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9월 22일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분들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추모 집회 전까지는 몰랐는데, 서울교통공사는 매우 성차별적인 직장문화를 가지고도 고치지 않는 공간이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노조 대의원 이현경 님이 발언해주시기로, 서울교통공사는 야간 숙직을 위한 공간이 없으니 여성 노동자를 배제하자고 했답니다. 몇 해 전에는 면접 점수 조작으로 여성 지원자를 대거 탈락시킨 곳이었기에 가해자의 채용 및 면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추행 등의 피해를 입으면, 남성 중심적인 환경 특성 상 보통 다른 근무자와 상의하여 가해자를 직장에서 보지 않도록 다른 건물에서 다른 시간대에 근무를 서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서울교통공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경찰청에서는 유치장 유치 및 구치소 수감이 가능한 잠정조치 4호를 적극 활용하고 스토킹 피해 전담 부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 발언한 경찰청 행정사무원의 경험에 따르면 공직 내에서도 동료에 의한 성희롱 피해, 민원인의 살해 협박 및 스토킹 등에 노출되는 환경이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나서달라고 하면 직장 내 왕따가 되는 경우가 많고,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애초에 경찰청 담당부서조차 조직내 여성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성 폭력 피해자와 시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인지 한숨이 나왔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는 장애 여성이 남성의 호의로 포장된 과잉 친절을 거절할 경우, 인신 공격성 발언을 듣는다며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또한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에서는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언론을 통해서 생성한 것은 정부인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현 여가부 장관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했습니다. 젠더라는 현상과 본질을 갈등으로 치환하면서, 정작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 여가부의 움직임이 여성의 권익 향상과 젠더 폭력으로부터의 보호라는 구체적 영역의 행정에 정말 뜻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이야기하신 것이 인상깊습니다.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면, 대부분 폐쇄형 감시 카메라 설치의 확대, 민감 유해환경 감시단 및 순찰대 인력 보충 등으로 일차원적인 해결책이 우선하여 나오는데, 한국성폭력상담소 닻별 활동가는 이에 대해 법치주의와 치안강국으로 막을 수 있는 범죄의 성격이 아니라고 발언하였습니다.(1시간 넘는 연대 발언 이후, 행진 차를 타고 다니면서 스토킹 범죄 처벌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냈는데요. 보신각- 을지로입구역-광화문- 다시 보신각으로의 40분여의 길지 않은 행진에서도 “페미 꺼지라”는 혐오 세력을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분은 이미 불법촬영피해를 신고했고, 그 뒤로 스토킹 피해를 입은 다음 가해자의 2심 선고 전에도 해당 촬영물로 협박을 당하기도 하셨다고 언론에 보도되어 있습니다만, 여전히 가해자 프로파일링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스토킹 피해는 전체 여성 폭력 피해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성범죄나 가정폭력과 같은 다른 범죄와 연합하여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스토킹 범죄 단독 건에 대해서 조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상위법이 만들어진 것일 뿐 법적인 개념으로 아직 확립된 것이 아니며, 판례도 쌓이지 않아 지금부터 세부 법령이나 규칙 등을 정비해야하는 초기 작업에 착수해야 할 만큼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지요.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스토킹 범죄가 반의사불벌죄로 남아있다는 것과, 피해를 당사자 한 사람에 대해서만 특정하여 주변인의 고통 등을 측정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스토킹 범죄가 피해자 긴급 보호조치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님에도 법률제도의 정비에만 관심을 가지고 젠더 폭력이라는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범죄를 개인의 성적 일탈, 범죄 등으로만 수식한다면 그를 둘러싼 사회의 구조적 책임은 지워지고 해당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국가 권력 및 사법적 정의에 과도한 정당성을 부과할 우려가 남아있는 것이지요.
최근 법원에서 정책 의제화될 조짐을 보이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반갑긴 하지만, 젠더 폭력의 본질을 흐리고 범죄 행위 일반으로 꼬리자르려는 현 정부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요. 집회 당시 참가자의 모든 끈을 모아서 하나로 이은 것처럼, 사회적 죽음에 연결성을 느끼고 함께 애도하며, 현 정권의 암담한 현실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초 300명으로 예상되었던 참가 인원이 행진 시작 직전 500명을 돌파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처럼 일터의 성평등의식에 대한 당위성에 직장문화가 응답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