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0일, 대법원(주심 안대희)은 여성 직원들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가해자가 자신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깨고 "해고가 정당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신용카드 회사 남성 지점장이 다수의 여성 직원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 발언과 추행 행위를 저지른 사건으로, 작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에 대해 ‘격려의 의미’라거나 ‘관리자로서의 직원에 대한 애정 표시’라며 사측의 해고 징계 사유인 ‘현저한 고의성’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가해자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고의성’이라는 내심의 의사는 사건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상습성, 지속성, 낮은 성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성희롱 할 의사가 없었다는 가해자의 진술에 의지해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가해자의 심각한 성희롱 행위 그 자체가 바로 ‘현저한 고의성’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그 동안의 왜곡된 사회적 인습이나 직장문화 등에 의하여 형성된 평소의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그 행위의 정도를 가볍게 평가할 수 없”음을 명시함으로써, 이 사건의 원심을 비롯하여 그간 재판부가 성희롱이 ‘왜곡된 사회적 인습이나 직장문화’를 이유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관행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성희롱을 한 경우, 명시적이고 묵시적인 고용상의 불이익이 두려워 피해자가 감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여 이러한 성희롱은 더욱 엄격하게 취급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였다.
이 사건은 한 명의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 다수가,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포함하여 추행이라고까지 할 만한 행위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사건이었다. 즉, 증거가 없거나 참고인이 부족해 입증하기 어려운 다른 사안에 비해 너무나 명백하여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에 발생한 이 사건이 이번 판결로 가해자의 징계가 확정되기까지 무려 5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성희롱 해결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절차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자, 최소한의 권리라도 쟁취하고자하는 피해자의 요구는 아직 요원하기만 한데, 가해자의 방어권은 날로 정교해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성희롱 관련 법이 제정된 10년,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성희롱에 대한 척박한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은 여전히 사소하고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일이며, ‘호의’를 ‘불쾌’로 받아들인 개인 여성의 과민한 반응일 뿐이다. 우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성희롱에 인색했던 사법부의 시각을 돌아보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판결을 계기로 성희롱 문제가 사회적으로 환기되고 성희롱 문제 해결을 위해, 성 평등한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성찰과 변화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2008. 7. 15
(사)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