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리뷰] 수치심과 정의
이달의 리뷰!?
성문화운동팀에서는 강간죄개정운동과 함께 교육,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동의'를 해석하는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 것, '적극적 합의'가 대안적인 성적 실천으로서 사회 곳곳에 자리잡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변화입니다. 올해에는 '성적 동의'에 대해서 더 넓고 깊게 공부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네 차례에 걸쳐 스터디 모임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 내용을 리뷰로 발행합니다:)
6월달 두번째 성적 동의 스터디에서 함께 읽은 책은 <수치>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인데 정말 성폭력의 세계사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자료들을 통해 성폭력을 ‘여성들의 보편적 경험’이라고만 말할 때 자칫 드러나지 않거나 누락될 수 있는 내용들을 촘촘히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맥락과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지역적인 특수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봄으로써 한 사람의 경험이자 사회적 구성물로서 성폭력을 더욱 세심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달의 리뷰>에서는 책의 제목이자 1, 2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수치심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요. 수치심의 의미와 효과는 무엇인지, 각 사회의 성폭력을 규정하는 법에 수치심, 정조 이데올로기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러한 규정은 여성/소수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하며 이 책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수치(disgrace)의 의미와 효과
저자는 수치의 효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수치(disgrace)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만으로도 유쾌한 사교를 비롯하여 그 밖의 인간 상호작용의 구조가 훼손”된다.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 언어로서 흔히 수치심이 이야기되는데 저자는 ‘수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중심으로 어떻게 여성/소수자들의 행동과 관계가 제약되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수치가 개인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조직되며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합니다. “수치는 여성을 포함하여 다른 종속적이고 존중받지 못하는 자로 폄하당하는 사람들을 구성하는 과정의 일부다”, “성폭력이 자신과 공동체에 수치를 줄 것이라는 두려움은 그 어떤 실제 공격보다도 강력하다. 강간과 수치는 주요한 정치적 무기로 이용되어왔다” 저는 이 부분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보편적 감정언어로서 수치심이 과연 적절한가 아니라면 성적수치심은 과연 어떻게 사용되고 만들어지고 있는지 질문한 한국여성민우회에 2021년 설문조사와 토론회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성폭력의 법적 구성요건으로서 ‘성적수치심’이 존재합니다. 성희롱 혹은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를 드러내는 문장으로서 성적수치심이 언급되는 기사를 많이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문조사에 따르면 82.7%의 응답자가 성적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일상에서 접한 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본인이 직접 사용한 적이 있는 사람은 28%에 불과했습니다. 성적 수치심은 언론과 수사재판기관에서 사용하는 관성적 용어이지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동떨어진 언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감정보다는 “가해자와 방관하는 사람들을 향한 부끄러움 보다는 훨씬 강력하고 격한 감정”이 든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시선 및 법의 요구간의 차이가 있는 현실에서 성적 수치심은 “환경적 맥락, 이데올로기적 믿음, 개인 간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성폭력 경험보다는 오히려 주변인들의 반응에서 오는 2차적 감정으로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2021, '성적 수치심 괜찮지 않습니다' 토론회 시민들의 목소리로 퇴장을!)
성적 폭력을 당했다면 수치심으로 괴로워할 것이라는 믿음 혹은 기대, 수치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스스로 삶의 여러 부분에 제한을 두게 만드는 압력이 사회적으로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을 때 수치심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해석하고 대응하고 피해 이후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회복해갈지 전 과정에 걸쳐 영향을 미칩니다. 문화와 사회적 시선 속에서 조직된 수치심을 더 중요하게 보아야할 이유입니다.
"청바지, 궁극의 정조대" - 정조관념과 성폭력 관련 법의 영향
수치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정조관념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련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귀속된 소유물로서 여성의 ‘정조’를 바라보고,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시 떳떳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거나 그러한 행동거지를 요구하는 규범으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한국은 1953년 형법 제정당시 성폭력을 ‘정조에 관한 죄’로 규정하였고(1995년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두고, 폭력의 정도를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수준으로 최대한 협소하게 해석하면서 여전히 피해자의 저항여부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규범이 아닌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많은 나라의 성폭력 판결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탈리아에서는 1992년 ‘청바지 판결’이라는 유명한 ‘문제적 판결’이 있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이 적극 협조하지 않으면 벗기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누구나 경험한 사실”이라며 이탈리아의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여성들은 “청바지, 궁극의 정조대”라며 해당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여성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극렬하게 저항해야 하고,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력은 불가능하다는 강간신화를 보여주는 문제적 판결이자, 저항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여성에게는 보호의 의무를 철회하는 가부장적 법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은 범죄라기보다는 개인 혹은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는 왜곡된 생각 탓에 대만에서는 1999년까지 친고죄가 유지되기도 하였습니다. 대만의 강간범들은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고소하고 증언할 의사가 있어야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공개적으로 순결을 잃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여성에게는 강간 자체보다 더 피해가 크다는 믿음 때문에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명예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013년까지 친고죄가 유죄되었고, 이탈리아의 청바지 판결에서 보여준 것처럼 저항이 억압될 정도의 피해자의 취약성, 무력함, 일관성을 요구하면서 ‘보호할 만한 피해자’ ‘정조를 지키는 여성’이라는 추상적인 통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성폭력 관련 법이 이러한 가부장적 정조관념 위에서 만들어졌을 때, 많은 여성/소수자들은 이와는 다른 경험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법과 불화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성폭력 경험의 해석이 법적인 것으로만 좁아지는 것을 경계하지만, 법의 규정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성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습득하게 하는 하나의 규범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기존의 법과 어긋나는 경험들은 자칫 사소화되거나, 해석틀이 부재하여 부유하는 경험이 되거나, 언어를 찾지 못하고 마음에 남아있는 채로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올해 친밀한 관계 내 동의를 고민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 작업은 이와 같은 고민들 속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실마리를 얻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정조, 순결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 않는 사회는 성폭력 경험에서 수치심이나, 피해자의 저항여부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브랫섀들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귀실랜드(케냐)의 법정 원로들이 강간 피해자들에게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요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발된 남성이 여성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었음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섀들의 말에 따르면 리통고(법정 원로들)은 여성이 “일을 치르고 난 다음 후회”를 느꼈다거나 강간당했다고 거짓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혼전 관계를 경험하기 때문에 성적 평판에 크게 영향이 없었다. 법정은 대체로 여성이 거부했다고 증언하면 실제로 그러했을거라고 믿어주었다. 그래서 동의를 입증하는 것은 남성의 책임이었다”
저자는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런 재앙을 이해하고 근절하겠다고 단호히 마음먹었다는 증거’라며 이 책의 독자들을 연대자로 적극적으로 호명합니다. 이 글을 읽을 여러분도 상담소의 고민을 함께하며 동료로서 함께하기를 초대한다는 말로 ‘오늘의 리뷰’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