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틈 활동가 지윤입니다!
최근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근무 중 숨진 사고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죠. 이 사고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안타까운데, 회사 측의 부적절한 사후 대처가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었습니다. 이번 사고 소식은 개인적으로 저로 하여금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런 와중에 발견하게 된 여성 노동자를 주제로 한 페미니즘 영화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2015)은 총 22명의 여성 노동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한국 영화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장을 수상한 이력이 있습니다. 베니스 영화제가 아닌 비엔날레전에서 수상하였다는 것은 영화가 미술작품으로 인정받을 만큼 그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자료 화면 사이에 시적인 풍광과 퍼포먼스 장면들이 삽입되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보는 이가 한층 더 공감하게 하는데요, 저와 함께 영화를 살펴보시죠.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영화는 가장 먼저 1978년 인천 동일방직 사건부터 짚습니다. ‘누드 시위’와 ‘똥물 투척 사건’으로 기억되는 동일방직 사건은 여성 노동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죠. 당시 남성 중심의 노조에 맞서 민주 노조를 건설한 여공들은 해고에 맞서 윗옷을 벗는 반나체 시위를 벌였습니다. 영화는 당시 여공이었던 이총각과 기록사진을 찍은 사진사를 인터뷰하며, 회사가 민주 노조를 탐탁치 않아 하며 여공들에게 똥물을 퍼부었던 사건에 대해 듣습니다.
이총각은 당시 환풍도 되지 않은 작업장에서 일하던 여공들이 결핵에 걸렸던 것이나, 남성 재단사에게 성폭행당하는 일이 잦았던 것을 말합니다. 당시 여성 노동자는 자본에 의한 착취 뿐만 아니라 성별 권력에 의한 착취를 당하는 이중적 의미의 약자였던 것이죠.
“나도 나이키 신고 싶다!”
이어 영화는 1979년 YH 무역 농성사건과 1985년 구로 동맹파업을 담습니다. 당시 대우어페럴에 다녔던 노동자는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역이라 불리는 가리봉역 근처에 모여 살던 여공들의 삶에 대해 말합니다. 교복을 입어야 할 나이의 소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공장으로 모여들었었는데요, 이들은 홍보 사진과는 너무도 다른 혹독한 공장 생활을 견뎌야 했습니다. 야근을 위해 수없이 삼킨 커피와 타이밍은 그들의 건강을 무너뜨렸습니다.
구로 동맹파업으로 구속되었던 노동자는 당시 겪었던 끔찍한 폭력과 협박을 들려줍니다. 증언의 내용은 참혹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한 일화를 들려줍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왔다가 구속된 동료 노동자가 교도소에서 “나도 나이키 신고 싶다!”고 외쳤다는 일화였는데요, 나이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나이키 운동화를 사서 신을 수 없었던 당시 여공들의 저임금 노동의 현실이 그 안에 담겨있었습니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그리고 참혹한 노동 탄압에 시달려야만 했던 노동자의 삶은 오늘날에 들어 달라졌을까요. 노동환경은 전보다 개선된 듯 하지만 비정규직화로 인한 고용 불안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는 기륭전자 사건이 잘 보여줍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 비정규직 차별과 대규모 해고에 맞서 노조를 설립하고 투쟁하였습니다. 길고 긴 투쟁으로 사측과 싸운 결과 8년 5개월 만에 정규직으로 복직할 수 있었지만, 회사는 이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듯 야밤에 도주하고 상장 폐지를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영화는 삼성반도체 공장 백혈병 산재 사건(2007), 한진중공업의 크레인을 벌였던 김진숙의 인터뷰를 그들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이미지들과 함께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여전히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고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음을 드러냅니다.
‘공순이’에서 ‘콜순이’로
영화는 120 다산콜센터에서 상담원 노동자들의 애환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전화 응대를 하고 콜 받은 횟수와 고객 평가로 급여가 달라지는 경쟁 시스템에 의해 정신없이 바쁜 콜센터노동자의 생활을 보여줍니다. 콜센터의 40대 노동자 양선경 씨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워킹 푸어’에 대해서 말하며,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일하여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릴 수 없는 형편에 눈물을 보입니다.
이들 못지 않게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항공사 승무원들의 이야기도 영화는 담아냅니다. 항공사는 이들에게 복장과 화장을 엄격하게 규율하여 미적 노동을 강요하고, 자신에게 성적 희롱을 하는 고객도 웃으면서 응대해야 하는 근무 수칙은 그들로 하여금 모멸감을 자아냅니다.
무언의 위로
이처럼 영화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통찰을 담고 있지만, 영화가 드러내는 감정은 분노가 아닙니다. 바로 노동자들의 인터뷰 사이사이에 삽입된 퍼포먼스가 인터뷰이들로 대표되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요.
위 왼쪽 사진은 영화 초반부에서 동일방직에 관한 인터뷰이들의 진술 이후에 삽입되는 퍼포먼스입니다. 흰색 천을 뒤집어 쓴 두 여성이 서로의 얼굴을 맞대는데요, 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연작 <연인(1928)>(우측 사진) 속 두 남녀를 떠올리게 합니다. 임흥순 감독은 이 퍼포먼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천을 뒤집어 쓴 두 소녀의 모습은 통풍시설이 미약하던 옛 봉제공장 이야기를 들은 후 죽은 사람을 염하는 상상에서 비롯된 건데요. 폐에 쌓이는 검은 먼지와 소음을 흰 천으로 가려주면서 우리가 묻어두고 터부시하고 버려두고 관심을 가지지 않던 잃어버린 사회 이야기를 은유하고 있어요.”
이후로도 자연과 소녀의 이미지를 공통적으로 가지는 퍼포먼스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간대를 초월하여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한 할머니가 다른 분에게 업혀 다리를 건너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 두 노인의 모습이 70년대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현재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며 영화가 파노라마처럼 보여준 그들이 그동안 걸어왔던 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세대를 초월하여 노동자들 간의 위로, 연대, 우애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임흥순 감독은 과거 구로공단이었던 곳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많던 노동자들이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한 것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자매라는 생각과 함께 이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잘 전달되는 영화였습니다.
<위로공단> 영화를 꼭 보시길 추천드리며 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틈 활동가 지윤이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콘텐츠기자단 '틈'의 지윤님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