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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서울대 음대 C교수 성폭력사건 방청연대
  •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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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원 활동가 '민지'라고 합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저번 주 화요일에는 자원 활동을 담당하시는 회원홍보팀 닻별님의 제안을 통해 이번 '서울대 음대 C교수 성폭력 사건' 방청 연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방청연대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 주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구글 폼을 통해 미리 방청 연대 참석 신청을 하고 20221213일 수요일 오전 930, 추위와 지옥철을 뚫고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에 도착하였습니다. 추위가 매서웠던 날이었어요. 롱패딩을 장착했지만 매서운 추위에 얼굴과 손이 시려웠습니다. 저야 그 추위가 고작 몸으로 느껴지는 것뿐이었지만, 오늘 증인 신문에 참석하는 피해자의 마음은 얼마나 더 시려울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원래는 화요일에만 방청 연대에 참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뒷부분은 뒤에 이어집니다.)


 도착하니 많진 않지만 다양한 분들이 와 계셨습니다. 아는 분들도, 처음 뵙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 맹렬한 추위에 그래도 마음을 모아 함께 하는 연대자 분들이 계시니 든든해지더군요.

 오전 930분부터 11시까지는 배심원 선정이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포함한 연대자들은 간단히 사건 개요와 쟁점, 방청에 대한 안내를 들었습니다.


피해자는 20151018, 스승인 가해자에게 강제추행 피해를 입었습니다. 가해자는 우리나라의 대학 중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서울대 음대의 학장이자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졌고, 피해자의 아버지와도 선후배 관계로 평소 피해자가 잘 따르던 인물이었습니다. 피해 이후, 음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가해자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피해자는 처음에는 가해자의 사과 문자를 받고 침묵을 강요하는 것 같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문득문득 머릿속을 침범해오는 플래시백(예기치 못하게 과거 트라우마가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현상), 나 홀로 숨죽여 피해 사실을 안고 있었어야만 했던 고통으로 힘들어하던 와중, 2018년에 미투운동이 일어나고 심경의 변화를 맞아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고발하고 문제 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며 아예 피해자의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였고, 그저 불편하게 앉아 있던 피해자의 양쪽 어깨를 잡고 뒤로 끌었을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피해자의 고소에 불복하고 나선 것입니다. 게다가 본 사건은 가해자 측의 국민 참여 재판 요청으로 무려 피해자가 고소한 지 2년 만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국민 참여 재판은 최근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유리한 대응 전략으로 공유하고 있기도 한데, 일반 재판의 무죄율이 3.7%인데 반해 국민 참여 재판의 무죄율은 47.8%에 달하기 때문입니다.(천주교성폭력상담소, 2022) 일반 시민으로서 가지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나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부담감 등이 무죄나 양형의 선처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방청 시 방청 내용을 적을 수 있는 방청일지와 함께 천주교성폭력상담소 굿즈 몇 가지를 받았습니다. 이윽고 11시가 되었습니다. 연대자들은 함께 417호 형사 대법정에 들어가 각자 자리에 앉았습니다.(참고로 법정에 들어갈 시 물과 텀블러는 소지하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검역대에 잠깐 맡겨놨다가 나가실 때 다시 들고 가시면 됩니다.) 저는 가해자 측이 앉은 좌석 쪽 맨 앞에 앉았습니다. 어떤 달콤한 말로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하는지 두 눈 뜨고 감시하고 싶었습니다.

이윽고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검사 측과 피고인 측의 모두 진술이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진술이란 법률 지식과 형사 소송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배심원들에게 사건의 주요한 쟁점을 인식시키고, 이후에 제시할 증거와 증인에 대해 설명하며, 재판 과정에서 각자가 증명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국민 참여 재판을 처음으로 방청했습니다. 그동안 몇 번 다른 공판 방청을 가보았으나 매번 건조하고 간략하게 끝나곤 했는데 이번 국민 참여 재판은 달랐습니다. 재판이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고, 판사가 밤늦게 끝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전문적인 법조인이 아니며 일반 국민들 중 무작위로 뽑힌 배심원들의 판결이 재판 결과를 결정 짓진 않지만,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배심원들에게 사건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틀이라는 시간은 사전 지식 없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내용을 정확하고 깊게 파악하는데 오히려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중한 부담감 없이 비교적 편하게 방청을 했던 저 또한 비록 검사가 PPT로 이해하기 쉽게 본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공소 사실을 증명해나갈지 설명했지만 어려운 단어들이 튀어나와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으니까요. 중간중간 판사와 검사가 어려운 단어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도 했지만요.

모두 진술이 끝난 후, 오전 재판이 끝났습니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 점심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서관에 딸린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대기하던 도중,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던 피해자 증인 신문을 공개로 진행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피해자 분께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증명하는 과정이 지난할 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분께서 만약 피해자 증인 신문을 비공개로 진행한다면 가해자 측 변호인이 더욱 세게 공격할 것이라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하는 것이 더 피해자에게 안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오후 2, 재판이 재개되었습니다. 피해자 증인 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가해자 측의 공격은 매서웠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피해자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 등을 잘게 분해해 우리 앞에 늘어놓았습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저에게는 피해자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척하면 이해가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피해자다움을 재단하는 공격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강압적인 태도였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 측 변호인의 진술 중 그것은 잘못된 부분이라고 짚으려고 하자 들어보세요. 들어보시라고요.”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매서웠던 오늘 추위처럼,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혀로 피해자와 이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생존자들, 연대자들의 마음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습니다. 피해자의 사생활이 가해자 측 변호인의 입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어 맨몸으로 발가벗겨진 채 견딜 수밖에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피해자의 친한 친구, 존경해 마지않았던 사람들이 모두 가해자 편으로 돌아서면서 피해자는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피해자 증인 신문은 4시간이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지켜보는 제가 다 지치는데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동시에 자신을 변호해야 했던 피해자는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서문에서 저는 원래 화요일에만 방청 연대에 참석하려고 했다고 하였으나 피해자 신문 과정에서 가해자 측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 대한 지겹고도 전형적인 통념과 텅 빈 성 인지적 관점을 보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기에, 비록 저녁에 작은 말하기(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 자조 모임) 송년회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음 날 방청 연대에도 참석하기로 합니다.

 

다음 날 오전, 다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에 발을 디뎠습니다. 오늘 재판은 증거 및 증인 조사, 피고인 신문, 최종 판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친구와 선배의 증인 조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해자 측의 증인이었습니다. 음악계나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었던 피해자가 법정에서 한 번 더 고립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피해자와 친구 간의 사적인 대화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 앞에서 낱낱이 공개되었습니다. 갑자기 과연 나와 같은 일반 시민인, 비법률가인 배심원들이 이러한 단시간의 증거 조사를 통해 정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미투 운동 이후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 속에 뿌리 깊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다움을 따지는 통념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 배심원들이 과연 가해자 측으로 돌아선 저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과 가해자 측이 피해자다움이 결여되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모습들을 보며 정확하고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기 전, 저는 저녁에 작은 말하기 송년회가 예정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정확하고 올바른 판결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송년회 장소로 향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밤이 다 되어가는 9시에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송년회에 참석한 다른 생존자들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서울대 음대 C교수 성폭력 사건, 징역 1년 실형 선고되었습니다!”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문자에 적힌 징역 1(..)’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반갑게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이에 더해 가해자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 40시간 수강 명령이 선고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제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배심원 전원 만장일치의 결과였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배심원들의 평결서를 통해 피해자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꾸며내기 어려운 정보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여 신빙성이 높다고 보여지고, 무고 혹은 위증의 벌을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의 가능성이나 성적 수치심을 감수하면서 무고를 할 만한 사정을 찾을 수 없다, ‘피고인의 강제추행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천주교성폭력상담소, 2022)

이후 검찰 측은 가해자 범행의 죄질, 반성 없는 태도 등을 종합하여 더 무겁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항소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이 사건을 지켜보며 피해자와 연대할 것입니다. 피해로부터 7, 비로소 사법 체계 안에서 피해를 인정받은 피해자에게 조금이나마 이 결과가, 그리고 수많은 연대자들이 당신 곁에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후기는 자원활동가 민지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