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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연대] 022. 공동체 내 성폭력 나만 몰랐던 이유, 너무 마초적이어서? K의 인터뷰
  • 2020-01-09
  • 1574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22. 공동체 내 성폭력 나만 몰랐던 이유, 너무 마초적이어서? K의 인터뷰


저는 K라고 하고요.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고 다니진 않지만, 페미니즘에 친화적이려고 노력하고, 페미니즘이 이 사회에 꼭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성인권이 더 나아질 수 있게 노력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작게는 피해자 주변의 친구나 친지, 가족, 그러니까 피해자의 직접적인 주변인. 중간 범위는 피해자가 어떤 사건을 겪었든 그 층위에 연관된 사람들. 더 넓게는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본인도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그렇게 생각한 지는 꽤 오래됐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이후부터 쭉.


Q. 본인의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예를 들면 5cm.


아주 가깝다고 생각해요.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가 성폭력 가해자가 되지 않은 것은 종이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사실 삶 전체를 돌이켜봤을 때 누군가는 저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의식하는 안에서 저는 성폭력 가해자는 아니었어요.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주변인으로서 보거나 목격하거나 겪게 됐던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주 가깝다고 생각해요.


Q.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본 경험이 있나요?


옛날에는 성폭행(강간)과 관련한 보도를 많이 들었고요. 요새는 미투 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상대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저 자신의 의식적으로든 성폭력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았어요. 극단적인 사례들만 언론 보도가 많이 되고, 저도 그런 것들을 더 주의 깊게 봤던 것 같아요. 사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다루는 방식이었던 거죠.


최근에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성폭력 사건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많지만, 우리가 그걸 어떻게 보는가, 직접적인 피해자나 직접적인 가해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 나오고 있고요. 저도 그런 부분을 더 보고 싶어서 보고 있어요.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에 관한 언론의 보도 관행을 문제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언론이 변화하려면 대중이 끊임없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더 나은 언론보도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Q. 성폭력과 관련된 공연이나 작품을 본 경험도 있나요?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이 이야기하는 토크쇼를 봤어요. 예전에는 연극을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영상은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고요.


볼 때마다 충격적이죠. 저도 예전부터 별의별 일을 다 겪었고 별의별 것들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내가 몰랐던 것들이 많구나. 또 한편으로는 제가 예전에 생각하고 느꼈던 게 얼마나 부적절했는가, 많이 느끼게 되죠. 제 또래 남성들이나 제가 살았던 문화에 비해서 제가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그래도 엄청 한계가 많았던 것 같아요.


Q. 대중교통에서 성폭력 상황을 목격한 경험도 있다고요?


성폭력을 직접 봤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떤 영감이 여성을 때리는 걸 본 적 있어요. 지하철역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순식간에 벌어졌죠. 저는 중간에 봤는데, 여성분이 맞는 걸 보고 뛰어갔어요. 일단 말리려고.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가해자한테 굉장히 적대적이었어요. 사이즈가 너무 뻔했으니까. 화가 났죠. 그런데 경찰이 옆에 있었고, 경찰이 바로 나서서 제지했기 때문에 제가 더이상 개입하지는 않았어요. 그러고 나서 여성분이 여성분의 지인하고 막 화나서 소리 지르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성분이 ‘이 영감이 엉덩이를 만졌다’라고 지적했더니 영감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더라고요.


경찰도 문제인 게, 누가 사람을 때리고 있으면 확 제압하든, 처음에 정확하게 제지를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말로만 말리더라고요. 주변에서 계속 말만 하다가 결국에는 떼어놓고. 경찰이 지구대로 그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는 딱 거기까지 봤어요.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모르겠어요. 경찰의 태도가 뭐 같기는 했지만 어쨌든 때리는 걸 직접 봤으니까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을까)


지하철 내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피해우려자(평소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 목격자와 경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도움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경찰을 불신하기도 하고, 피해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개입할지 말지 망설이기도 한다. 만약 내가 목격자가 된다면 용기 내어 문제 상황에 개입해보자. 사진 출처 : 100up


Q. 공중화장실에 있는 구멍을 화장지, 스티커 등으로 막아놓은 것을 본 경험이 있나요?


네. 남녀 공용 화장실이었는데, 저는 그때 처음 봤어요. 문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더라고요. 누가 이런 거야? 그런데 그걸 또 막아놨어요. 뭐지? 의아했죠. (불법촬영을 시도한 흔적인 줄) 몰랐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몇 개월 뒤에 알게 됐죠.


SNS에서 ‘여자 화장실에 이렇게 구멍 뚫렸다’라고 누가 화장실 문을 찍어놓은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화나요’를 눌렀는데, 아직 댓글이 달리기 전이었거든요. 나도 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뭐지? 남자 화장실에는 없거든요. 처음에는 그렇게 상상했어요여성분들은 아무래도 가방이 무거우니까, 백 같은 게 많으니까, 중간에다가 옷걸이 같은 걸 달려고 해놓은 건가? 남자는 주로 뒤에 매는 가방이어서 선반에다가 올려놓으면 되는데, 여성분들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냥 쓸데없이 구멍이 너무 많이 뚫려 있는 거예요. 징그럽게. 나중에 댓글 달린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상상도 못 했어요. 전혀 몰랐어요, 전혀. 그전까지 주변에서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요.


Q. 단톡방에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물을 공유하거나 성적 대화를 하는 걸 본 경험이 있나요?


제가 있던 단톡방에서는 촬영물 공유는 없었어요. 특수한 사람들만 단톡방에서 촬영물을 공유한다는 뜻은 아니고, 제가 그랬던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성적 대화는 꽤 많았죠. 예전에 몇 번 논란이 됐던 대화들 있잖아요. 품평하는…… 그런 대화는 없었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논란이 됐던 사례들만큼 집단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했던 것은 아닌데,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했던 대화들은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당시에는 저도 별생각이 없었어요. 요새 그랬다면 경각심을 가졌을 텐데, 예전에는 딱히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두고 봤던 것 같아요. 성행위 영상이나 이런 걸 올렸으면 얘기가 전혀 달랐겠죠. 그런데 말로 하는 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던 것 같아요. 예전이라고 해도 한 5년 전? 사실 그 전에는 단톡방에 영상이 공유되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못 본 건지도.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죠.


사진출처 : 엠빅뉴스


Q.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상황이 있었다는 얘기도 해주셨는데, 어떤 경험이었나요?


아, 너무 많아서. 그렇지 않은 공동체가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죠.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들 모임이라든지, 대학이라든지, 동아리라든지, 학술모임이라든지, 없던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잠깐 스쳐 가거나 정말 초소형 공동체가 아닌 이상 어디든지 있었어요. 어디서든 있었고, 어디서든 들었고, 각양각색 천차만별이었어요.


정말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죠. 사실 저는 공동체에 있었을 때 제가 제일 늦게 들었던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이 저한테는 안 알리려고 했어요. 어떤 대응이 나올지 뻔히 아니까 좀 쉬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부분 제가 사건을 알게 되면 은밀한 방식으로 마무리된 다음이었어요. 대부분 공동체가 피해자에게 엄청나게 가해를 하는 방식이었죠. (한숨) 오히려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배제하고……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되게 끔찍한 일들이 많았어요.


몇 번은 분위기가 이상하고 사람들이 다 굳어있으니까, 제가 ‘무슨 일 있었냐’라고 물어봤는데 다들 ‘별일 없었다’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는 거예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거죠.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제가 그때만 해도 엄청 마초적이고 거친 캐릭터여서, 알면 난리를 치니까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처신을 잘못해서 성폭력이 발생한다’ 이런 인식도 있었던 것 같고, 가해자들이 권력이 있으니까 암묵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입막음한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이런 식인 거죠. 다 쉬쉬하는 거예요. 말을 안 하고 숨기는 거죠.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너무 화나서 사건 당시 있었던 사람한테 따진 적이 있거든요. 왜 얘기 안 했냐고. 그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는 소문이 퍼지면 피해자가 피해를 보니까,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니까 숨겼다는 거예요. 뭐, 피해자도 소문이 퍼지는 걸 원하지 않았겠죠. 그래도 사람들이 알아야 하고, 공동체적으로 해결을 해야 했던 문제인데, 그런 식으로 쉬쉬하면서 그냥 넘어가니까 결과적으로 가해자들만 남아있게 되는 거죠. 피해자는 결국 휴학하고, 가해자가 싹 다 졸업하고 나서야 복학해서 겨우 학업을 마치고. 이런 사례들이 대학에서 너무 많았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훨씬 많은데, 양상은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저 자신에 대해 반성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되게 마초적이고 거친 캐릭터였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저에게 믿음이 별로 없었던 거예요. 성폭력이 일어나면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고 공동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저는 그럴 사람으로 안 보였던 거예요. 어떤 사람으로 보였냐면, 문제를 알렸을 때 일단 가해자를 때리는 사람. 피해자와 상관없이 그냥 막 가해자를 욕하고 내쫓고 공격하고…… 그렇게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많이 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진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Q. 그러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경험은 없었나요?


음, 어쨌든 사건들은 정말 많았고,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는 계속했어요. 총학생회 차원에서 성폭력에 대해서 다뤘던 적도 몇 번 있고요. 징계안을 결의한다든지. 이 사건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하면 처리할 수 있는가 논의를 한다든지. 직접적으로는 피해자분과 연대하고 대리인으로 참여한 경험도 있고요. 대책위에 들어가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었고요.


그 이전 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역할들이 있는 것 같아요. 피해자 개인을 위로하거나, 피해자가 이상한 사람이 된 여론을 바꿔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요. 제가 있는 커뮤니티, 제가 생활했던 공동체 안에서 성폭력 관련한 규정을 같이 제정하기도 하고. 그런 경험은 이것저것 많은 것 같아요.


Q. 성폭력 문제해결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나요?


어디서 어떤 식으로 해결하든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든 어려웠고, 정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피해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을 항상 제1원칙으로 염두에 뒀던 것 같아요.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반영하고, 공동체적 정의를 세우면서,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가 가지 않는 방안이 뭘까.


제가 성폭력 사건을 처음 접하고 문제라고 느꼈던 건 90년대 말 정도였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항상 안타까운 상황들이었죠. 피해자들은 나타나는데, 제가 그렇게 썩 좋은 대처는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10년대부터 조금 나아졌던 것 같아요. 저도 나름대로 노하우도 쌓이고, 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험이 쌓이면서, 2015년 이후부터는 좀 더 명확하게 여러 가지 상황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피해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원칙을 세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잘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피해자와 호흡을 맞추는 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어요. 이제는 피해자가 정합적일 수 없다는 걸 알죠. 왜냐면 피해자 본인도 마음이 계속해서 요동치고 있거든요. 어떤 때는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기를 주장하고, 어떤 때는 자기에게 피해가 안 왔으면 좋겠고, 같이 갈 수 없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막 이야기할 때도 있거든요. 어쩔 수 없죠. 일시적으로는 저도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났던 적도 있지만, 큰 방향에서는 그런 문제로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거나 원망하거나 탓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페미니스트들. 이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어요. 두 가지 측면에서 힘들었는데,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성폭력 사건에 전혀 연대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더 화가 나죠. 다른 사건에는 연대하고 지지한다고 하면서, 어떤 사건은 자기 지인이 얽혔다는 이유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까. 정말 끔찍했고요.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뭔가 굉장히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면서 피해자를 배제하거나 혹은 피해자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해야 할 때 좀 힘들더라고요.


페미니스트는 성폭력에 관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윤리-정치적 요구를 가장 강력하게 받는 사람 중 하나이다. 때로는 그 윤리-정치적 요구가 대내외적으로 너무 강해서 오히려 본인 또는 지인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수유너머104(권김현영,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관해 : 수유너머104 사건을 중심으로] 강연 후기 중)


Q. 그밖에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나요?


말로는 성폭력 피해자한테 연대한다는 대세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본인들이 전혀 동참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물론 동참하는 게 본인으로서는 항상 불편하고 힘들죠. 저도 얼마 전에 지인이 가해자로 밝혀져서 결국에는 안 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저도 피해 보는 것이 많았고요. 사실 저는 피해자하고는 아무 연관이 없는 사이였는데.


가해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피해자가 생존해서 살아갈 수 있는가…… 성폭력 피해에 연대하는 것은 자신의 이득이라든지 그런 문제로 봐서는 안 되고, ‘피해자에게 연대해준다’라는 시혜적인 태도를 보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분명히 내려야 하고, 불편이나 어려움을 감수할 필요도 있어요. 그래야 피해자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조금이라도 더 편하지 않을까.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는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함부로 이야기를 못 하죠. 언젠가 당사자의 입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랬을 때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고, 가해자에게 응당한 대가가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피해자가 “잘” 살 수 있게 돕기! 그게 무엇이든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2019년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이한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