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0일, 일본 ‘희망씨앗기금’의 방문단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내방 행사는 상담소의 이안젤라홀에서 약 2~3시간가량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반성폭력 역사’를 주제로 사무국 닻별 활동가님이 발표를 해주셨고 이후 질문 답변 시간을 가졌습니다. ‘넌 진상’과 같이 한국식 표현을 일본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전달의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참석자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어주셨습니다.
닻별의 체계적이고 상세한 설명 덕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 내용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구체적 맥락까지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법률영역에서 성폭력 사건의 산업화·시장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최근에는 강간죄 개정 운동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강간죄가 인정되기 위해서 피해자가 폭행·협박을 받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증명책임을 부여하도록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닻별의 발표 이후 사자, 앎, 주리 활동가와 함께 질의응답을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Q. 활동명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우리 상담소뿐만 아니라 한국의 NGO에서는 서로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서로의 지위에 대한 호칭이나 나이에 따른 호칭이 아니라 활동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Q. 큰 말하기 대회(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생존자가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것 자체가, 플래시백을 경험하거나 많은 부담을 안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우려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시나요?
A.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자원을 받아서 진행하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참가하지 않습니다. 또한, 큰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깁니다. 같이 워크숍을 하고 치유회복을 해나가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도중에 못 하겠다고 그만두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지받는 느낌을 받는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위험부담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돌아오는 효과도 있습니다.
대회가 열린 공간에서 진행되는 대신 언론에 보도 지침을 드리고, 우리가 사진을 찍어서 공개할 수 있는 사진만 제공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Q. 활동가분들이 성문화캠페인을 많이 하시는데, 어떤 연수프로그램을 준비해서 하는지 궁금합니다.
A.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성폭력 상담원 교육 100시간 이수’입니다. 모든 활동가가 상담에 투입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월 1회 활동가 내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성폭력의 유형에 관한 공부나, 가해자 변호사 시장에 대한 문제와 같은 사안들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질문자가) 지금 다니는 대학교가 가톨릭 재단의 학교인데, 더욱더 성에 관련하여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가톨릭을 종교로 삼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교적 성적으로 보수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A. 과거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 대학에서 여성주의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로 정학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정학 무효요청을 하는 집회와 항의 방문 등의 액션을 취했습니다.
보통 학내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하게 되면, 말을 하는 페미니스트들만 고립되기 쉽습니다. 최근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연대 그룹을 만들어 활동 중입니다. 또한, 종교계 내부 사건을 전담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기독교 내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종교계 안에서 많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고 공론화하는 중입니다.
Q. 활동자금은 어떻게?
A. 한국의 성폭력특별법에는 성폭력상담소와 같은 단체에 지원하는 조항이 있어서 일부 운영자금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 정기기부, 일시 납부와 같은 후원금을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한편 상담소의 원칙 중 하나는 ‘정부지원금이 전체의 50%를 넘지 않을 것’ 입니다. 우리는 정부 비판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을 계속 받다 보면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많은 시민단체에서도 그런 상황들이 목격되고 있으므로 NGO의 성격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한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Q. 외국인, 장애 여성, 성 산업에 종사하는 피해 여성의 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는지요?
A.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성폭력상담소의 분야가 분화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장애/성매매 등 전문적으로 분화된 상담소가 있고 그곳에서 상담이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Q. 말하기 대회에서 남성들의 참여와 반응은 어떠한가요?
A. 보다 감수성을 가진 남성분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특별히 더 많은 반응을 보이거나 덜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은 남성들의 참여율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또한, 듣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피해 남성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말하기 대회에 대한 참석자들의 공감 여부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활동가 민아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