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32. “가해자를 두둔하는 주변인은 가해자가 잘못을 깨닫지 못하게 해” 익명의 직장인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는 50대 중반의 여성이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친한 친구나 가족, 아니면 직장의 동료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옆에 같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Q. 스스로를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주변인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일상을 공유할 만큼 친밀한 관계인 사람으로 한정해서 말할 때는 아닐 수도 있지만,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충분히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혹시 성폭력 주변인이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네. 같은 직장에서 직장 상사가 비정규직 여성에게 언어로 성적 모멸감을 주고, 회식 자리에서 옆에 앉으라고 하고, ‘여자가 따라야 술맛이 나지’라는 식의 발언을 하거나, ‘결혼을 왜 안 하느냐?’ 아니면 결혼한 여직원에게 ‘아이를 왜 하나만 낳느냐?’, ‘왜 낳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을 아주 자주 목격했고, 피해를 당한 동료 여직원들이 기분 나빠하는 상황들을 많이 봤습니다.
Q. 그때 당시 주변인들의 반응이나 태도는 어땠나요?
피해당사자가 기분이 아주 나쁠 거라는 것, 그리고 가해를 한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그 현장에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사후에 가해 남성을 찾아가서 회식 자리에서 그런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아주 안 좋은 불쾌한 감정을 줄 수 있는 유사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충고를 한 적은 있습니다. 가해 남성과 평상시에도 자주 접촉하고 어느 정도의 신뢰를 가지고 있는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가해 남성에게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직장 내 직급상 피해를 입은 여성보다는 상급자이고 가해 남성과 더 가까운 쪽에 있는 입장이어서, 거의 동업자 차원에서 직장 내 비슷한 직급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주는 형식을 띠면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어요. 제가 그 피해당사자와 동급자, 말하자면 가해자보다 상당히 낮은 직급의 여사원이었을 때도 제가 가해 남성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Q.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해서 피해당사자도 알고 있었나요?
네. 제가 가해 남성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준 것에 대해서는 고마워했어요. 그런데 가해자가 제 말을 계기로 특별히 많이 바뀌는, 말하자면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그다지 없다고 생각했어요.
Q. 가해자가 변화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바뀌어야 할까요?
직장 내에서의 언어나 행동을 통한 비일비재한 성폭력, 성희롱이 계속 만연하다면 그게 결국은 강간이라든지 술이 과했을 때 정말 성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게 없어지려면 일단 법이나 제도적으로 가해 행위를 한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하고, 직장 안에서 모든 사람이 그것이 폭력이라고 인지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 공감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도 필요할 것 같고요. 그리고 성폭력과 관련해서 항의를 했을 때 보복성 인사 발령 같은 것들이 있지 않도록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법적인 제도도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공중 화장실에 있는 구멍을 화장지, 실리콘 등으로 막아놓은 것을 본 적 있나요?
여러 번 있는데요. 대충 막아놓은 게 아니고 정말 틈이 보이지 않게 화장지로 여러 번 세게 눌러서 막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무단으로 촬영되는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그런 경험으로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경험을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막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내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결국은 항상 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주변인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우리 모두 다 성폭력 피해자의 주변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일상화되어 있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성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둔감하다? 민감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Q.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을 성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주변인들도 있나요?
네. 그런 사람들 많아요. 특히 남자분들? 그런 분들의 공통된 생각은 ‘피해자가 성폭력의 빌미를 제공했다’라는 거예요. ‘옷차림을 그렇게 하고 다니니 누가 안 볼 수 있느냐, 문단속을 잘 했어야지,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안 되지, 그런 짧은 치마를 입으니 당연하지, 여자가 헤퍼서 그렇지, 평소에 술자리에서 그렇게 편하게 행동하니 당연히 그런 거지’라는 식으로 가해자의 잘못된 의식을 비판하는 게 아니고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모든 원인을 돌리면서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해요. 그것이 폭력이라는 생각조차도 별로 못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가해를 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가해로 생각 안 하는 거죠. 스스로 가해자라고 생각 안 해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일? 혹은 술 마시고 실수한 것. 그래서 그냥 술 마시고 노래방에서 껴안는다든지, 성적인 농담을 한다든지, 그런 것들이 남성들끼리 너무 자연스럽게 이뤄져요. 그냥 술 마시면 고성방가하고 했던 말을 또 하는 주사가 있는 거랑 거의 동급으로 봐요. ‘쟨 술버릇이 저래’라는 식으로 서로 두둔하고요. 그러다 보면 본인도 그것을 명백하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술 때문에, 혹은 스스로 욕구를 참지 못해서 단순한 실수를 한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계속해서 더 확산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은 당신의 아들이나 딸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너 자신도 절대로 그런 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은 본인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남성들 같은 경우에 보면, 자기 가족이나 자기 자신은 피해자가 될 리 없다는 생각도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아요.
Q. 그밖에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나요?
저희 직장에 최근에 오신 남성분이 과거에 성폭력 가해자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술자리에서 의도적으로 여성을 술자리로 오게 해서 취하게 하고 강간했다고요. 고소를 당했는데 피해자 가족들을 통해서 나중에 극적으로 합의가 됐다네요. 재판은 받지 않고 기소가 취소돼서 가해자가 다시 복직을 하고 직장에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가해를 했던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을 바꾸고 신분 세탁을 해서 자연스럽게 그냥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실제로 본인 속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볼 때는 너무나 정상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행복하게 웃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피해를 입었던 분은 그 일을 겪고 정신과 치료도 받고 직장도 다시 다니지 못하고 주변인들하고의 관계도 다 차단되고, 심지어 가족들한테서도 ‘네가 평소에 어떻게 행동을 했기에 그런 대접을 받느냐, 집안 망신이다’ 이런 말을 듣고 연락 두절? 거의 외톨이처럼 혼자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가해자를 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뭐, 옛날 일인데 어때, 본인이 다 뉘우치고 잘 했겠지, 그리고 술자리에서 실수한 건데 뭐’라는 식으로 너무나도 관대하게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을 봤어요. 정말 우리 사회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서 너무나도 관대하게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그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같이 공감해주고 보상해주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들 너무나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저도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직장 안에서 저 사람이 다시 복직하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는 서명 운동이라도 해서 이런 사실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계속 양심의 가책? 이런 거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핑계 같지만, 그때 그걸 하기 위해서 동료 직장인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공감은 하지만 뭔가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 본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에는 약간 좀 꺼리는 분위기였어요. ‘사회단체 같은 데 익명으로 이야기해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떻겠냐?’라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고요. 사회단체 같은 곳에 이야기를 해도 결국 법이나 제도를 개선하는 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어차피 마찬가지일 테니………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유야무야 그대로 덮어두게 되었거든요.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가해자들을 좀 더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문제제기를 하고 법적인 제안을 하는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성폭력 상담소에 후원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정기 후원은 아니지만 그냥 일회성으로 예전에 한 번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주변의 지인분이 같이하자고 하셔서요. 내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후원을 하는 것은 어쨌든 피해를 입은 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했습니다.
성폭력 상담소나 반성폭력 운동단체들이 활동을 하려면, 이런 단체들이 있다는 것이 많이 홍보가 되고, 단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사람들한테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후원도 하고 단체 활동도 지원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동시에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피해를 입은 사람이 피해 사실을 혼자서만 쌓아두는 게 아니고 가서 상담받고 알릴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본인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사실 ‘당신은 성폭력 주변인이었던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당장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중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없는데?’라고 생각해서 나는 성폭력 주변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사회에 성폭력 피해자가 있는 한, 성폭력 가해자가 있는 한 나는 성폭력 주변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사람들이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저 성폭력 피해를 입었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성폭력 피해자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아까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것 같습니다.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당신도, 우리 모두 다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들보다는 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함께 연대하여 소리내서 이야기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2019년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부영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