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실현을 위한 국회 만들기의 출발! 미투운동에 응답하는 21대 국회 구성!” 후퇴 없는 선거제도 개정안 즉각 처리 촉구 기자회견
“성평등 실현을 위한 국회 만들기의 출발!
미투운동에 응답하는 21대 국회 구성!”
후퇴 없는 선거제도 개정안 즉각 처리 촉구 기자회견
일시 _ 2019년 12월 12일(목) 오후 2시 20분
장소 _ 국회 정론관
공동주최 : 유니브페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주관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기자회견 순서
- 사회 :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발언1 : 안선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 발언2 : 김화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
- 발언3 : 노서영 (유니브페미 대표)
- 발언4 :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 발언5 : 박한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
- 기자회견문 낭독 : 최가영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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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1 : 안선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55.5세 41억 83% 남성 국회. 정치가 제일 안 바뀌고 있다.
어제 일어난 젠더폭력 사안을 대책 논의하는 국회를 보고 싶다.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에 핏줄 같이 흐르는 성폭력, 젠더에 기반한 괴롭힘, 위계, 차별을 평범한 목소리들이 고발한 것이었습니다. 2018년 한국 트위터 1위 단어는 ‘스쿨미투’였습니다. 한국 연극계 1인자, 차기 대권주자 이윤택, 안희정이 성폭력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불법촬영과 온라인성폭력은 동료시민 남성에 의한 위협과 모욕이 얼마나 일상적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3년 전 남자의대생 카톡방 사건은 기자 단톡방을 거쳐 남자초등학생 카톡방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불법촬영 유포, 성매매, 집단성폭력은 우리나라 최고 연예기획사에서 일어났습니다. 여성연예인들은 존엄한 삶을 살고자 분투하고 있는데도, 경찰은 가해자와 연루되어 있고, 검찰은 내부 성폭력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어제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0년간 친밀한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피해자가 드러난 것만 887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가 안 바뀌고 있습니다. 평균 연령 55.5세. 1인당 평균 재산 41억원, 남성 83%인 국회. 이런 국회는 우리 현실과 너무나도 다릅니다. 여성이 인구 중 49%인데 국회에는 17%만 들어갔습니다. 여성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남성평균의 67.2%인 229만원인데 국회의원 재산 평균이 41억입니다. 국회는 올 한해 헌법불합치 결정된 형법상 낙태죄 폐지는 커녕, 형법상 강간죄 개정 논의도 못했고, 성폭력 민사소송 시효 연장 하나도 통과 못 시켰습니다. 국회는 장애인, 이주여성, 성소수자를 대변하기는 커녕 이들을 혐오하는 주범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총리로 일부 기독교계의 대변자로 종교세 징수를 미뤄오고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지속해온 70대 남성 정치인을 지목했습니다.
이대로는 정치도, 우리들의 삶도 망해갈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문제의 해결과 대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 다니는 우리 모습이 국회에 있어야 합니다. 16세와 18세 여성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를 법안으로 논의하고, 2-30대 여성들이 성별격차를 예산안에서 찾아 바꾸고,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 재판 과정의 문제를 국정 감사에서 질의하며, 소수자들이 가족 구성권과 사회보장제도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원래의 국회의 모습이고, 정치의 역할입니다. 후퇴없는 선거법 개정, 패스트트랙 상정 및 통과는 최소한의 책임이고 염치입니다.
■ 발언2 : 김화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내년에 만 18세가 되는 여성 청소년입니다. 저는 오늘, 선거연령 하향을 요구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소비되곤 합니다. ‘감정적이다’, ‘지금은 공부해야 할 때다’라는 이유로, 오래도록 청소년의 참정권은 배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스쿨미투’라는 이름의 학내 성폭력 고발을 기억하시는지요. 곳곳에서 청소년들은 스쿨미투 집회를 열고, 각자의 자리에서 싸워왔습니다.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을 넘어 성평등을 요구하는 주체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학교는 바뀌지 않았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철없는 아이들의 투정’ 정도로 치부됩니다. 그간 학내 성폭력이 은폐되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 청소년의 말할 권리가, 정치할 권리가 박탈되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투표권이 없는 상황에서, 여성 청소년은 자신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고민하고 만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성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투표 연령을 한 살 내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이 아닌 대상으로 여기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권리를 박탈하는 사회를 전복시키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폭력적인 교실을 바꿔낼, 성 평등한 일상을, 삶을 일궈낼 권리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페미니즘 정치를 요구합니다. 정치는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청소년 남성만을 위한 정치를 끝내고 여성 청소년, 소수자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선거 개혁을 요구합니다.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상정되고 본회의의 부의되었던 순간들은 저를 비롯한 청소년에게 안전한 일상을,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희망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기대했던 바램을 저버리지 말아 주세요. 2020 총선에는 청소년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선거 연령 하향 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합니다.
■ 발언3 : 노서영 (유니브페미 대표)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 대표 노서영입니다. 촛불 이후, 정치는 더 이상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증명도, 설득도, 고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굳건한 양당체제 속에서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 목소리가 큰 사람만이 국민을 담보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내 소수자정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학생들이 총여학생회의 존폐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회의장에 찾아가서 목소리를 내도, 아무도 나오지 않거나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생대표자들이 타당한 절차도 없이 개최한 학생총투표, 즉 다수결의 결과로 총여학생회는 폐지되었습니다. 그것이 진정 민주주의냐는 물음에, 익명 게시판은 성희롱과 비방으로 응답할 뿐이었습니다. ‘모두’의 뜻에 따르겠다는 학생대표자들은 80년대에 비해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졌으니 충분히 평등해졌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현실은 여전히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의 호소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8년 미투운동을 하며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말했다면 2019년 올해에는 “한 명의 여성도 더 잃을 수 없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의 요구로 불법촬영이 범죄임을 알리는 판넬이 곳곳에 붙은 해이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노력으로 낙태죄 헌법불합치 헌재 판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는 연말까지도 권고에 맞는 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의석수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며 서로 다투는 동안, 또다시 김학의, 윤중천, 최종범, 승리, 양현석, 강지환 씨는 풀려났습니다. 국회는 무얼 했습니까.
어제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최소 2.3일마다 1명의 여성이 남성 파트너에 의해 죽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2018년까지 5년간 대학 내에서 신고된 성폭력 사건만 320건입니다. 성차별, 젠더차별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분명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국회에는 아직도 여성의 문제를, 소수자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당장 대의제에 대해서, 대표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저 선언하는 대표자는 대표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국민’을 부르짖으며 그 국민들의 삶에 당장 무엇이 더 필요한지, 어떤 정치적 선택이 그들을 위해 옳은지는 고민하지 않는 그런 대표자를 더 이상은 원치 않습니다.
이제는 ‘국민’이라는 말 속에 아직도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대표자가 필요합니다. 필요할 때만, 선거철에만 국민을 찾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동안 대의되지 못한 여성·성소수자·장애인·청소년·이주민·비정규직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며, 무엇이 옳은지 토론하는 국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연동형 비례대표제, 더 나아가서 전면적 완전비례대표제로의 이행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를 펼쳐보이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 동료 정치인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을 목격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라는 국회는 더 나은 우리 모두의 삶을 그리는 곳입니다. 지금은 정치의 문이 너무 좁은 데다, 그 바늘구멍을 뚫은 국회의원들이 구멍을 더 작게 만드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주장을 하며 그 ‘모두’나 ‘국민’이라는 표현에서 한 명이라도 더 배제하기 위해 화합하는 지금의 국회, 50대 이상 남성 위주의 기성 정치. 선거법이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 발언4 :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나중에’ 정치는 이제 그만, 다양한 국회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즉각 처리하라!
2018년 12월 15일, 여야5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국회의원 수 확대 검토,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합의했습니다. 2019년 4월 30일 국회는 50%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중심으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까스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날까지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각 당의 정치적 이익만을 생각하며, ‘합의’라는 단어를 앞에 세우고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처리를 하염없이 미루고 있습니다.
2018년도 #미투운동 이후 국회는 눈치라도 보듯 수백 개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법안들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입니다.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성차별과 성폭력 사건들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해결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범죄에 대한 불합리한 상황은 도대체 왜 생겨나는 것입니까?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라는 슬로건에 왜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남성이 과대대표되어 있는, 획일화된 국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0대 국회의 모습은 평균 연령 55.5세, 고학력, 남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획일화된 국회를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특정 연령과 계급, 학벌의 사람들이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겠다고 나서는 불평등한 국회는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여성,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노동자들로 구성된 다양한 모습의 국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현재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해 절반 이상의 표를 사표로 만드는 지금의 선거제도가 개선되어 민의가 선거결과에 더 잘 반영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현재의 남성 중심 거대 양당정치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폐쇄적인 공천과정은 좀 더 투명하게 바뀔 것이고, 18세 청소년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됩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다양한 정당과 다양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페미니스트 정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바라는, 그리고 지금 꼭 필요한 선거제도 개혁은 각 당의 정쟁의 논리로만 사용될 뿐입니다.
이번이 아니면 국민들은 또 4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나중에’ 정치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나중에’ 정치보다 현재 국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고민하여 행동해야합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어야 합니다. 역대 최악의 법안 처리율을 기록한 20대 국회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국민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퇴장하길 바랍니다.
■ 발언5 : 박한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
지난 10일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가 종료되었습니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는 인권의 관점에서도 오점만을 남겼습니다. 2018년 미투운동으로 성차별과 성폭력의 현실이 극명히 드러났지만 정작 이를 받들어야 할 국회에서는 수많은 미투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한 채 그대로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를 통해 낙태죄, 양심적 병역거부 등 반인권적 법안들의 위헌판단이 나왔지만 공을 넘겨받은 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17대 국회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논의해 온 차별금지법이 발의조차 되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지향을 삭제하고 성별을 이분법으로 축소하는 법안이 발의된 것에 20대 국회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국회가 다양성과 인권의 가치를 실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혐오에 동조하고 있는 것에는 경직된 국회 구성에 한 원인이 있습니다. 국회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사를 대변하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공간이 되어야 함에도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 비장애인 등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에서, 여성,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요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합니다. 나아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기득권을 가진 거대정당만이 대표되고 다양한 가치를 대표하는 군소정당들은 대표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선거제도 개혁은 다양성과 소수자 인권의 보장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의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적인 방향입니다. 시민들의 구성과 비슷하게 구성되고,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전달되는 국회가 될 때만이 혐오와 차별을 종식하고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 정치와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 시민들은 끝없이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미투운동을 통해 드러난 성차별과 성폭력의 현실에 수많은 여성들이 분노하고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평등한 선거권을 요구하는 청소년들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장애인들, 인종차별 철폐를 바라는 이주민들의 외침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국회가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 부릅니다. 그러나 선거가 진정한 축제가 되려면 모든 이를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제도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국회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키십시오. 마지막 정기회가 끝났지만 아직 국회 임기는 5개월 남아 있습니다. 20대 국회가 최악의 오점만을 남긴 채 종료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다음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소임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 기자회견문
“성평등 실현을 위한 국회 만들기의 출발!
미투운동에 응답하는 21대 국회 구성!”
후퇴 없는 선거제도 개정안 즉각 처리 촉구 기자회견
지난 12월 8일, 핀란드에서는 역대 그리고 전 세계 최연소의 34세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신임 총리 산나 마린 의원은 레즈비언 부부 사이에서 자랐으며, 노동자 계급 집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5개 정당 대표는 모두 여성이며, 이 중 네 명은 30대 청년이다. 또한 19명의 내각 구성원 중 12명이 여성으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과 성평등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18세부터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으며, 국회 의석이 정당이 획득한 득표율대로 배분되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와 정반대 상황이다. 신임 국무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언급되는 김진표 의원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공공연히 탄압하고, 보수 개신교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데 앞섰던 72세의 인물이다. 더욱이 김진표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은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스스로 후퇴와 퇴행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촛불혁명 이후 그리고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 이후 한국 사회는 그 전과 다른 사회로 진입하였다. 이 변화를 강하게 부정하는 유일한 기관은 국회이다. 거대 양당이 독식하는 국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에도, 안희정에 대한 유죄 판결 이후에도 강간죄 구성 요소를 변경하지 않고 있다. 하나은행과 서울메트로 등 여성에 대한 고용 성차별이 공공연하게 폭로된 이후에도 성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성차별금지법을 발의조차 못하고 있다. 극우 보수 개신교가 성평등을 널뛰기 삼아 혐오와 차별을 조장할 때 자유한국당은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시도를 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초지일관 성평등을 금기어로 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승리와 문재인 정부의 집권은 20대 여성의 투표에 빚을 지고 있으나 20대 남성에 숨어 페미니스트 운동과 최대한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는 이성애, 비장애인, 고소득층, 고연령, 고학력, 특정직업 등 특권층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평균 55.5세 남성의 얼굴을 한 국회는 자신들의 ‘성착취 카르텔’을 공고화하고 있을 뿐, 성폭력‧불법촬영‧스토킹 등으로부터 안전한 일상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중년 남성의 얼굴을 한 정치는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주지 못한다.
시민의 한 표가 국회 구성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하는 정치인들을 과연 시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들의 목소리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논의조차 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과연 대표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도 거부하고 차별금지법조차 제정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과연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 시민 다수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특권을 가진 소수의 이익집단만을 위해 활동하는 정치인은 여성에게도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필요 없다.
이따위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페미니스트 의제는 거대 양당의 더러운 정치적 공학에서 삭제되고 묻혀 버린다는 것을 20대 국회는 너무도 명약관화하게 보여줬다. 이보다 나은 정치, 다양한 국회의 얼굴, 책임 있는 정치, 성평등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과제는, 비록 부족하지만, 현재 신속처리법안(패스트트랙)으로 국회에 상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라도 통과해야 그나마 실현될 수 있다. 양당정치의 구도를 깨야 페미니스트 정치가 탄생할 수 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지난 4월 18일 이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같은 요구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8개월이 흘렀음에도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발전하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다. 더 이상의 후퇴는 두고 볼 수 없다. 남성지배의 양당정치 구도를 깨고 성평등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지속적으로 정치개혁을 요구할 것이며, 정치개혁을 거부하는 정치인들을 21대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2019년 12월 12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유니브페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