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유튜브로 보기 : https://youtu.be/Lc5Y6andIdc
[보통의 연대] 005. 중력을 넘어서 대학 내 성평등으로, 유니브페미 진서의 인터뷰
저는 지금은 유니브페미라는 단체를 만드는 준비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김진서라고 하고요. 작년에는 성균관대에서 총여학생회 재건 운동으로 성균관대 대표 페미로 얼굴이 다 알려져버린 슬픔의 페미가 된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Q. 유니브페미는 어떤 단체인가요?
유니브페미는 쉽게 말하면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예요.
작년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대학 내에서 페미니스트 탄압 혹은 여성혐오의 물결들이 아주 오랜 시간 있었어요. 저희 학교 같은 경우에는 작년에 총여학생회 폐지부터 그 이후에 여학생위원회도 폐지됐고, 타대 같은 경우는 학생들이 청원해서 성평등위원회 사업을 중단요청 한다거나, 총여학생회실을 빼앗길 상황에 처했죠. 작년에 연세대, 성균관대, 동국대에서 줄줄이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이후에 ‘(우리 학교뿐 아니라) 다른 대학생 페미니스트들과 연대하고 싶다’, ‘서울권, 혹은 수도권, 혹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되게 많았어요. 다들 그렇지 않아요? 너무 필요하지만, 누군가 시작하기 전에는 사실은 선뜻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한번 도전해보자’라고 생각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유니브페미 준비모임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5월부터 한 3개월 동안 30명 정도의 대학생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매주 연합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어요. 한 달여 정도 가입신청서를 돌려서 단체의 창립을 지지하는 발기인들을 모았고, 지난 8월 11일에는 100명 조금 넘는 발기인분들과 함께 발기인 집담회를 통해 발기인 회칙, 강령, 사업계획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9월 7일에는 창립총회를 통해 드디어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가 하나의 단체로서 출범할 예정입니다.
Q. 출범 후에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일단 가장 크게는 대학 내 불평등한 문화들에 대한 이슈파이팅을 위주로 활동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미투 이후의 대학’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미투 이후에 대학이 바뀌었을까? 바뀌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인가? 인권센터의 개입이 불분명해서인가? 학교 당국의 방해가 있어서인가? 혹은 학생들의 관심이 없어서인가? 직접 대학생들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대학생들의 입을 통해서 파악해볼 예정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대학 내 미투 고발이 사실 되게 많았잖아요. 교수에 의한 위력 성폭력부터 시작해서 교직원 혹은 학생 간 성폭력 등 대학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성폭력이 발생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 직접 나서서 싸우신 분들이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피해당사자를 지원하거나 아니면 조직적으로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한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어떤 활동을 해왔고, 그 활동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다고 생각하는지, (대학이) 변화했다고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봄으로써, 대학 내 계속 용인되었던 강간문화 같은 것들을 다시 되짚어보는 활동을 하려고 해요.
사실 대학에서 ‘누가 이런 대학 문화를 만들었나?’라고 하면 저는 용의자가 되게 많다고 생각해요. 학교 당국도 물론 (책임이) 클 것 같고, 인권센터, 교수들의 인권감수성, 혹은 교직원, 가장 크게는 학생들, 학생들의 자치 공간, 학생회, 학회, 동아리 등에 모두 펴져 있는 동질적인 남성중심문화, 폭력적인 문화, 강간문화, 군사주의 문화 같은 게 잘 버무려져서 지금의 대학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들을 이제 하나하나 고발해보려고 해요.
Q. 대학 내 강간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대학에 강간문화가 만연하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상황들에서 항상 나오는 반박이 (사실 반박 같지 않은 반박인데) ‘너만 그런 거 아니야?’예요.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겪은 일을 왜 문화라고 확대하냐, 구조 전체로 일반화하냐’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저도 대학을 몇 년 다녔고, 대학에 다니는 수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건, 이게 정말 단일한, 혹은 어떤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거예요. 많이 발화되지 못하고 혹은 많이 공개되지 못했다뿐이지, 그렇다고 그 경험이라던가 상황이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간문화가 없는 게 아니고, 그게 없다고 느낀다면 좀 더 네가 열심히 봐야 한다”
‘나는 대학 들어와서 이랬다’라고 하면 ‘너는 고학번이라서 너 때나 그랬지 우린 이제 안 그런다’라고 막 반박을 해요. 하지만 저에게도 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도 똑같이 겪더라고요. 장기자랑에 필수로 나가야 한다거나, 술을 강요한다거나, 이런 것들이 많이 나아졌다고 분명히 말을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 있어요. 나이 많은 남자 선배들이 신입생 여자애들 이렇게 앉혀놓고 외모 순위를 매긴다거나. 최근 교대에서도 되게 많이 터졌잖아요. 여학우들을 계속 품평하고 상품화한다는 대자보도 많이 붙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교수님도 강단에서 ‘실수’를 참 많이 하시죠.
성폭력 사건들이 실제로 비일비재하고, 이것들이 신고되고 해결되(어야 해요) 그런데 해결까지 가기 전에 애초에 신고하는 것만 해도 신고할 곳이 없어요. 학생회는 성평등과 관련된 의제들을 ‘너무 정치적이에요’라는 이유로 말하기 꺼리고, 인권센터는 2차 가해나 하고 있고(예를 들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가해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거나, 피해자에게 신고 철회를 종용하거나), 학교 당국에 신고하자니 ‘학생회에 신고해라, 인권센터에 신고해라’ 쉽게 이야기를 해요. 그런 상황들이 계속 연출이 돼요.
사실 저는 그런 상황이 지속됐을 때 가장 강력하게 힘을 얻는 사람을 가해자라고 생각하거든요. 대학 안에서 내가 내 동기에게, 가해자가 교수라면 내 학생에게 혹은 조교에게 무슨 짓을 저질러도 ‘피해자는 신고할 곳이 없고 나는 처벌받지 않는구나’ 이 사실을 계속해서 각인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성폭력은 계속 저질러도 되는 문제가 되는 거죠.
Q. 성폭력 피해자들이 대학 내 페미니스트에게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작년에 총여학생회가 폐지되고 문과대 여학생위원회라는 곳이 거의 유일한 여학생 자치기구로 남아있었어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신고할 곳이 없으니까 다 문과대 여학생위원회로 온 거예요. 문과대뿐 아니라 타 단과대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도요. 사실 여기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잖아요. 내담하고 피해자 대리인을 해준다고 해도 사실 완전한 독립성을 띤 기구도 아니다 보니 한계 지점들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 여기로만 찾아왔던 거예요. 왜냐하면 이름 있는 여학생 기구가 여기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올해 초에 문과대 여학생위원회도 문과대 학생회, 문과대 단위 운영위원회 의결로 폐지가 됐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제 어디로 찾아가냐면, 과에 있는, 그냥 공부를 하고 있는 여성주의 학회를 막 찾아가요. 저한테도 만날 연락이 와요. 학생회에도 신고할 수 없고, 인권센터도 못 믿겠고, 여학생위원회도 없으니까, 학교에 좀 이름 알려진 여성주의 활동가한테 막 찾아오는 거예요.
(처음 성폭력 피해자의 연락을 받았을 때) 제가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이 학교에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해결해줄 곳이 없구나’라는 걸 정말 피부로 느낀 첫 순간이었단 말이에요. 뭐라 답장 드려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렇게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리는 거예요. 내가 뭐라고 답장하지? 답장했을 때 이분이 상처받으면 어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어서요. ‘당장 형사 고소를 같이 도와드릴게요’ 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잘 모르니까. 도움을 드릴 수 없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또 한번은 총여학생회 재건 운동(<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을 했을 때. 저희는 매일매일 학생회랑 싸우고 만날 어디 가서 피켓 들고 소리 지르고 이런 일을 하던 사람들의 모임인데, 어떤 분이 저희한테 연락을 주신 거예요. 그때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었어요. 많이 화가 났었어요. 당시 총여학생회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많이 돌았는데, 이 연락이 총여학생회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인 거예요. 학내에 정말 단 한 곳도 없다니요. 성폭력 사건 피해를 호소할 곳이, 신고할 곳이, 도움을 청할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이 사람이 여기를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학교에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이유인 거예요.
Q. 대학 내 성폭력,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까요?
(항상 느끼는 건) 단순히 형사 고소를 해서, 가해자를 실형을 살게 한다고 해서, 이게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는 거예요. 일단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요. 실제로 대학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정말 실형을 산 가해자가 몇 명 있나 하면 저는 지금 떠오르는 사건들만 해도 한 명도 없거든요. 어떤 한 대학을 보니까 만약 형사 고소를 했는데 무혐의 결정이 나거나 무죄 판결이 나도, 학교 내에서 그래도 이 사람을 학칙상으로 처벌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대학이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게 되게 의미하는 바가 많다고 느껴요.
특히 대학 같은 이런 공동체 공간에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단순히 가해자를 세게 처벌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은 공동체에 남아있는 사람들, 남아있는 문화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문제라고 항상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사실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거죠. 가해자는 생각보다 쉽게 돌아오더라고요.
가해자가 돌아왔을 때 하고 다니는 말이 뭐냐? ‘그냥 실수였는데 걔가 좀 예민하네’, ‘알지, 걔가 좀 이상했잖아’ 이런 말들을 계속 하고 다녀요. 혹은 가해자 주변인이 ‘아, 그 형 진짜 좋은 형인데. 술 먹고 실수한 거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 이런 말들을 계속 하는 거예요. 다 제가 실제로 들은 말이에요. 너무 어이가 없는 거예요. 그런 말들이 계속 학교 내에 다시 돌아요. 그러면 피해자는 설 곳을 잃고, 갈 곳을 잃고,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거죠.
만날 그런 것들을 지켜보게 되니까, 저희가 느끼는 건, 아무리 인권센터에 같이 신고를 하고 경찰서에 같이 달려간다고 해도 저희가 할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닌 거예요. 연락을 받았을 때 느끼는 무력감과, 어쩔 수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도 물론 있지만, 만약 저희가 도와드려서 성공적으로 어떤 형사처벌을 받는다 해도, 그래도 남는 게 계속 있는 거예요. 이게 다가 아닐 텐데, 분명히. 저 사람(가해자)은 돌아올 거고, 이 사람(피해자)은 갈 곳을 잃을 거고, 우리는 뭔가 더 말을 해야 할 텐데. 그게 뭐지? 라는 고민을 되게 오래 했던 것 같아요.
Q. 대학 내 성폭력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 필요한 것은?
사실 어떤 문화를 바꾸는 것, 구조를 바꾸는 것은 학생회와 학교 당국, 인권센터, 교수 등 다 같이 어떤 변화의 고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가장 큰 것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교에서 제발 해결을 해라. 아주 기초적인 거죠. 교수-학생 간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학생-학생 간 성폭력 사건이라도 (물론 학생 사회도 그 책임을 지겠지만) 이것을 용인했던 학교와 이것을 정말 해결할 책임이 있는 인권센터, 성평등센터 같은 곳들이 필요한 체계를 갖추고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이 문제에) 나서서 뛰어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잘 가시화되어 있는 교수 성폭력 사건들조차도 사실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고 있잖아요. 인권센터에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학교가 ‘솜방망이 처벌’을 계속 내리고.
성폭력 사건 해결의 체제 자체가 안 갖춰져 있거나, 혹은 갖춰져 있더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지킬 의지가 없거나, 혹은 그 해결 과정에 학생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거나 하는 경우들이 너무 많아요. 사실상 어떤 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들이 되게 많은 거죠. 그래서 학교가 제일 먼저 해줘야 할 일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결 매뉴얼을 철저히 구축해서 그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교수들, 인권센터, 학생회에 충분히 배포해서 ‘신고가 들어오면 이렇게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을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신고가 들어오면 피해자의 말을 좀 듣고 (사실 안 듣거든요) 어떤 해결을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하는 태도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대학 내 강간문화 해결하기 위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대학을 공동체로서 사유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대학이 어떤 물리적 공간에 엮어있어서 같이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인지 이상의, ‘이 사람은 나와 함께 어떤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이고 이 사람의 평등과 안전은 이 사람의 의무이고 책임이기도 하지만 나의 의무이고 책임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사유하게 됐을 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해결될 수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한 공동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사람이 침해당한 안전, 이 사람이 침해당한 권리 같은 것들은,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는 것은 나의 일이기도 하잖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한 공동체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 사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뛰어드는 거죠. 나의 일은 다들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나의 취업 문제는 열심히 해결하려고 하니까. 학생회는 이 공동체에 있는 구성원들을 대의하는 기구이자 어떤 자치적인 기구, 자치활동을 하는 기구니까 이 공간에서 불평등한 문화를 개선하는 건 되게 당연한 업무, 당연한 의무가 되는 거죠. 또 한편으로는 학생회가 꼭 아니더라도 이 학생 개개인들이 불평등한 문화에 문제제기하고 개선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가 되는 거죠. 우리는 당연히 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공동체니까.
아무리 학생회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배포한다고 해도 구성원들이 ‘공동체’라는 생각이 없으면 ‘공동체적 해결’까지 갈 수가 없잖아요. 아무리 영웅적인 학생이 나타나서 반성폭력 가이드라인 막 만들고 학생회칙 막 만들어서 우리가 지킵시다!‘라고 해도 결국 (대학이) 바뀌지는 않거든요. 그 학생회가 못해서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회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구성원들이 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 책임감, 애정 같은 것들을 가지지 않는 이상 쉽게 해결될 수가 없는 거죠.
’우리는 대학 공동체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고 이 공동체의 평등과 안전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고, 그 평등과 안전의 기준은 이 공동체에서 가장 약한 사람 가장 권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 가장 소수자 약자에게 맞춰줘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해결되지 않을까. 거기까지 가는 데 오래 걸리겠죠? 그렇지만 그런 생각들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Q.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학 페미니스트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고 계속해서 엮어내기 위해서는 각 대학에 페미니스트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도 단과대 새내기 새로배움터에 갔는데 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술 먹다가 이상한 주사 같은 거 하면 제가 째려보면서 ‘뭐라고 했냐, 우린 그런 거 하지 말자, 시대 뒤떨어진다, 너 진짜 별로다’ 이런 말 하면 사람들이 막 ‘작년까진 아무도 뭐라고 안 했는데 왜 갑자기 쟤만 그러지?’ 이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실 저는 ‘언니, 누나, 그때 새터에서 그 말 해줘서 너무 좋았어요, 너무 안심됐어요’ 이런 연락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아, 이거구나. 하나의 대학에 페미니스트가 한 명씩만 있어도, 그 사람이 자기의 이야기, 자기의 말을 계속 하기만 해도, 분명히 감화되는 사람들이 있고 필연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계속 따라오지 않을까요?
또 한편으로는 저희가 항상 새내기 새로배움터에 가서 새로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친해졌어요. 그러면 꼭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언니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언니랑 같이 할래요’ 이러면서 막 같이 따라온단 말이에요. 집회 따라오고 학회 따라오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랑 계속 활동을 같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원래 매년 반성폭력 성평등 교육을 하러 갔고, ’여성 주체‘라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여성 주체들은 술을 마시다가 생리통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여학우들 데려가서 여학위 방에서 약 먹이고 쉬게 하고,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시키고, 사후 해결 처리하는 과정들을 도와주고 했어요. 사실 되게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올해는 문과대 학생회가 “너네끼리 페미니즘 책 몇 권 읽었다고 전문성 얻는 거 아니잖아. 전문성도 없는 너네가 무슨 교육을 하냐”라고 하면서 사실상 못 오게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무슨 일이 생겼냐? 새로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분명히 새터가 불편했던 사람, 혹은 조금 안 맞았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못 오는 거예요. 같이 페미니즘 공부하고 여학위 활동하면서 (이 사람이 느낀) 불편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같이 고민하고 알 기회를 다 박탈당한 거죠. 그만큼 여학생 기구에 대한, 여학생 자치에 대한, 여성주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너무 팽배하다 보니까, 또 다른 페미니스트를 만나고 혹은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되게 힘든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어요.
’아, 나는 페미니즘은 뭔지 모르겠고 저 선배들 소리 지르면서 술 마시는 거 불편한데, 왜 이렇게 짜증 나는지 모르겠네‘하는 사람들,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지금의 체제, 가부장적 질서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당신과 함께 할 공동체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아마 저희가 계속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Q. 대학 성평등 지수도 발표할 계획이라고요?
대학을 평가하는 지수는 많잖아요. 예를 들면 취업률을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입학할 때 수능컷으로 평가하거나. 신문사에서도 하고, 기업에서도 하고. 그런데 사실 그런 평가를 할 때 지수 중에 하나로 성평등 지수는 전혀 포함되지 않거든요. 이 학교의 문화 같은 것은 전혀 측정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저희는 이 대학이 좋은 대학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이 대학의 문화가 과연 얼마나 평등하고 모든 구성원에게 안전한가’를 되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미투 이후에 대학이 얼마나 변화했는가, 학생회는 얼마나 성평등한 공약을 냈는가, 그 이외에도 다양한 기준들을 잡아서 (유니브페미가) 대학마다 ‘대학 성평등 지수’를 평가해보면 어떨까 해요.
유니브페미에서 교육 콘텐츠 같은 것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학 페미니스트들이랑 같이 교육 콘텐츠 공부하고, (페미니즘) 역사 공부하고, 성폭력 공동체적 해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막 공부를 해요. 그리고 대학의 학생들한테 또래 강연을 하는 거예요. 꼭 일방향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계속해서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새터 열 때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강연을 하는 거죠. 그 강연을 들은 학생회만 인증 마크 같은 걸 주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인증 안 받은 학생회가 뭔가 이상해지는 거예요. 점점 페미니즘 안 하는 학생회, 학회, 동아리, 이런 곳들 기분이 이상하게 만드는 거예요. 어, 나 빼고 다 하네? 같이 (해야 하나?)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니브페미는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고, 당신이 대학 페미니스트라면 유니브페미 회원이 될 수 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유니브페미를 치면 공식계정이 다 있습니다. 회원이 되시면 저희가 계획 중인 미투 이후의 대학, 대학 성평등 지수, 교육 콘텐츠 개발, 정기 세미나도 같이 하실 수 있고요.
꼭 어려운 페미 공부하지 않아도 회원의 날 같은 때는 각 대학 페미니스트랑 모여서 얘기를 해요. 타 대학 페미니스트 만나면서 용기도 얻어갈 수 있고, 우리 학교에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도 할 수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어떤 분이 ‘저희 학교는 페미니스트 한 명도 없어서 뭘 못 하겠어요’ 그러면 다른 분이 ‘어, 저 그 학교 다니는데요? 저랑 같이 하실래요?’ 그런 가능성들이 상당히 많이 열려있는 곳이에요. 9월 7일 창립총회부터 이후 활동들까지 많은 관심 가져 주시고 절대 회원가입 해주세요. 저희가 정말 모든 것을 갈아서 대학을 어떻게든 조사볼 테니까 유니브페미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있음을 항상 기억하기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진행하고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