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휴일에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에서는 일본군 성노예제를 소재로 한 영화를 단체관람했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상담소에서 담소를 나누지만, 간혹 퀴어영화제를 가거나 채식식당을 방문하는 등 제안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면 함께 가기도 합니다.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선택한 "어폴로지(The Apology)"는 캐나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저는 올해 3월 영화제 때 이미 봤었던 작품인데 마침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을 한다는 소식에 한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폴로지"는 사과라는 의미의 제목인데, 길원옥 할머니가 영화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울분을 토하시더군요. 사과를 한다고 상처가 없어지냐고……상처는 안 없어지지만 마음은 조금 풀어지니까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거라고 하셨어요.
영화는 한국, 필리핀, 중국의 생존자 할머니들의 인터뷰 위주로 전개됩니다. 저는 특히 필리핀 아델라 할머니의 근심가득한 우려가 마음 시리도록 아팠습니다. 본인을 창피하게 여기고 떠날까봐 죽은 남편한테도 말 못했다고……가족들은 위안부 단체에 봉사다니는걸로 알고 있다고……'겁탈당한 건 엄청난 치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떤 무게로 생존자분들을 짓눌렀을까 감히 상상해봤습니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모인다는 필리핀 위안부 단체 롤라 캄파네라스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은말하기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작은말하기도 매달 한번씩 열리는 자조모임이거든요. 아델라 할머니가 왜 수십년간 침묵했었는지 너무 동감되고 그분의 선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네요.
중국의 차오 할머니도 무척 선한 인상이었어요. '위안소'에서 낳은 두명의 아이들을 일본군의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씀하시는데, 저렇게 말할수 있기까지 수없이 힘드셨겠구나, 스크린 속으로 뛰쳐들어가서 안아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분의 생존자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녀들에게 처음 피해를 말하게 됩니다. 이 영화 제작 과정이 큰 용기를 준것 같아서 저도 위안을 받았습니다.
차오 할머니는 청각이 잘 들리지 않지만 "위안소의 여성들"이라는 책을 출판한 작가가 할머니의 얘기를 끝까지 차분하게 경청하는 장면이 감동이었어요. 그는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게 되어서 사회운동가의 역할도 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증언을 하러 다니는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편히 쉬셔야하는데 아픈 몸 이끌고 여기저기 발언할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일본여자대학교에서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지지발언을 했던, 눈물을 흘린 일본 학생들의 연대감은 할머니의 말하기 힘 덕분인 것 같습니다.
가장 아팠던 장면은 할머니가 일본 방문했을때 우익 시민들이 심하게 모욕적인 배설을 할 때였습니다. 너무 잔인한 말들의 공격이 제가 겪은 2차 피해와 비슷한 상황도 있어서 크게 분노감이 올라오더군요. 그런 모진 말들을 들어가며 할머니는 꿋꿋하고 당당하게 증언을 이어갑니다. 13살때 만주 하얼빈으로 위안부로 동원되어 가시고,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힘겹게 떠올리면서도 증언을 멈추지 않으시는 그 힘이 대단해보였습니다.
일본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서 전세계에서 아이들도 동참하여 서명을 받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하여 천오백만명의 연대서명을 전달합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여성들도 피해를 겪었습니다. 필리핀 생존자들은 한국의 2011년 1000차 수요 시위 영상을 보며 한국으로 달려가서 소녀상 옆에 앉아서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싶다고 소망합니다. 이 장면을 기억하며 현재진행형인 전쟁중의 성폭력 생존자들과도 연대하는 마음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생존자들이 살아있을때 제대로 사과와 배상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영화가 공동체 상영되어서 연대의 힘이 될 수 있도록 널리 홍보하겠습니다.^^
함께 관람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페미니스트 아무말 대잔치 오셔서 제안하는것도 환영입니다. 모임에도 동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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