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콘텐츠기자단 틈의 지윤입니다! 지난 8월 20일, 서울 인사동에서 저희 상담소가 주최한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미투 운동으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피해자의 일상회복과 이를 위해 공동체는 얼마나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는 어떠하면 좋을지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행사장에 걸음해주셨는데요, 저와 함께 현장 속으로 떠나보시죠!
1) 행사장 소개
행사장 입구에는 형형색색의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찾아오신 분들을 반겼는데요, 이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에서 제작한 ‘미투운동이 당신에게 건넨 말’ 현수막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그래픽과 사이즈의 시각디자인은 ‘평범한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를 내면서 서로 연결되었던 미투운동’을 의미한다고 해요. 총 15개의 문구들은 행사장 곳곳에 포스터로 제작되어 배치되기도 하였고, 책갈피의 형태로 오시는 분들에게 제공되기도 했답니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 다양한 부스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었는데요. 먼저 반성매매인권행동단체이룸이 운영하는 불량언니작업장에서는 수세미, 아로마 캔들, 입욕제, 오디 쨈 등의 수제 굿즈를 선보여 주셨습니다! 그 옆에는 성범죄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D의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안희정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입니다』, 성범죄 피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허들을 넘는 여자들』,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여성운동사를 기록한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FDSC의 『뛰어놀며 운동장의 기울기를 바꾸기』 등의 책들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한 켠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부스가 자리했는데, 바로 김지은 씨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인 람지커피를 판매하는 부스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행사 끝 무렵에 완판되었습니다☺
이외에 저희 상담소가 퀴어 퍼레이드에서 진행했던 “적극적 합의의 5가지 원칙 스티커로 나만의 타로 카드 만들기” 부스도 이번 행사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답니다! 적극적 합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성적 동의 기준이자 지향으로서 제안하는 개념인데요, 1) 명시적으로, 2) 의식이 있을 때, 3) 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4) 평등하게, 그리고 5) 모든 과정에서 항상이라는 5가지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 합의에 관한 5가지 원칙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스티커로 제작되어 참여자분들이 자유롭게 타로 카드에 붙여 꾸밀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들을 떠올리며 개성 넘치는 타로 카드를 만들어 주셨는데요, 어린이 친구들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카드를 꾸미는 모습을 보면서 적극적 합의 개념이 모든 연령대의 이들에게 닿아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잡으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2) 영상 및 토크 세션
1층에 있는 부스 구경을 마쳤을 즈음, 행사장 2층에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토크 세션에 앞서, <애프터미투> 프로젝트 팀(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감독)의 <미투운동 중간결산: 1664일, 달라진 질문>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은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트위터의 공동 운영자이자 시인 B의 성폭력을 공론화, 형사 고소했던 고발자 X와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밝힌 최영미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용기를 내어 피해를 알린 수많은 발화자들을 대변하는 듯하였고,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사투는 끝나지 않았음을 담담하지만 힘주어 알리고 있었습니다.
이어 첫 번째 토크 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세션의 주제는 “성찰 빼고 돌아올 때 : 가해자 처벌 후 복귀 전, 공동체의 숙제”로, 안희정 성폭행 사건 증인 신용우님,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님,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산님,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란님이 패널로 참가하여 가해자가 처벌받은 이후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의 역할에 대해 발언해주셨습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았던 신용우 씨는 8년 동안 안희정 전 충남지사 수행 비서였으며 재판 당시 피해자의 편에 서서 증인으로 나섰던 이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안 전 지사가 법적 처벌을 받았음에도 자신을 비롯한 피해자 측 증인들이 재판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 보복을 겪었음을 밝혔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을 비롯한 피해자 측에 섰던 증인들은 공직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이유 없는 해고를 반복해서 겪기도 했으며, 결국 떠밀리듯 해외로 떠난 이들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안 전 지사 편에 섰던 증인들은 정계에서 고속 승진을 하거나 공기업 요직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신용우 씨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권력과 그 고리들이 한 개인과 진실의 편에 선 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공격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하며, 당사자인 안 전 지사의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미투운동의 한 축이었던 문화예술계도 가해자 중심의 폐쇄적인 구조가 피해자와 조력자를 압박하였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산 활동가님은 배우 초년생 때 공연장을 운영하는 한 배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이후 이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산님은 가해자가 출소하거나 공동체로 돌아왔을 때, 공동체 내에서 다시 힘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 이해관계망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하고, 가해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의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자신이 쥐고 있는 이해관계망을 흔들어 피해자의 안위를 해치도록 부추기기 쉽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장혜원 의원님은 미투 운동 이후의 5년이란 시간이 가해자들이 가진 기득권이 얼마나 공고한지 확인하는 시간이자 동시에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성찰을 요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의원님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 있었는데요,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해자는 감옥으로”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피해자에게 돌아갈 일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기득권과의 싸움인데 사실 그 기득권으로 구성되었던 것이 피해자들의 일상이었기에, 결국 새로운 일상을 창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말이 저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번째 세션의 주제는 “’피해 부정의 시간’ ‘2차 피해’ 해결은 가능한가?”로, 여성현실연구소 소장 권김현영님,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송란희님, 국회여성정책연구회 회장 이보라님,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김혜정님이 패널로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세션에서는 미투운동 이후 심각해지는 2차 피해의 구조와 변화의 목표 및 전략을 논하였습니다.
김혜정 소장님은 미투 운동의 시간이 2차 피해 대응의 시간이었음을 말하며, 우리 사회가 “2차 피해라는 말은 알지만 정확히 무엇이 왜 문제인지를 짚어낼 역량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하였습니다. 또한 가해 행위를 부인하려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그룹으로 조직화되어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가 고민임을 밝혔습니다.
자연스럽게 2차 피해 대응의 사법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이보라 대표님은 2018년에 제정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법에 2차 피해가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법에 명시된 폭력이 추상적이며 강제 수단이 매우 제한적임을 짚었습니다.
송란희 대표님은 “이런 법제화가 의미가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는 한계가 명확한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다 제도화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모든 사건이 다사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안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권김현영 소장님은 “사회 윤리 차원에서의 이야기와, 사법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가 나눠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2차 피해의 법적 범위를 너무 넓게 확장시켰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면 “피해자에게 어떤 것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2차 피해라는 식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게 되고, 거기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나아가 권김현영 소장님은 “2차 피해를 없애자는 걸 큰 목표로 삼기보다, 이것이 왜, 어떻게 발생되고 있는지 살피고 사건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관련 규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규정을 (공동체 내에서) 얼마나 시간을 들여 인지하게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 세션은 “피해자는 일상으로: 달라진 우리로 살아가기”를 주제로 이루어졌는데요, 패널로는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 권수정님, 허들을 넘는 여자들 허와 들 에디터님, 주연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활동가 주연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이 세션에서는 미투운동 구호의 현재적 의미를 짚고 사회에 등장하는 새로운 주체의 의미, 역할, 힘 등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쿨미투 당사자였던 주연 활동가님은 관계망이 좁은 지역에서 청소년이 성폭력을 고발하고 가해자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아낼 힘을 얻었으며,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또한 주연 활동가님은 일상 회복을 위해서는 피해자의 삶에 여유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피해자의 사회 복귀를 개인의 역량에 달린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금전을 비롯한 생활 및 치료 지원의 접근성이 확대되어야 하고,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이가 필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2004년 전국금속노동조합 내에서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공동체에 남아 부위원장이 된 권수정 부위원장님은 “동지들의 응원으로 일상이 회복되었던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성폭력 사건을 단순히 잊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지들의 지지로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밝히며, 이런 내용이 시스템으로, 조직의 매뉴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성범죄 피해를 겪은 여성 10명의 에세이와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담은 책 『허들을 넘는 여자들』을 기획한 허 에디터는 피해자가 겪은 피해 사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꿈꾸고 있는 것, (피해 이후에도) 살아가는 방식 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피해자와 함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을 제시해주셨는데요, 주연 님은 피상적인 응원의 말에 그치지 않고 정말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권수정 부위원장님은 “너무 조심하느라 다가가지 못하기보다, 조금은 용감하게 (피해자에게) 접근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하였고, 들 에디터는 “내가 피해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려주고, 피해자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3) 공연
4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토크 세션 이후에도 참석자 분 모두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는데요, 이는 바로 싱어송라이터 이랑님의 특별무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듣고 있어요>,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환란의 세대> 등 이랑님의 개성 넘치면서도 진솔한 노래에 모두가 가사를 곱씹어보며 빠져드는 모습이 제게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4) 마무리 글
행사장을 나오면서 우연히 들렸던 한 참여자 분의 말씀이 집 가는 길 내내 귀에 맴돌았는데요, “모두가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구나.” 저는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미투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많음을, 그리고 그들을 향한 n차 피해를 막기 위해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직은 산처럼 쌓여있음을 직시하면서 안타까움과 왠지 모를 막막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투하고 극복해가는 용기 있는 피해자분들과 그들을 위해 수많은 도움, 지지, 그리고 응원을 보내는 이들 간의 공고한 유대를 확인하며 저 역시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를 위한 노력의 일부분으로서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바뀔 때까지 미투는 멈추지 않는다!” 이상, 자원활동가 틈의 지윤이었습니다.:)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 행사는 다음 링크를 통해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7ztN4Awb8E
- 이 후기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콘텐츠기자단 '틈'의 지윤 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