원으로 보며. 제도화를 통해 운동을 통해 얻은 것들을 보호할 수 있고, 법제정 등을 통해 구체화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장기간에 거친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에서는 제도화는 조직의 급진적인 이념이 희석되어지는 경향이 있고 사회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게 하며 조직의 구조를 더 위계적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제도화에 관련한 쟁점들을 기존 연구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급진성과 개량주의
운동 조직의 특성은 항상 그 시대에 맞는 급진성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논의되어 왔다. 제도화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급진적 성격을 약화시킨다고 한다. 사회문제나 여성문제에 대한 관점의 전이를 가져온다. 다른 조직의 자원들-특히 국가의 재정 지원을 활용하면서 운동 조직이 이슈화한 문제들이 다른 관점으로 정의되어진다. 윌슨(Wilson)은 정부의 재정지원과 함께 사회 문제나 여성문제 등이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더욱 개인적, 의료적, 심리학적 문제로 정의되어짐을 지적한다. 이러한 윌슨의 주장은 정부의 재정 지원 후에 호주와 영국의 성폭력 상담소들의 변화에서도 확실히 보여 진다. 여성 운동의 지원으로 이슈화된 성폭력 문제가 정부가 개입하면서 의료적 병리적인 관점에서 접근되어졌고 그 결과 대다수의 상담소들은 국공립 병원에 설립되어졌다. 한국의 경우에도, 가정폭력 방지법의 제정을 이루기 위해 여성 단체들은 이 문제를 여성문제로 보다는 가정의 문제로 부각시켰으며 이를 통해 다른 세력들의 저항을 완화시킬 수 있었으며 또한 이를 위해 아내 구타라는 용어 대신 가정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김현정). 미국의 80년대 여성 정치 네트웤에 대한 연구에서도 여성 조직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을 여성운동 조직으로 부르기조차 꺼려했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성운동의 제도화는 제도권 밖의 급진적이고 사회 변혁적인 문제들을 정책의 안건으로 채택하게 되었으며, 여성문제와 페미니스트 담론이 주변화되는 것을 막고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사회 변화 혹은 서비스 제공
제도화는 조직들이 보다 서비스제공에 중점을 두게 하며 이를 통해 정부의 통제와 규제에 더욱 취약하게 된다는 논의가 있다. 서비스 중점의 사업은 재정 위기 등을 직면하며 더욱 조직들을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한다. 또한 조직을 전문화, 형식화하며 정치적인 영향력들 잃게 하고 대중적인 여성들의 문제를 반영하지 못할 조직이 되어 버릴 위험 또한 있다. 무엇보다도 조직의 활동이 재정을 주는 기관의 요구에 따라 재편되어진다. 따라서 운동적인 성격을 가진 활동들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버리게 된다. 한편, 겔브와 디즈니(Gelb&Disney) 등 일군의 학자들은 사회변화를 위한 활동과 서비스 제공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들이 연구한 대부분의 운동 조직들은 사회 변화와 서비스 둘 다에 주력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서비스의 제공은 여성운동이 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이를 통해 조직의 회원을 확보, 보다 건실한 재정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조직의 기반을 다지고 재정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적 조직 혹은 위계적 조직
국가의 재정 지원 등의 제도화는 조직의 구조와 형태에도 변화를 야기한다. 우선 유급 직원의 수가 증가하고 보다 형식적인 조직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운동 단체에서 사회 복지 단체로 조직의 성격 자체가 변화되기도 한다. 또한 조직 내의 활동가들간의 관계가 고용주와 피고용자 관계로 변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활동가들은 그들의 정치적인 경향이나 정치적인 역량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이나 자격증에 의해 고용되어 진다. 또한 제도화는 운동 조직간의 경쟁을 유발시킨다. 여성운동 조직들을 심하게는 다른 단체가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고 서로의 영역을 흡수하고 차지하려고 한다고 한다.
사례연구
제도화와 국가와의 관계의 변화가 여성운동 조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호주의 사례연구를 통해 조사했다. 이를 위해 약 5 개월 동안 이 단체에서 현장 연구를 하였다. 호주의 단체는 1974년에 설립된 페미니스트 성폭력 상담소로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급진적인 여성운동 조직의 하나이다. 성폭력의 급진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상담소(성폭력상담소)와는 달리 아직도 강간 위기 센터라는 단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시내에서 가까운 주택가에 위치해 있으며, 정부에서 저렴하게 임대해준 주택을 사무실과 면접, 전화 상담실로 사용하고 있다. 상근자는 현장 연구 당시 10명이었으며 몇 명의 시간제 상담원들이 있었다. 소장과 사무국 직원 그리고 지역사회 개발 부서에 각각 한 명씩의 상근 직원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상담 활동가들이다. 소장과 사무국 직원이 재정과 운영의 전반을 담당하며 지역사회개발부 상근자는 운동과 관련한 활동들을 구상하고 계획하며 상담 활동가들은 일주일에 2시간씩 지역사회개발부 활동에 참여한다.
나의 사례연구는 거리 시위 참여로 시작되었다. 약 100여 명의 학생, 활동가와 일반인들이 주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최근의 성폭력 상담소를 포함한 여성 운동 단체에 대한 재정 삭감을 항의했다. 이 단체는 재정의 전부를 주정부에 의존해왔다. 늘어난 재정을 위해 재정의 다각화를 시도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고 주정부에 재정지원 증액을 요구한다. 주정부는 두 명의 감사관을 파견해 이 단체의 재정 상태와 모든 활동들을 점검하고 운동 분야의 상근활동가를 그만두게 하거나 사무국 직원의 근무시간을 주 8시간 줄이거나 소장의 근무시간을 줄여서 운영비를 맞추도록 제안한다. 연이은 회의 끝에 운동 분야의 상근 활동가를 그만두게 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소장과 사무국 활동가도 감사 결과와 상담소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하고 사퇴한다.
이 단체는 초기의 열띤 논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들였으며, 그 후로도 그들의 역사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상근자들이 언급할 만큼 여러 번의 재정 위기를 겪는다. 70년대 중반 한국의 90년대와 유사하게 친여성주의적인 휘트람 정부가 들어섰으며 이를 계기로 상당수의 전직 여성운동가들이 공직에 진출하게 된다(호주에서 여성주의관료를 뜻하는 femocrat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 속에서 여성운동 단체들은 정부에게 지정 지원을 요구하게 되었고 개혁을 위해 정부로부터 돈을 타내는 일은 정부의 복지 정책에 들러리가 되는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1975년부터 연방 정부로부터 기금을 받았고 많은 활동가들이 이에 반대하여 사직하였다.
기금으로 사무실을 이전할 수 있었으며, 상근활동가 한 명의 급료를 지불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 자원활동가들에 의존하여 단체가 운영되어졌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을 받은 후, 보다 개량적인 접근으로 더 많은 재정 지원을 확보하자는 자원활동가들과 급진적인 입장을 견지해야만 한다는 상근자들 사이에 갈등의 폭이 깊어져, 결국 1980년부터 모든 자원활동가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 단체는 1980년대 말 여성 단체를 비롯한 사회복지 활동에 호의적이지 않은 정부를 맞이하여 모든 재정과 관련한 지침들과 행정적 절차들을 따라야만 했다. 1990년 초에는 더욱 보수적인 정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재정지원이 끊길까 염려되어 사단법인으로 인가받고, 순수한 활동가 중심의 평등한 조직에서 지역사회 인사들을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소장을 두는 위계가 있는 조직으로 변화를 추구한다.
제도화의 결과>
통합된 구조 속의 일부, 자율성의 상실
호주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제도화가 이 단체의 정치적인 활동을 감소시켰으며, 상담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어져 갔다. 감사관들은 이 단체의 활동을 분석하면서 업무의 중복과 다른 유사 단체들과의 통합을 강조했다. 혼자서 모든 관련 활동들을 담당하지 말고 다른 단체와 협력하며 활동하라고 지시한다. 이 단체의 정체성을 유일한 24시간 전화 상담소로 규정하면서 활동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지 말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상당부분의 예산이 운동을 위한 활동으로 쓰여진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 실제로는 전체 예산의 7%정도가 운동을 위한 활동에 쓰여지고 있으면 그것도 담당 상근자의 급여로 쓰여지고 있었다. 즉 이 단체는 더 이상 독립적인 운동 단체로서의 위상을 상실한 채, 국가의 성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하나의 단체로서 전락하고 말았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개발부 상근자의 자리가 없어져 버림으로써 이 단체는 운동 단체로서의 성격을 상실해 버릴 위험에 빠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비단 이 단체만 문제만은 아니었다. 사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호주가 시장경제와 경제적 합리주의(economic rationalism)를 도입하면서 시민 여성 단체에 대한 지원이 삭감되었고, 단체들이 통합되어졌으며, 업무 수행에 대한 평가가 강조되었다. 상담 이용자수를 기준으로 재정 지원이 이루어졌고 캠페인, 연대 활동 등의 정치적인 활동에는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활동가들의 불만과 잦은 이직
호주의 활동가들은 제도화에 따라 조직이 형식화되고 위계적으로 변화한 것에 대해 불만족해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낮은 급여와 24시간제 근무라는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 이념 때문에 여성운동 조직이 가진, 개방성, 평등, 민주, 참여라는 참신성 때문에 그곳에서 활동한다. 여전히 다른 조직들보다는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그들의 역할과 조직 안에서의 영향력은 축소되어버렸으며, 이와 함께 운영을 담당하는 상근자들과 일반 상근자를 사이에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즉 제도화는 조직의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종종 아주 운동 단체를 떠나게 만들기조차 했다.
시간과 인적 자원의 부족
이러한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재정을 포함한 그들의 운영과 활동에 대한 평가와 점검이 요구되어 졌다. 우선 재정을 다각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으나. 시간과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25년 동안 당연히 정부에 의존하던 재정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의사가 환자를 돌보지 않고 병원 재정을 위해 뛰어다녀야만 하는가'라며 활동가들이 재정마련을 위한 업무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활동가도 있었다. 이 단체를 포함한 호주의 많은 여성 단체들이 여성 노동력의 착취라는 이유로 자원활동가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지 않고 상근자들은 한국과 달리 철저하게 시간제로 대부분의 상근자들이 주당 35시간- 일을 했기 때문에 기존의 업무-주로 상담, 이외의 일을 담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례로 위기에 직면하여 회의를 할 때 시간제 임시 상담원을 고용해야 했으며 이것은 이 단체에 또 다른 재정 부담을 안겨 주었다. 또한 상근자들 대부분이 상담원이고, 24시간 상담을 위해 3교대로 일을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상근자 운영회의를 제외하고는 함께 모이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대처할 만한 인력이 없었고 조직의 중대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 문제들을 논의할 만한 시간조차 없었다. 또한 자원활동가들의 참여가 허용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운동 기관으로서 매우 중요한 동원력을 상실하여, 대중적인 기반이 없는 그래서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협상력을 상실한 힘없는 단체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먼저 정부의 재정 지원의 한계를 미리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운동이 놓여진 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여성운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여성운동이라고 믿으며 활동하는가의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모든 사회적 제도와 실천들은 비판적인 성찰을 통해 변화, 발전해 왔다. 여성운동도 예외일 순 없다. 우리 사회는 여성주의 시각에서의 성찰이, 비판이, 평가가 여전히 필요하다. 그리고 여성운동과 활동가들은 그 임무를 수행할 핵심에 서 있다. 이러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성운동권의, 여성활동가의 자기 비판, 성찰이 요구된다.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과 효율, 경쟁, 살아남기 등의 현재의 당면한 과제들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주의 원칙들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왜 여성운동을 하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리고 어떤 전략으로 그 목표들을 달성해 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운동가들이 모여서 토론해야 한다. 여성운동을 이끌고 구성해 나갈 중심은 바로 활동가들이다. 따라서 활동가들의 여성의식 고양의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 훈련, 여성운동에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기억할 일이다.
끝으로, 이 변화된 시대에 여성 운동의 급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성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관심을 늘 기울여야 한다. 그 여성들 옆에 서서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고 힘을 줄 때 여성들은 여성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한다. 이러한 여성 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바로 운동성의 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