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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연대] 008.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성폭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바다의 인터뷰
  • 2019-09-26
  • 1373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08.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성폭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바다의 인터뷰


저는 바다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고요. 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인터뷰도 처음이고, 이런 주제로 대화해보는 것도 처음이네요. 사실 최근에 굉장히 대두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솔직하게 그냥 느끼는 바를 말씀드리려고 생각했습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사실 성폭력 주변인이라고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내가 성폭력의 당사자가 된다면’ 이렇게는 생각을 해봤지만. 사실 주변인이 가장 흔할 수 있는 위치잖아요. 근데 그렇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다는 게 좀 참신하게 들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진짜 이런 주변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Q. 평소에는 성폭력 당사자가 될 가능성을 더 많이 생각했나요?


만약에 내가 이런 범죄를 당하면 어떡하지? 성범죄를 당하면 어떡하지? 그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은 안 했어도 그냥 매체나 언론을 보면서 은연중에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Q. (성폭력과 관련된) 어떤 언론이나 매체를 보았나요?


사실 영화나 소설에서 (성폭력을) 하나의 흔한 소재로 쓰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성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춘 경우도 있지만, 굳이 이 장면이 들어갔어야 했나 싶은 장면이 들어가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걸캅스>라는 영화를 봤어요. 최근에 많이 발생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영화였어요. 여성에게 접근하여 약을 이용해서 무력화시키고 불법 영상을 촬영해서 사이트를 운영하는 가해자 집단을 검거하고 분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범죄가) 단순히 개인의 흥미 위주가 아니라 정말 조직적이고 집단으로 체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어요. 영화적 묘사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가해자들이 범죄에 대해 정말 가볍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도 많이 났어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뿐이지 이미 한 여성의 삶이 많이 망가진 거잖아요. 그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정말 속이 시원했어요. 현실에서는 이게 정말 가능할까 싶어서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기도 하고요.


가해자가 너무 떳떳한데 피해자는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일상이 망가진다는 현실이 제일 속상하고 씁쓸했어요. 사실 현실에서도 집행유예로 끝나는 사례들이 많다고 들었고요. 가해자들이 만약에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끝난다면 피해자들이 어떻게 신고를 할까요? 보복이 너무 두려울 것 같은데. 만약에 신고를 했는데도 처벌이 안 되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될까. 이런 면에서 법이 강화되거나 아니면 사회적 인식 자체가 (성폭력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면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걸캅스中] 약물을 사용해 피해자를 강간하고, 온라인 상에 불법촬영물을 판매하는 가해 조직 ⓒ CJ엔터테인먼트
[걸캅스中] 약물 강간 및 불법촬영 유포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활약하는 여성 형사들 ⓒ CJ엔터테인먼트


Q. 성폭력과 관련된 매체를 본 경험이 본인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사실 저도 과거에 교육받은 것이 있잖아요. 어렸을 때 성폭력예방교육을 받으면 ‘여자가 옷을 조신하게 입어야 한다’, ‘왜 밤늦게 돌아다니냐?’ 이렇게 여자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교육이 정말 당연하다고 배웠어요. 어른들이 당연하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그렇게 자라왔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관련된 많은 정보들과 이렇게 여러 가지를 듣다 보니까 피해자한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게 일부를 전가한다 할지라도 그 자체가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Q. 지금도 막연하게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라는 시각이 굉장히 심하잖아요. 그래서 여성들이 공중화장실에 있는 구멍을 막고 다니기도 하는데, 혹시 본 경험이 있나요?


사실 공중화장실에 대해서는 요즘 어딜 갈 때나 화장실에 엄청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정말 생활에 제약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화장실에 원래 이렇게 구멍이 많았었나 싶고. 혹시 여기에 카메라가 장착된 게 아닌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상식 밖의 일을 제가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이런 구멍들에 누군가가 스티커, 화장지, 실리콘으로 막아놓은 게 요즘엔 진짜 많이 보여요. 이분들도 나랑 똑같이 불안한 심정이고, 이걸 막기 위해서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알게 모르게 연대감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게 정말 실생활에 기본적인 생리 현상에 딱 와닿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원래는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이나 잘못된 인식이 있던 분들도 ‘내가 왜 이렇게 조심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걸 계기로 좀 더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Q. 일상에서 그런 경험을 하면 할수록 인식이 많이 바뀌었군요?


그렇죠. 진짜 이건 너무 실생활이잖아요. 이런 거로도 여성의 삶이 제약된다는 게 너무 피부로 와닿았어요. 아, 이게 바뀌어야 하는구나. 너무나 잘못된 게 많고 억울한 게 많구나 싶었어요.


마그미스티커와 실리콘, 휴지, 심지어 껌 등으로 구멍을 막아 놓은 여성 화장실. ⓒTHE FACT


Q. 불안 때문에 마음이 힘들거나 생활할 때 특정 행동을 못 하게 되는 경험도 있었나요?


사실 그렇게까지 심한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밤늦게 다니는 걸 최소화하게 되었어요. 놀다 보면 시간이 늦어질 때도 있고, 밤늦게 자유롭게 새벽에 나가고 싶을 때가 있는데요. 사실 이건 남녀 떠나서 남자든 여자든 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지만, 아무래도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닐 때 더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부모님도 여자라고 특히 더 걱정하시고 일찍 다니라고 하시니까. 이런 부분에서 조금 생활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Q. 인식이 바뀌고 나서 스스로 바꾼 행동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바뀐 점을) 크게 느끼는 건 친구들과 대화할 때라고 생각해요. 원래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 저도 제가 막혀 있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이런 주제는 툭 터놓고 대화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저도 모르게 ‘여자도 조금 잘못이 있다’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언론에서 이슈가 크게 터졌을 때 제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하고요. 그런 이슈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서로 생각을 공유하게 되는 게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렇게 친구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말은 안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런 점도 알게 되었고요.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 같아요.


Q. 혹시 아는 사람이 성폭력을 겪었거나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험도 있나요?


제가 직접 아는 사람은 아닌데 친구의 얘기를 통해서 들었던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실제 사건이다 보니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실제로 이게 영화나 언론에만 나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진짜 실생활이구나, 이런 점이 너무 무섭게 다가왔어요. 그분(피해자)은 현실이잖아요. 어떻게 그걸 겪어내고 있을까? 주변인들이 많이 도와준다면 좋을 텐데. 만약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면 그분의 삶이 걱정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도) 지위를 이용한 성추행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는 말씀 못 드릴 것 같아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그랬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충격이었고, 사람이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느냐 하면서 기가 막혔어요. 저는 (그 사건이) 다 끝나고 나서 정리된 후에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넘어갔던 것 같아요.


Q. 만약 고립된 피해자를 보면 본인은 어떻게 하고 싶어요?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저도 조금 조심스러울 것 같아요. 만약에 (주변에 피해자가) 있다면 관련된 기관이나 센터에 한번 가볍게 문의를 하고, 제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받고 그걸 전달해주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위로차 말했는데 그분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무작정 연결하고 ‘야, 센터 가보자’ 이렇게 하는 것은 그분에게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제가 적절히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해보려고 생각해봤습니다.


Q. 여성 차별에 대한 시위나 행사를 목격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정말 다양한 편견과 억압에 맞서는 분들이잖아요. 사실 저는 용기가 안 나서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있는데요. 변명이죠. 이런 편견을 깨는 게 욕도 많이 먹고 힘들고 외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을 보면서 정말, 사실 본인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비슷한 사례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이잖아요. 정말 멋있고 ‘아, 용기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올해 7월부터 매주 금요일 9차에 걸쳐 진행된 페미시국광장. 다가오는 9월 28일(토) 오후 6-8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마무리 집회(10차 페미시국광장)를 앞두고 있다 ⓒ 여성신문


Q. 성폭력에 관해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사실 제가 어렸을 적에 성추행 비슷한 상황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어요.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게 성추행인지도 인식하지 못했어요. 기분이 좀 나빴지만 이게 성추행인가 하는 것까지는 못 느꼈던 것 같아요.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장난이 되는 거죠. 지금은 제가 나이를 먹었으니까 그때 과거를 돌아보면 이게 정말 성폭력이고 정말 불쾌한 일인데. 아동들도 알게 모르게 (성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뭔지 몰라도 좀 기분이 나쁘긴 한데 이게 뭐지?’ 이런 마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실 대응하기도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들은 원래 역사 속에서 계속 억압받아 왔잖아요. 과거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었고 지금도 계속 풀어가야 하는 문제가 있죠. 그래서 저는 가해자가 가해자임에도 오히려 당당하고 피해자의 ‘싫다’는 말이 정말 말 그대로 ‘싫다’는 뜻인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자체가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피해자에 대한 뿌리 박힌 편견에 의한 인식이 깨지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부터 바꾸는 게) 가장 첫걸음이지 않나. 사회에서 이게 잘못되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테고, 모두가 그러면 (편견을) 바꿔 나가기가 쉬울 것 같아요.


Q. 인터뷰 초반에는 성폭력 주변인에 대해 생각을 많이 안 해봤다고 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성폭력에 대해서 생각과 관심이 많은 분이라고 느꼈어요.


‘주변인’이라는 단어로 잘 접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원래는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사회를 겪다 보니까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관심을 가지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듣는 것, 겪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저처럼 몰랐는데 깨닫게 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Q. 인터뷰를 하고 난 지금, 본인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옛날에만 해도 한 100M 달리기라고 하면 100M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래도 한 40M? 제가 뛰어가야죠. 제가 뛰어가야지 이게 점점 가까워지니까. 더이상 저도 ‘이게 남 일이라고 생각해선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저는 계속 (저를) 방관자라고 생각했었어요. 애써 방관한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딱히 행동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행동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곳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되게 좋은 캠페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은 ‘그래도 설마 내 얘기일까’ 싶기도 했는데 이렇게 주변인이라고 하니까 확 와닿잖아요. 포괄적으로 바라보니까 확 와닿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이렇게는 생각 안 해봤으니까. 항상 ‘내 가족이 그런다면? 내 친구가 그런다면?’ 이렇게만 질문을 받았지. ‘주변인이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니까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분들이나 상담소 관련된 분들 정말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괜찮아요, 같이 해요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율빵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