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시선]
이제 우리는 ‘조두순’이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성폭력 가해자를 이야기해야 한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분노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 ‘아동’을 상대로 한 ‘잔혹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 지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피해자는 ‘꽃뱀’으로 취급받고 사건화에 대한 ‘저의’를 의심받는다. 양극단에 처해있는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대상화는 우리 사회가 가진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학교에 가던 초등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해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조두순이 이번 주 토요일인 12일 만기 출소한다. 만기출소를 앞두고 조두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지대하다. 거의 매일 조두순과 관련된 기사가 수십 개 쏟아지고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다. 최근에는 조두순의 교도소 생활까지 전달되는 등 그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잇달아 발생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사건들 이후, 한국 사회는 국민의 법 감정을 반영한다는 명목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해왔다. 2010년 형법 개정을 통해 유기징역 상한이 15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고 가중처벌 상한 역시 25년에서 50년으로 늘어났다. 성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신상을 공개(2000년 도입)하거나, 전자장치를 부착하거나 취업이 제한되는 제도(2006년), 성충동 약물치료를 병행한다(2011년)는 보안 처분도 도입되었다. 최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조두순 방지법’의 일환으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에 있어 주소 및 실제 거주지를 도로명 및 건물번호까지로 넓히고 피해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가해자의 접근금지 범위에 유치원을 추가하는 등의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폭력범죄에 대한 처벌정책의 강화로 성폭력 발생이 줄어들거나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 더 쉬워지지는 않았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신고 건수는 2018년 총 32,104건, 2019년 총 32,002건으로 큰 변동이 없는 추세이며,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 및 추세 분석>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는 총 12,198명으로 2014년 2,547명에서 2018년 2,431명으로 소폭 감소하였고, 아동 대상 성폭력범죄는 2014년 651명에서 2018년 701명으로 7.7% 증가하였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달리,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 대상 성폭력범죄는 지난 5년 동안 집행유예 비율이 46.1%에서 48.1%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신상정보등록대상이 된 총 범죄자 15,898명 중 16.8%만 신상정보 공개명령을 받았으며, 지난 5년 동안 신상공개대상자는 강간(42.5%->20.4%), 유사강간(41.8%->16.5%), 강제추행 (30.1%->12.8%)등 피해 유형과 상관없이 모두 급감해, 보안처분의 강화가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대다수의 대중이 느끼는 감정이 분노라는 사실이 곧 우리 사회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높아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사건은 다른 여타의 성폭력 사건과는 다른 ‘특별한’ 사건으로 의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는 사회안전망 확장이나 젠더에 대한 인식 개선의 관점이 아니라 범행의 의도를 가진 외부의 위험한 ‘괴물’로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편향된 안전의 관점으로 프레이밍 되었다. 이는 성폭력을 젠더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담론으로, 안전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고 성폭력 처벌의 엄벌주의를 정당화(추지현, 2017)시키는 기제로 작동했다.
이러한 성폭력범죄의 엄벌주의는 최근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쏟아낸 입법정책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발의된 법안들은 대부분 기존 사법체계를 뛰어넘는 인권침해적 내용을 담고 있다. 재범 위험성이 큰 살인이나 성폭력 범죄자는 출소 뒤 1~10년간 격리수용하는 보호수용법안(국민의 힘 양금희 의원 대표발의)과 아동 대상 강간 및 강제추행 재범자 등을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하는 법안(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 대표발의)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조두순 감시법’이라 불리는, 미성년자 성폭력으로 전자장치를 부착한 사람이 주거지에서 200m 이상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필요한 경우 음주도 금지하는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 대표발의)도 발의되었다. 위헌논란이 끊이지 않는 보호감호법과 유사한 보호수용법이나 형벌을 종신형으로 하여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 등은 성폭력 문제가 ‘특별한’ 가해자로부터 겪는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극대화하고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의 대부분은 외부의 위험한 범죄자로부터 겪는 일이 아니라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본 상담소의 2019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상담 중 가해자와 아는 관계인 경우가 87.9%에 달했다. 피해자 연령이 어린이(13세-8세)와 유아(7세 이하)인 경우, 가해자는 친족인 경우가 각각 46.2%, 72.7%로 가장 높았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족 내 성폭력은 여전히 ‘몹쓸 짓’으로 치부되며 국가와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등장하지 않는 현실에 비춰본다면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만들어진 아동·청소년 대상 법·정책이 아동·청소년 성폭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괴물화’된 특정한 가해자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임을 가늠할 수 있다.
2008년 성폭력을 가한 조두순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고 이제 출소한다. 당시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범행 당시 조두순이 주취상태였음을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유기징역 상한 15년형에서 3년을 감형한 12년 형을 선고했다. 2018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20조에 형법상 심신미약 감경규정에 관한 특례 조항이 생기면서 성폭력범죄에 한해서는 감경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되었으나, 여전히 ‘진지한 반성’ 내지는 ‘초범’, ‘성실’하다거나, ‘앞날이 유망’하다는 등의 이유로 가해자에 대한 작량감경은 이뤄지고 있다.
선고형량을 모두 채우고 출소하는 ‘조두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제는 제대로 수사조차 되고 있지 않은 수많은 ‘평범한’ 성폭력 사건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수많은 ‘평범한’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한다. 법적 처벌 근거가 없어 사건화조차되지 못하는 숱한 성적침해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형법상 강간죄의 개념과 구성요건부터 현저히 저항이 곤란한 폭행·협박에서 동의 없는 성폭력으로 바꿔야 한다. 성폭력 양형기준에서 가해자의 반성,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감경요인에서 삭제해야 하며, 특별가중요인에서 가부장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피해자의 상황과 입장을 고려하는 기준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강간문화와 여성혐오문화를 들여다보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피해자다움’ 통념을 걷어내며 성폭력 피해를 이례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 사회구조의 변화만이 제2의 조두순을 막는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11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댓글(1)
이버년도 아동성폭력에관한 정책사안은 어떻게 책정되었나요?
저는 공소시효가 지난 ,근친상간 피해자입니다.
초등학교2학년때에요.현재는39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