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고위 공직자, 국민의 대표자,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은 그동안 누적되어 왔다. 피해자들은 감내하고 침묵해왔던 고통을 용기를 내서 말하고, 다시는 누구도 그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는 피해자들과 연대한다.
고위 선출직 기관장은 성평등 실현과 성폭력 피해 예방 및 문제해결에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성폭력을 자행했고, 그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적나라한 공백과 최악의 현실을 드러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비서로 4년간 근무했던 피해 공무원에게 강제추행, 업무상위력에의한추행, 통신매체이용음란 행위를 한 혐의로 지난 7월 9일 고소되었고, 그로부터 100일이 지났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첫째, 기관장에 의한 성폭력은 조직 내 성희롱, 성차별, 성역할이라는 일상문화 속에서 가능했다. 둘째, 피해자와 조직구성원, 국민에게 제대로 규명하고 책임지지도 않은 채 전 서울시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셋째,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음해, 심지어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려는 시도까지, 사건을 은폐 축소하고 2차 가해를 행하려는 사람들의 퇴행은 도를 지나치고 있다.
288개 여성, 노동, 시민, 사회단체가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이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고, 여기에서 시작하여, 이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선언한다.
1.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피해자가 고소한 성폭력과 그 배경인 조직 내 문화 및 구조 문제에 대해, 진상이 짚어져야 한다. 수사기관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상규명 역할과 동시에,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의 힘있는 변화와 실행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2. 선출직 고위 공무원 사건에서의 2차 피해는 이제 제발 멈춰져야 한다. “나의 대표자는 그럴 리 없다”며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행위는 모든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정책과 제도와 인식을 방해, 훼손하고 있다. 정치권과 공공기관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2차 피해가 예방되도록 철저히 제도화, 실행되어야 한다.
3. 진보와 민주주의, 사회비전과 개혁의 구상 속에 성평등이 자리잡지 않는 한, 우리는 사회적 힘이 더욱 조직되고 민주주의 정치가 고도화될 수록 더 큰 가해자의 힘과 더 깊은 피해자의 침묵을 만나게 될 것이다. 누구의 시선에서 평등과 인권, 평화와 자유를 이루어갈 것인지, 약자들의 목소리는 그 방향을 제시하는 신호등이 되어야 한다.
4. 성희롱, 성차별, 성역할이라는 조직문화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폭력, 성희롱 사안 처리 규정과 예방교육이 마련된지 20년이지만, 이 제도의 뒤에서 유무형의 힘을 일상적으로 행사하고, 노동을 침해하고, 이를 용인하는 구조와 문화의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의 공기가 바뀔 때까지 더 많은 말하기를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희망과 믿음의 정치,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사회, 평등과 체계가 자리한 일터를 원한다. 그것은 몇 마디의 말과 몇 장의 문서로 가능하지 않았다. 계속 성찰하고 쇄신하며, 갱신하는 점검과 제도화, 검증과 견제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간다. 시민들의 더 많은 연대와 참여를 요청드린다.
2020. 10. 15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 (288개 참여단체, 10월 15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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