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의 이번 신씨 사건 보도행태를 보며 여성단체 및 언론단체는 9월 13일 성명서 발표, 9월 14일 항의 집회, 9월 18일과 20일 긴급 토론회, 10월 1일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해당 기사의 즉각 삭제와 공식 사과”등을 요구했지만 지금까지 침묵으로만 대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18일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사과문을 게재한 것은 진일보된 행동이지만, 문화일보 측의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기대했던 우리 단체들이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읽고 느끼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국민의 알 권리?
<독자…>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문화일보의 입장과 조금도 다른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1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니 그 중요한 알 권리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나 해보자.
독자의 알 권리는 중요하다. 그래서 권력을 남용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였다든지, 공공의 이익에 손해를 발생시켰을 때 그 비리의 전말을 밝히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그 중요한 ‘알 권리’를 위해 행동하였다면 누가 그 행동을 감히 나무랄까?
그런데, 문화일보는 ‘어떤’ 알 권리를 충족시켰는가? 누드사진은 권력형 비리의 핵심인 성로비와 어떤 관계가 있었나? 한 개인의 누드사진으로 성로비, 더 나아가 권력형 비리의 전모가 밝혀졌나? 백번 양보해서 처음에는 몰라서 그랬다고, 정말 그 누드사진 하나면 이 사건 전체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다고 믿었다고 치자. 누드사진이 게재된 지 1달여가 지난 지금 누드사진과 사건과의 그 어떤 관련성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화일보 측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보도행태가 국민의 알 권리와는 무관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알 권리와 인권침해
우리 단체들은 성명서, 기자회견, 토론회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야기 한 바 있다. 법적인 분석, 미디어 모니터 결과, 여성주의적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문화일보 보도행태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누차 설명하였다. 우리는 문화일보의 보도행태에 대해 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언론보도의 기본 윤리조차 외면한 선정보도, 천박한 상업주의의 발현이라고 천명하였다. 신정아 씨의 누드사진을 게재하면서까지 성로비를 추측한 보도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남성들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의심을 받게 되고, 개인의 기본적인 사생활권 조차 지켜지지 않는 수준의 사회적 처벌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혐오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이번 신 씨 누드사진 보도가 성차별적인 방법으로 여성을 폄하하고 사회적으로 처벌하고 통제함으로써 가부장적 사회 권력을 유지하는 반사회적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 쯤 설명하였으면, 문화일보가 <독자…>에서 언급하고 있는 ‘누드사진의 진위를 가리는 검증절차를 거쳤다는 점’, ‘치밀한 취재를 벌였다는 점’ 등의 진정성 여부가 이번 보도행태에 대한 변명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논란과 비판을 야기해서 미안하다?
<독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과적으로 선정성 논란과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된 데 대하여 독자에게 충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알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보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논란과 비판이 제기되었으니 사과한다? 언론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독자들이 문화일보의 진정성을 몰라주고 비판을 하고 있으니 일단은 미안하다는 뜻인가?
‘사과’라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잘못을 인정하려면 먼저 무엇이 왜 잘못인지 이해해야 하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자신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결과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문화일보는 자신의 잘못을 짚어내기 보다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내용으로 사과문을 채우고 있다. 한 개인의 사생활권은 침해되었고, 여성폄하적인 보도행태로 인해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권력구조는 다시 한 번 확인되었으며, 독자들은 개인의 누드사진조차 국민의 알 권리 앞에 공개되는 횡포 앞에서 무력한 여성 개인임을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독자…>는 이런 엄청난 사회적 결과에 대해 한 언론사의 책임 있는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것만을 반복하여 확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잘못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유사한 상황에서 똑같은 잘못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 개인의 사생활권이 침해당하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남성과 여성이 주고받은 이메일이 발각되지 않기를, 개인의 누드사진 같은 것이 언론인의 손에 입수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없는 것일까?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설을 통해 우리시대의 여론을 선도해 가고 있다’고 자평하는 언론사에 기대할 것이 정녕 이것밖에 없는가?
2007년 10월 18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