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2020년의 마지막 모임에서는 소설 『붕대감기』를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건 ‘왜 제목이 붕대감기일까?’였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미투’를 마주하며 각자의 고민들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페미니스트는 누구인가? 누가 페미니스트이고, 누구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등의 질문이 엉켜 단단한 매듭처럼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통해 위안과 안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꼭 어떤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또는 꼭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짐을 느꼈습니다.
우리 모임의 임유진님은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누구도 틀린 게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각 있는 여자라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고, ‘탈코르셋’을 해야 하며,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8개월째 병원에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들을 둔 은정도, 은정이 다니던 미용실 스텝이자 불법촬영 관련 집회에 남 모르게 참석하는 지현도, 은정 아들의 친구 엄마이며 SNS를 즐겨하는 진경도, 진경의 친구이자 페미니스트 편집자이자 작가인 세연도, 진경의 페북 친구이자 50대 중반의 포토그래퍼 윤슬도, 대학교수 경혜도, 그 제자 채이도, 채이의 친한 동생 형은도, 채이의 엄마인 효령도, 함께 사는 명옥도 모두 그대로 괜찮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미용실 스텝인 지현이 ‘탈코르셋’ 때문에 자신이 미용실 직원임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탈코르셋’은 내가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도록 만들어진 삶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여기에 김보화님은 “페미니즘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방식이다”라는 멋진 말을 보태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 책에서 딱 한 부분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이 문장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당위와 대외명분에서 벗어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단하지 않는, 각자의 복잡한 경험이나 개별 특정을 인정하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난,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모순이 공존하는, 잡종적인, 오염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인지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진짜 페미니즘'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소문자 페미니즘들'을 만드는 일이며, 그럴 때라야 비로소 여성연대는 가능할 것이다. 이때 여성연대란 단수적이기보다는 복수적이고, 통합적이기보다는 해체적이고, 무질서하고 개방적인, 그래서 비연대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될지도 모른다.(191쪽)”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던 이유가 저 문장에 모두 함축되어 있는 탓인가 봅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는 책에서 정희진 선생님도 “저는 100명의 여성이 있다면 100가지 페미니즘 이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처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지요”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붕대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하나의 덩어리로 감겨있습니다. 우리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독서모임 회원들도 붕대와 닮았습니다. 대학생, 대학원생, 임상전문가, 페미니즘 연구가, 패션디자이너, 경찰관 등등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독서모임으로 연결되어 생각을 성장시키고 있으니까요. 1년 코로나가 준 혜택(?) 덕분에 지방에서도 독서모임에 참석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은 고지연 회원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