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대통령 직속기구화에 관한
인권단체 의견서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확보를 촉구한다
1월 16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아래 인수위)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국가인권위)를 ‘위상이 지나치게 격상되어 있는 부처’로 분류하면서, 대통령 소속으로 격하시키는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인수위는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의 지위가 ‘헌법의 권력분립원칙’에 위배되는 논란을 가져온다고 얘기할 뿐, 어디서도 독립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없습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인권회의)는 인수위의 이러한 인식이 결국 독립적이고 실효성 있는 현행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약화시켜 대통령의 손아귀에 쥐고 흔듦으로써 사실상 국가인권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합니다. 인권이란 권력과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인권회의는 아래와 같이 인수위에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1.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① 국가인권위 독립성은 설립과정에서 만들어진 사회적인 합의사항입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령에 의해, 기존의 행정․입법․사법부에 소속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도 그 독립적 지위가 완전한 상태는 아닙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적 지위는 인권침해 사전예방기구이자 국가권력 감시활동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입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운동에서 독립성은 핵심적인 이슈였고, 장장 3년에 걸린 국가인권위 설립운동 끝에, 어느 헌법 기구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위원회의 위상을 규정한 현행 국가인권위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어떤 정당이나 정권에 따라 위상과 역할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고 이에 관한 국가책무를 이행하는 독립적인 국가기구 입니다.
한국정부 수립과정에서나 그 이후 광폭한 국가폭력을 경험해 온 국민에게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인권존중과 신장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국가기구가 존재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독립성과 실효성을 갖추기 위한 국가인권위 설립운동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권한을 낮추려는 세력과의 투쟁이었으며, 그 결과로 지금의 국가인권위가 탄생한 것 입니다. 때문에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권한을 낮추려는 인수위의 인식은 역사를 거스르는 작태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논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기대 속에 탄생한 국가인권위의 위치를 오로지 효율성과 기계적인 형식논리를 끌어다 대통령 소속 기구로 격하시키는 것은 국민의 합의와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②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의 구성은 ‘국제인권기준’입니다.
국가인권기구가 입법, 사법,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속합니다. 1993년 유엔총회 결의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 UN GA Resolution 48/134)은 국가인권기구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으려면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해 설치되는 것이 필수적”이며 “지위·권한·업무 및 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의 독립적인 지위는 정부의 특정부문, 또는 공공 및 민간 기구로부터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고 기능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합니다. 파리원칙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법적 자치 및 운영상의 자치를 통한 독립성 △재정적 자치를 통한 독립성 △임명 및 해임 절차를 통한 독립성 △구성을 통한 독립성을 들고 있습니다.
③ 인권옹호에 대한 국가책무는 효율과 경쟁의 가치가 아닌 국민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향해야 합니다.
인수위의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의 지위에 관해 ‘헌법의 권력분립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매우 기계적인 헌법 해석입니다. 인수위는 '삼권분립'을 언급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도식적인 '삼권'의 구성이 아니라 헌법이 정한 각 국가기관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권력분립' 관계이며, 그 핵심은 국가기관간의 배타적인 권한배분이 아니라 국가기관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민주주의에 기여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헌법상 인권은 입법·사법·행정·통치의 모든 국가권력을 구속하는 핵심적 원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권력에 대한 정당한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독립된 국가인권기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수위가 효율과 경쟁의 논리를 앞세워 인권옹호의 국가책무를 저버린다면,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인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통령 당선자의 발언이 진정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정책에 반영되어야 마땅합니다.
2. 인수위 국가인권위의 대통령 직속 기구화의 문제점
①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역할이 후퇴 됩니다.
국가인권위가 대통령 소속이 된다면 인사, 예산, 법령, 기타 내부 운영에 대한 모든 부분까지 행정부의 간섭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권침해의 감시자인 국가인권위가 감시대상자인 행정부에 종속된다면 감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은 상식입니다. 만약 국가인권위가 대통령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국가인권위에 속한 어느 누구가 행정부의 인권침해 행위를 지적하고 경고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게다가 현재 국가인권위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입법부 및 사법부, 헌법재판소에게 의견을 표명하거나 권고하는 역할도 위축될 것입니다. 만약 국가인권위가 대통령 소속으로 갈 경우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가인권위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2001년 설립당시 국가인권위는 입법, 사법, 행정부 3권 분립의 원칙 바깥에 존재하는 독립적 지위를 가지고 출발한 것입니다.
② 국제인권규범을 훼손하며 국내인권상황을 후퇴시킬 수 있습니다
유엔 인권고등판문관 루이스 아버 씨는 1월 18일 인수위에 서한을 보내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두는 것에 관해 재고하기를 촉구했습니다. 루이스 아버 씨는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내적 차원에서 매우 활동적인 위원회이며, 지역적 및 국제적 수준에서도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포럼(Asia-Pacific Forum)의 중요한 회원기구로,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of National Institutio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ICC) 부의장 기구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구”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1월 21일 국제앰네스티는 성명을 통해 “독립성의 결여는 다른 국가기관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국내 인권 쟁점에 대해 의견을 표명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객관성과 권위를 훼손시킬 것”이며 “보복의 두려움 또는 정의구현에 대한 희망의 좌절로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그 외의 개인들과 단체들의 진정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과 국제앰네스티 모두 국가인권위의 대통령 직속으로의 전환은 국가인권위의 국제적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국가인권위의 국내적 지위도 약화시키며, 한국의 인권 보호와 증진의 퇴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인 국제인권기준을 준수하는 길이며, 국내인권 증진에도 필수적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결론
인권회의는 인수위가 헌법상의 권한배분 등을 명분삼아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개편하겠다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객관적인 이해와 판단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는 의도를 경계하며 이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인수위의 공식적인 발표와는 달리 지난 1월 21일 한나라당이 논평을 내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북한인권전담기구로 만들려는 속내를 내비친 점에 주목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특정한 정치적 이념의 구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서 결국은 정권의 시녀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우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국가인권기구는 민중들에게 약이 아니라 독이 될 뿐입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인권침해 현실에 눈감는 국가인권기구, 인권박탈의 현실을 인권의 언어로 포장하고 면죄부를 부여하는 국가인권기구, 그리하여 인권옹호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도록 만들려는 차기 정부의 인권정책에 결단코 반대합니다. 인수위는 지금이라도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려는 정부조직개편안을 철회하여야 합니다. 인권회의는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에게 국가인권위를 독립기관으로 유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권단체들은 이명박 정권을 반인권 정권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서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저항해갈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는 인수위가 이런 부담을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 짐 지우는 어리석은 짓을 즉각적으로 시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권사회시민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