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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연대] 002. 늘 성폭력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름의 인터뷰
  • 2019-08-08
  • 1686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 연대] 002. 늘 성폭력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름의 인터뷰


저는 여름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 여성학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우선은 전부 다 주변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같은 문화 속에서 사는 거니까요. 성폭력이 발생하는 맥락에 있어서 성별 권력의 차이라든지, 여성을 대상화하는 강간 문화라든지. 그런 맥락 속에서 폭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피/가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지 주변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실제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진 네트워크가 있고, 그 네트워크 전체가 주변인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주변인이지 않나.


하지만 피해자와 직접적인 친분,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더 강력한 주변인, 농도 짙은 주변인이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피해자에게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Q. 그렇다면 스스로도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같은 맥락에서 저도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저는 진짜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일단 여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이미지를 주입 받잖아요. 어두운 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하는 두려움 같은 것들. 그래서 밤에 일찍 들어가는지 여부가 중요하게 되고, 친구들이 밤에 집에 들어갈 때도 ‘들어가면 연락해라, 조심해서 들어가라’ 이런 이야기들을 당연하게 안부로 묻는 것 등이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성폭력에 대한 긴장감에 의한 것이고요. 실제로 저도 그런 상황에 노출될까 봐 호신용 스프레이나 호신용 쿠보탄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녀요. 성폭력 피해는 있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어요.


Q.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거나 들은 경험이 있나요?


일단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거나 들은 경험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보도는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남의 집에 들어가서 성폭력을 하고 도망가거나, 아니면 지인을 성폭력하거나, 성폭력 후에 살인을 하거나……그런 사건들에서 ‘성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변명이 되는 사회가 어떻게 ‘남성이 이성적’이라는 말과 공존할 수 있는지 항상 너무 큰 의문이에요. 여성은 성욕이 없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성별의 차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차이가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칠 텐데, 주변에서 이야기되는 담론에 의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가 결정이 된다는 게 (말잇못)


Q. 그런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페미니스트가 아닌 경우에 비춰봤을 때는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여성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되곤 했어요. 만약에 성폭력 사건이 있다고 해서 아들에게 ‘성욕 통제 못 하니까 조심해라’ 하면서 약을 주진 않잖아요. 오히려 여자들에게 집에 일찍 다니라는 식으로 귀결되는 대화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거의 100% 담론의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100%라는 말을 남발하면 안 되지만 이 부분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누구든지 못된 짓을 할 수 있고,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지만, 한쪽 성별에 그러한 폭력 성향이 치우치게 나타나는 지금은 100% 그런 문화의 강력한 영향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Q. 페미니스트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일단 대부분 가해자 욕을 하고 화를 내죠.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환경이나 조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가해자가 어떻게 그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지 공부하니까요. 피치 못해서 가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피하기 너무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었을 거라는 맥락들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피해자 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Q. 성폭력과 관련된 커뮤니티 게시글을 공유하거나 댓글을 쓴 경우는 있나요?


트위터에서 리트윗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사실은 저는 약간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기도 해요. 저는 SNS에 언론사를 다 블락(차단)했거든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판례들로 그것이 확인되면서 저에게 계속 큰 무력감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요. 알아야 하는 소식은 알아야 하겠지만, 노출되는 빈도수를 줄여보려고 합니다.


댓글을 쓰는 경우는 주로 가해자에 대한 비판이죠. 혹시 모욕죄 걸릴까 봐 돌려서……(웃음)


Q. 성폭력과 관련된 책이나 영상을 본 경험이 있나요?


성폭력 피해자가 나오는 책 너무 많죠. 우리가 소위 ‘한남 문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 성폭력 장면을 포르노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많아요. 영상도 마찬가지고요. 성폭력은 여성의 삶이 망가지게 되는 계기로 굉장히 많이 활용되는 지점이고요.


영화 속 상황 때문에 공분했던 영화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이었어요. 거기서 이나영(문유정 역) 캐릭터가 중학생 때 친척한테 강간 피해를 입어요. 엄청 어렸을 때 한 번 피해를 입었지만 그 뒤에 가족들이 쉬쉬하는 분위기가 지속되었고 그 캐릭터는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어요. 그것이 정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하는 (것으로 묘사되죠)


피해자지만 자신의 피해 상황에 대해서 주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게 성폭력의 큰 특징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피해자를 환장하게 만들고 진짜로 피해자의 영혼을 무너뜨리는, ‘순결’을 잃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지 못해서 무너지는 그런 예라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 그걸 보고 ‘얼마나 화가 날까, 저 사람은 어떻게 가해자를 안 죽일까’ 피해자를 탓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화가 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예술계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전시해놓으셨던 곳도 갔었어요. 예술계는 ‘고인물’이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피해를 말하기 더 어려워지고, 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남성이기 때문에 피해를 공론화했을 때 처하는 상황이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기 어렵다든지 (말잇못) 성폭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Q. 혹시 미투 운동에 관해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으신가요?


네. 핫이슈였으니까요. 작년에는 거의 모든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당연히 주변인들과도 얘기를 나누곤 했었어요. 당시는 제가 주변인들을 골라서 만났던 시절이에요. 제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 때여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페미니스트였으니까 특별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기억나는 게 있다면 미투 운동이 지금 갑자기 빵! 터진 게 아니라 계속되어왔던 여성 운동들이 모이고, 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도 늘어나고 쌓여서 지금의 미투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저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네요. 미투는 폭로함으로써 가해자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행위인 거잖아요. 내가 피해자로서 제대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 가해자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만 해당할 수 있는 방식이죠. 가해자가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면 미투를 해도 가해자에게 크게 타격이 없잖아요. 그게 미투 운동의 한계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공론화가 된다는 점이 있으니까. 사회의 저명한 사람들도 성인지 관점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보는 기회라고는 생각했습니다.


Q. 성폭력이 걱정돼서 주변 사람의 행동, 옷차림 등을 지적하거나 통제한 경험이 있나요?


성폭력이 걱정되어서 다른 사람의 옷차림을 지적한 적은 없고요. 우리 집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신 친구들이 집에 돌아가려고 하면 ‘그냥 밤도 늦었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얘기했던 적은 있죠.


온 사회가 나서서 피해를 증명해줄 것이라면 그러지 않았겠죠. 물론 그런 사회라면 가해자도 가해하지 않았겠지만.


Q. 성폭력 피해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내 생활에 제약이 생긴 경험도 있나요?


밤에 나가면 어두운 곳에 갈 때 불안하다거나, 집을 구할 때 대로변에 있는 건 가격이 비싸다거나, 개인적으로 호신용품을 사는 것. 개인적으로 다른 곳에 지출할 수 있는 돈을 그곳에 쓰는 거니까 제 생활의 제약이라고 느낍니다. 성폭력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고, 이럴 경우엔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게 되고, 그런 것들도 저의 자원을 사용하는 것이죠. 하기 싫은데, 불안이라는 마이너스를 메꾸기 위해서 하는 행위니까요.


Q.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성폭력 사건을 들어본 경험도 있나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들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서 구체적으로 경험을 나누기는 (어렵고) 제가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 상황도 정확하게 몰라요. 그 이후에 있었던 일만 말씀드리자면 약간 다 쉬쉬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때는 미투 운동도 전이었고, 페미니즘 리부트도 전이어서,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군대에 가버리고 피해 여성은 겉돌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학교생활을 여기저기 참여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다 쉬쉬하니까. 말하기도 꺼리고요. 스스로도 그렇게 내재화했을 수도 있고요.


Q. 주변인이 가져야 할 역할이나 태도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은 기대하고 싶은 게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만약에 주변에 성폭력 피해가 생겼을 때 섣불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그것만 해도 중타 이상은 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아무 말도 하지 말기. 무슨 말이든. 위하는 말이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나름이기도 하고, 문화 자체가 문화니까 2차 가해에 해당되는 말을 하기가 너무 쉬워요. 우선 상대방에게 뭘 원하는지 물어보고 그걸 해주면 될 것 같아요. 공감해주기를 원한다면, 그냥 얘기하고 싶어서 얘기한 거라면, ‘그렇구나, 얘기해줘서 고맙다’라고 얘기한다든지, 같이 도와줄 수 있는지, 정보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알고 있으면 알려주고 모르면 찾는 걸 도와준다든지 할 수 있겠죠. 같이 욕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같이 욕해주고요. 일단 피해자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제일 도움을 주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Q.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은 여름님의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서 특별히 더 가깝거나 멀어졌다고 얘기하기가 좀 그렇네요(웃음)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피해자가 원하는 것 도와주기!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부영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