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법무부에서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한 이후 한 달 여 만에 무려 7개 조항의 차별 금지 대상이 비공식적으로 삭제되었다. 삭제 대상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 조치가 매우 열악한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4년에 걸쳐 만들어진 차별금지법 초안에서 법무부가 1달 만에 7개 항목을 삭제하여 연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참여정부 인권 정책의 중대한 후퇴이며 인권탄압이다. 이는 입법 예고 후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법무부에 ‘동성애는 사회질서를 무너뜨린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하였다는 점, 10월 22일 몇몇 기독교 단체가 <동성애차별금지법안저지의회선교연합>을 발족하였다는 점 등 보수 기독교계의 발 빠른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으며, 고용 차별에 해당하는 사항을 대폭 완화하고자 하는 재계의 로비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여성인권단체로서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현재의 차별금지법(안)에 반대하며 삭제된 7개 안이 다시 법안에 포함되기를 요구한다.
첫째. 우리는 여성 인권 문제를 다른 모든 사회적 차별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성별은 현재의 법안에서 차별금지의 대상으로 포함된 13개 항목 중 하나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에 포함된 성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전력으로 인한 차별과 무관한 성별이 존재하는가? 여성 개인들의 성적 지향은 다양하며 학력으로 인해, 병력으로 인해,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한부모 가정에 속했다는 이유로 인해 차별받는다. 법무부가 삭제한 차별 금지 대상과 무관한 여성만이 ‘성별에 의한 차별’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여성인권단체는 그러한 여성만을 위한 인권운동을 하라는 것인가? 우리는 그러한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를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을 인정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번 졸속 처리를 도운 <동성애자차별금지법안저지를위한의회선교연합>에서 성적지향 차별 삭제를 주장한 이유로 들고 있는 이유는 ‘동성애 확대로 인한 결혼율의 감소와 저출산 문제’이다. 이러한 ‘성적지향’에 대한 보수기독교단체의 지향은 여성 몸의 재생산권을 여성의 몸으로부터 국가에 양도하는 가부장적 국가주의 담론과 맞닿아있다. 보수기독교단체는 ‘동성애’만을 반대하는 듯 여론을 호도하지만 실상은 한국사회 보수세력의 총집결로서 가부장적 여성관을 등에 업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
명목상, 현재 차별금지법(안)에는 성별에 의한 차별이 금지 대상에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차별을 묵인함으로써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에 대한 수혜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어떠한 의견 수렴의 절차 없이 졸속적으로 법안을 바꾸어 법제처로 이관한 법무부의 작태를 좌시한다면, 앞으로도 사회적 압력과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이 차별 금지법은 개악에 개악을 거듭할 것이다. 이후 여성 혐오적 집단의 로비가 있다면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에서 또다시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 대상에서 삭제하고 법안을 개정할 것인가?
차별 금지법은 “제 1장 총칙, 제 1조 (목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는 법적 구제 절차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성적 지향 등의 차별 사유를 구체화할 뿐만 아니라 차별의 범위를 넓게 해석할 수 있는 기본법을 제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한 차별만을 국가에서 구제하겠다는 것은 특정한 차별을 오히려 조장하는 차별 조장법에 다름 아니며 입법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대상에서 노골적으로 제외된 인권운동단체들과 적극 연대하는 것이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의 나아갈 바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법무부가 다시 헌법상 평등의 대원칙을 환기하여, 법무부 스스로 밝혔던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로 돌아가기를 촉구한다. 이를 위해 차별 금지법에서 삭제된 7개 항목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을 다시 확정하기를 엄중히 요구한다.
광주여성민우회, (사)문화세상이프토피아,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여성의전화연합, 장애여성공감, (사)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