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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연대] 033. 대학에서 상담자 겸 성희롱·성폭력 신고 담당자로 일했던 나난의 인터뷰
  • 2020-04-02
  • 1481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33. 대학에서 상담자 겸 성희롱·성폭력 신고 담당자로 일했던 나난의 인터뷰


저는 심리상담사고요. 심리상담사 7년차네요. 예전에는 대학에서 상담을 했었고 성희롱·성폭력 신고 담당자였어요. 지금은 공공기관에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주변인? 음……성폭력 당사자의 친구일 수도 있고, 학교 선후배일 수도 있고, 잠깐이라도 연을 맺었던 사람 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지.


Q. 본인은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죠. 신고 담당자여서 아무래도 모르는 학생들이 상담을 해오는 경우도 있었고요. 동료 직원분들이 ‘이런 경우는 어떡해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사실은 처벌이나 뭘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불쾌한 경험을 했는데 아리까리할 때 확인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강제추행, 어떤 폭력, 성관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성적인 언행, 눈빛 혹은 그 사람을 대상화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상황, 그 사람의 외모나 아니면 걔가 어젯밤에 뭐 어쨌더라, 이런 이야기도 다 성폭력이거든요. 그런 일은 되게 비일비재해요. 그런데 하는 사람도 모르고 당한 사람도 (확신을 못 하는 거죠).


Q. 대학에서는 어떻게 성희롱·성폭력 신고 담당자로 일하게 되었나요?


원치 않게 역할을 맡았어요. (웃음) 그렇게 들어간 건 아니었으나 겸직을 해서. 상담사로 취업을 했는데 부서가 있고 누군가는 담당을 해야 하니까 ‘그럼 너다’ 이유는 상담사니까. 그렇게 업무를 맡은 다음에 후속 교육을 받았어요.


출처 : 고대신문


Q. 대학 내에서 신고가 많나요?


비공식적인 신고는 많아요. 공식적으로 하면 접수 서면으로 기록을 남겨야 하거든요. 신고 절차들이 있잖아요. 그런 절차로 하고 싶지는 않은 경우들. 사실 비공식적인 것도 피해당사자가 이야기하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요. 그 주변인들이 ‘내가 아는 사람이 이런 경우가 있는데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해요?’ 이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대학마다 페이스북이 있잖아요. 그런 데 익명으로 많이 올라와요. 알고는 있죠.


피해자는 아주 경미한 정도의 성적 언행? 교수가 수업 시간이 이런 말을 했다, 불쾌했다, 그런 정도는 직접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야기를 한 다음에 이걸 신고 절차로 갈까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죠.


학교는 사실 성희롱은 교내에서 구성원끼리 원만하게 해결하기를 원해요. 단순히 처벌이다, 아니다, 이런 게 아니라요. 법 자체가 학생들은 학습권이 있잖아요. 안전한 곳에서 학습할 수 있는 권리. 그걸 최대한 유지하고 최대한 보호해주되, 교수에게도 교수가 자유롭게 자기 수업 시간에 수업할 수 있는 권리들이 있을 거고요. 학교는 웬만한 문제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교수에게도 항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어느 쪽의 편을 들진 않는 것 같아요.


심각한 경우도 있었죠. (피해자는) 아무래도 여성이 많고요.


사진 출처 : 한양대 "함께 만드는 성평등 캠퍼스" 리플렛 중


Q. 담당자로서 신고를 받으면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들었나요?


아마 우리 대학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성폭력은) 많겠죠.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답답하죠. 이게 단번에 해결되는 일도 아니고요. 사실은 대학생들 술 문화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혀있잖아요. 그게 성희롱,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고, 이 상황에서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누군가 꼬집어주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남자 선배가 여자 선배한테 ‘너 왜 술 안 마셔?’ 강요한다거나 ‘너 사귀는 애랑 어젯밤에 어디 가더라?’ 이런 걸 물어본다거나 성희롱 발언을 할 때 ‘그거 아니야’라고 꼬집기가 되게 애매한 거예요. 저는 담당으로서 교육을 받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답답함이 밀려오죠.


그 상황에서 피해를 겪은 사람이 이야기를 해줘야 누군가 개입을 할 텐데, 사실 다른 사람들은 피해를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만약에 동아리에서 일어난 경우에는 자기가 이 사람들이랑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는 생각도 들어서, 피해자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개입하지 못해요.


모든 교수도 알고 교사도 알고 상담사도 알고 다 아는데 이 문화에 대해서 바꾸자고 제안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홍보물 만드는 거? 상황별로, 동아리에서, 술자리에서, ‘이런 거 하면 안 돼요’ 만화로도 만들고, 최대한 노력하지만, 홍보물일 뿐이지 실제를 바꾸지는 못하니까.


사진 출처 :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 "대학 내 성폭력 예방" 리플릿 중 


Q. 실제를 바꾸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상황별로 소규모 토론을 하든지,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저도 기획은 했었는데, 처음에는 사람을 모집했어요. ‘이런 토론을 하니까 와라’ 그랬더니 관심 있는 사람들만 와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여기에 대해서 이해도가 있기 때문에 솔직히 이 친구들은 안 와도 돼요(웃음).


그냥 아예 교양 수업 같은 걸 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대학교 교양 수업 보면 쓸데없는 거 많거든요? 그런 거 몇 개 빼고, 1학년 때 아예 필수 교양으로 넣어서 ‘대학 생활 길잡이’ 이런 걸 하는 거예요. 우리가 대학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너희는 어떻게 할래? 모둠으로 수업하고, 한 학기 과목으로 매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대학 생활 문화로 정착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사진 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Q. 그런 수업이 대학뿐 아니라 더 어렸을 때부터 정규 교육으로 있으면 어떨까요?


성교육도 일방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성에 대해 자기 생각이 자라나게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성적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잖아요. 내 성에 대해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나한테 성관계를 요구했을 때 내 몸이 반응하면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싫어. 그러면 거부해야죠. ‘내가 거부하면 저 친구랑 만나지 못할까 봐’ 혹은 ‘내가 지금 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런 마음이 든다면 그 자체가 성적 자기결정권이 사라진 거예요. 그게 먼저 생겨야 해요. 내 성에 대해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내가 주체다. 이런 인식이 생겨야 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성교육이) 거의 없었어요. 친구들이랑 책 돌려보다가 (웃음) 성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건데 이게 상상력을 자꾸 자극해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상력인 거예요. 누구랑 잤다더라, 잘 때는 이렇게 한다더라, 사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어른이 되고 나서 아는 거지. 아이들이 성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어른들이 싫어했던 것 같아요.


성폭력 문제도 성에 대한 인식, 개념, 성적 자기결정권,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먼저 자라나야 문화가 바뀌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성적 자기결정권' 의식에 대한 자가진단 CHEKE. 사진 출처 : 한양대 "함께 만드는 성평등 캠퍼스" 리플렛 중


Q. 혹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나요?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는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위원회를 결성하고 운영하는 역할로 참여를 했어요.


한 번은 데이트폭력을 신고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저희 조사 기구에 직접 신고하지 않았어요. 구조적인 문제인데요, 신고 기구가 독립된 기구가 아니라 학생처 소속이라는 게 신고하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잖아요. ‘내가 학생처에 신고를 해? 어차피 학생처는 학교 편일 텐데?’ 그렇잖아요, 독립 기구가 아니니까. 그래서 이 친구가 교내에 있는 학생 단체에 성 관련된 공부를 하는 친구한테 이야기해서, 그 친구가 담당 지도 교수한테 이야기하고, 그 지도 교수가 저희한테 신고한 이상한 케이스였어요.


처음에는 그 지도 교수가 피해자한테 찾아가서 직접 중재를 하려고 했대요. 그런데 중재 자체가 안 됐던 거예요. 지도 교수의 의도는 뻔하잖아요. ‘너희들 학교 잘 다녀라, 너 사과해, 너 받아들여’ 그래서 오히려 개입이 더 문제가 돼서 문제가 더 커졌어요.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나서 교수를 탄핵하자, 이러고. 교수는 그제야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라, 해서 저희한테 온 거죠.


한동안 그 일 가지고 계속 연락도 주고받고 했었죠. 사실은 되게 복잡해요. 아는 사람들끼리 일어난 사건이고, 사귀던 사이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음에는 신고 접수를 안 한다고 했다가 다음에는 한다고 했다가, 상담하면서는 또 한다고 했다가,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가, 자꾸 입장을 바꾸는 거예요. 이랬다저랬다. 마음이 바뀌는 건 솔직히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에요. 마음이 하나일 수는 없잖아요. 가해자의 처지를 아니까 갑자기 연민도 밀려올 때는 ‘내가 용서해야 하나?’ 이런 마음이 들다가, 다시 피해 사실을 떠올리면 화가 나고……피해자가 치유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변화거든요. 그렇다고 피해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게 교수나 외부 사람이 볼 때는 미심쩍은 거예요.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된다, 일치되지 않는다’ 그렇게 보는 게 좀 안타까웠어요.


대학 내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예시) 학교마다 성폭력 관련 절차와 규정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내가 속한 곳은 어떤 절차와 규정이 마련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사진 출처 : 서울시립대 인권센터


Q. 참여했던 사건 중에 잘 해결돼서 뿌듯했던 경험은 없나요?


없어요. 해결? 어떻게든 해결은 되죠. 그런데 결과가 뿌듯하진 않았어요. 왜냐면 궁금하니까. 솔직히 해결이라고 하면 서로 앙금 남지 않게, 최대한 학업과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 텐데, 결국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요. 소식도 모르고.


어떤 교수는 외부에서 성희롱 발언을 해서 신고를 당했는데, 학교에서 처리를 한 거예요. 결국은 학교에서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냥 학교 입장에서 외부에 있는 신고한 분한테 최대한 성의를 다해서 사과했더라고요. 신고한 분이 그걸 받아들였대요. 사실 이건 학교에 신고가 돼서 그런 거고, 신고한 분이 억울하다 싶으면 국가인권위원회나 더 높은 상위 기관으로 신고를 했을 텐데. 어쨌든 학교는 교수에 대해서 어떠한 징계처분도 하지 않았어요. 그 교수는 다음 학기에 버젓이 강의했고요. 그래도 속으로 ‘월급은 좀 깎았겠지? (웃음)’라고 생각을 했는데, ‘가해자는 뭐 아무것도 부담을 지거나 책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없네.’ 되게 찜찜하고요.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피해자의 부담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왜냐면 그 상황에서 피해를 당한 분이 억울함이 남아 있다면 또 신고를 해야 하는 절차가 있을 것 아니에요.


2014년부터 2017년 8월까지 성범죄로 징계 받은 국립대 교수 35명의 주요 징계 결과를 보니,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받은 사람은 3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Q. 성폭력 문제해결이 잘 이뤄지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대학뿐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에서 성희롱·성폭력 교육을 하잖아요. 4대 교육이라고 묶어서 하거든요.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그런데 4시간 교육을 2시간으로 단축하는 경우도 있고, 집합 강의다 보니까 제대로 전달은 안 되고, 와서 사인만 하고 가는 경우도 너무 많아요. 여가부에서 교육 시행 여부랑 누구누구 참석 여부를 실적으로 보니까 그 실적만 채우면 된다는 데 집중해서 시행 여부, 참석 여부 딱 그것만 보는 거예요.


여가부에서 실제로 공공기관에 성희롱·성폭력 관련된 인식을 넓히고자 했다면 한 명 한 명 개개인별로 테스트를 한다거나, 기준점을 놓고 그 이상 받지 못하면 다시 재시험을 응시하도록 한다거나, 뭔가 실질적인 방법이 있어야죠. 교육의 질은 담보하지 못한 채 몇 번 실시했냐, 누가 참석했냐, 그러니까 편의상 사이버 교육으로 대체하는 학교도 되게 많아요. 사이버 교육은 그냥 클릭해놓고 자기 일 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예산 낭비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런 고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인지 시험.


2018년 중앙일보 '랭킹으로 본 대학'에 따르면, 교수의 성폭력 예방교육 참여율은 평균 66.5%로 국가기관(87.1%), 공직유관기관(92.3%) 등의 고위직 교육 참여율과 비교하면 특히 낮았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


Q. 마지막으로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고,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고……


성폭력 자체는 사회적 이슈의 범위에 속하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사건 자체는 개인 간에 벌어진 일인데,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토를 달고 각자의 기준을 내세운다는 것은 각자 자기가 자라면서 받아온 관습적, 사회적, 문화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가 원래 성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불균형하잖아요.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나라고,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요. 지금은 시대가 좀 달라졌다 하더라도 가부장적인 집안의 영향은 어느 정도는 각자의 집안에 남아 있을 테니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그래도 법일 텐데, 법적 판결조차도 사실은 어떤 변호사를 선임했고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것도 저는 답이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좀 마음이 무겁죠. 나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사회적인 특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넓게 봐서 ‘성’이라고 하는 것 자체도 그걸 말하기가 낯부끄러워지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별것도 아닌데. 부부끼리의 섹스도 말하기 되게 부끄러워하는 문화인 것 같아요. 남자들은 좀 더 자유로운 것 같기도 해요. 남자들은 자기 친구들 만나면 ‘누구랑 잤다’ 이런 이야기를 영웅 심리처럼 말하기도 하고. 그런데 여자들은 대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요. ‘성에 대해서는 드러내놓고 말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법도 바뀌어야 하고요.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내 아이와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2019년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민지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