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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
  • 2023-11-30
  • 841

지난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장혜영 의원이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였습니다. 현행법상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은 대법원 사무처리지침에 근거하여 판단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과 판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등 일관적이지 못한 결과,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가혹할 정도로 까다로운 '증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트랜스젠더 시민의 존엄을 위해 본 법안을 발의하였다고 합니다.



(사진: 장혜영 의원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연대 제안을 받아 닻별 활동가가 발언에 다녀왔습니다. 기자회견 발언문 전문을 공유합니다.


1. 장혜영 의원 – 법안 대표발의 의원

안녕하십니까,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입니다.

11월 20일 오늘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입니다. 1998년 미국에서 혐오범죄로 살해당한 리타 헤스터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이 날은 혐오와 차별로 세상을 떠난 소중한 동료시민인 트랜스젠더 시민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날입니다.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 시민들은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트랜스젠더 시민들이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법적 성별을 변경하는 문제는 다름 아닌 ‘존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24일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둔 트랜스젠더도 혼인 상태가 아니라면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 성전환자의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며 기본권적인 원칙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보충의견을 통해서 성별정정에 관한 입법 조치의 시급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자기결정권에 기반을 둔, 빠르고 명료하며, 접근 가능한 절차’. 이것이 바로 국제 인권단체와 인권법 전문가들이 천명한 <요그야카르타 원칙>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한국사회는 성별정정 등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해 당사자의 의사가 존중되지 못 했고, 엄격한 성별정정 기준 및 절차, 그리고 법원과 법관에 따라 달라지는 ‘비일관성’이 존재했습니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을 하지 못 하는 이유로 ‘법적 성별정정 절차가 복잡해서’라는 응답이 두번째로 높게 조사된 바 있습니다.

추모의 의미는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것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분들과 연대하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 시민들의 존엄을 위해서 성별정정 등 성별의 법적 인정에 대한 입법 보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동료 의원님들과 함께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법안의 주요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른 성별과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변경하는 것을 ‘성별의 법적 인정’이라고 정의하고, 모든 절차에 있어서 당사자의 인권 존중과 차별 금지를 천명했습니다.

또한 ‘성별의 법적 인정’을 신청하고자 하는 사람은 가정법원에 서면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성전환수술을 포함한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지 않도록 규정했습니다. 또한 심문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 가능성을 고려해 심문절차를 임의절차로 하며, 심문조서와 결정문 작성을 의무화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별의 법적 인정’의 신청과 동시 또는 심리 중에 개명허가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법무부장관으로 하여금 법 시행 이후 3년마다 국제인권규범 등을 고려하여 성별의 법적 인정 절차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에 개정 등의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에게 ‘성전환자의 성별정정과 관련한 요건, 절차, 방법 등’을 규정한 입법을 권고했습니다. 젠더 이분법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혐오와 차별에 고통받는 트랜스젠더 시민들을 위해 21대 국회가 해내야 할 일이 바로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롯해 원내 정당 모두가 더 이상 트랜스젠더 시민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이 법안의 논의에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합니다.


2. 박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안녕하세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있는 박한희입니다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오늘은 트랜스젠더추모의날입니다. 혐오와 차별로 우리 곁을 떠난 모은 이를 추모하고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변화를 이야기하는 이 날에. 뜻깊은 법안이 발의된 점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국에서 통일된 기준으로 법적 성별변경이 가능해진 것은 2006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결정을 하고 예규를 만들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요구하는 기준은 생식능력제거. 외부성기수술. 혼인 중이 아닐 것. 미성년자가 아닐 것등 지나치게 가혹했습니다. 이로 인해 법적 성별과 성별정체성의 불일치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고통받지만.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이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2006년 대법원 판례와 예규 제정 후 13년간 세계는 변했습니다. 2012년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20여개 넘는 국가와 지역에서 어떠한 요건도 없이 ‘자기결정’에 의해 성별변경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성별변경에 있어 외과수술을 요구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지난 10월 25일 최고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성별변경에 생식능력제거를 요구하는 것은 신체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 재생산권에 대한 침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11월 3일 한국정부 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성별변경에 있어 강제적인 요건들을 삭제할 것을 권고했습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번 법안 발의는 당연하지만 또 늦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국회의 시간입니다. 21대 국회 임기종료까지 남음 6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이번 성별인정법 외에도 차별금지법 군형법 추행죄 폐지안. 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법 등 성소수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수많은 법들이 계류되어 있습니다. 신속한 논의는 국회가 진정으로 모든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가치를 보여줄 것입니다. 

나답게 살 권리. 누구나 당연히 인정받는 기본권임에도 오랜 기간 트랜스젠더가 보장받지 못한 그 권리가. 이제는 정말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추모의 날을 맞아 우리 곁을 떠난 많은 동료들을 기억하고 애도합니다.


3. 이연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팀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팀 활동가이자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트랜스여성인 이연수라고 합니다.  

저는 2020년 7월에 ‘성 주체성 장애’ 정신과 진단을 받고 호르몬치료를 시작하여, 21년 8월에 성확정수술을 받고, 22년 3월에 성별정정을 신청하여 당해 9월에 법적으로 여성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다 끝냈기에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대단한게 아니라 그저 절박했을 뿐입니다. 트랜스젠더는 자신을 정체화한 이후부터는 매 순간이 투쟁입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학교,회사,병원,은행,관공서,호텔,화장실 등 가는 곳마다 온 세상이 남자와 여자로, 성별이분법으로 나눠져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별이분법은 바로 법적인 성별로 유지되고 있고, 또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는 성별정정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에 의해 강제로 지정받은 성별을 가지고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순간을 매번 마주해야 합니다. 저도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저는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가며 그렇게 서둘러 수술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물론 저도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대출빚에 허덕이고 있지만 저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성별정체성이 확고한 트랜스젠더라도 신체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모두가 성기수술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남성인 사람이 성별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성기수술이 필수요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서 대법원의 사무처리지침 예규와 판례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은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좋게 쉽게 허가받기도 하고, 요건을 갖췄음에도 황당하게 기각당하기도 하고, 입에 담지못할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싶을 뿐인데, 어째서 생전 얼굴도 모르던 판사 아저씨한테 왜 우리의 존재가 저당잡혀야 합니까? 성기와 상관없이, 어떤 의료적 조치를 하였는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싶습니다.  

성별인정법이 통과된다면 의료적 조치나 성기수술을 하지 않아도 성별정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죽을때까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트랜스젠더들이 그 증명의 압박으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됩니다.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 했을 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인 “그래서 수술은 하셨어요? 수술 하실거에요?” 라는 질문이 그 힘을 잃게 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서로의 성기를 서로 보여주고 확인받고 하지 않듯, 트랜스젠더도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는 성기를 바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11월 20일인 오늘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입니다.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며 혐오와 차별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다가 원하는 모습대로 죽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성별인정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트랜스젠더도 여러분과 동등한 사람이라면 이 법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합니다.


4. 닻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연대발언 요청이 왔을 때, 반성폭력 의제를 다루는 단체 활동가로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희에게 연대발언을 요청한 것은 아마,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이슈에 항상 ‘무분별한 성별정정’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말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별인정법이 정말로 여성의 안전을 위협합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화장실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공중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하는 수많은 사건들, 최근 신당역 여성화장실에서 벌어진 스토킹 살인사건까지. 화장실은 더이상 안전하지 않은, 불안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안전이 위협당하자 어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게 화살을 돌렸습니다. 성별인정법이 제정되면 트랜스젠더들이 여성의 공간에 ‘침범’하여 성폭력이 늘어날 거라고 말합니다. ‘가짜’ 트랜스젠더들이 안전한 여성공간을 침범하여 여성인 척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현실의 여성을 위협하는 것이 정말로 트랜스젠더의 존재입니까?

경찰청 범죄통계를 살펴봅시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강력범죄 중 성폭력 가해자의 96.7%는 남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성의 존재가 성폭력의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성폭력은 다른 폭력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권력을 쥔 사람이 할 수 있는 폭력입니다. 성폭력의 가해자 중 남성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성별불평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인정이 생식능력제거 수술 없이 인정되면 여성의 공간이 트랜스젠더에게 침범당해 성폭력이 증가한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여성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많아질 거라는 비이성적인 믿음 역시 틀렸습니다.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근본적 원인은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이 아니라 성차별이 공고한 남성중심적 한국 사회입니다. 성폭력은 결국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근본적인 성차별을 해결할 생각 없이 현존하는 여성의 불안과 공포를 해결하겠다며 전자발찌, 제시카법 같은 반쪽짜리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여성가족부 예산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삭감하는 정부 역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성별이분법을 고착화한다는 말도 다시 생각해봅시다. 왜 이들은 ‘전형적인’ 자기표현을 할까요? 현재 법원에서 특정 성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위 ‘정상적 남성, 정상적 여성’의 모습이어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식기능 제거 수술이 대표적이죠. 판사의 재량에 판단을 맡기고 있기 때문에 ‘남성성’에 해당하는 특징, ‘여성성’에 해당하는 모습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고착화된 성별 이미지가 트랜스젠더의 자기표현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입니다. 성별인정법의 제정은 신체적 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본인의 성별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물꼬를 터줄 것입니다. 

숏컷을 한 여성이 여자화장실에 들어갈 때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 소위 ‘여성적’이라고 인지되는 특징들을 일부러 드러낸다는 일화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부러 목소리를 높게 내거나, 괜히 가슴이 잘 보이게 하거나 하는 행동들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목소리가 가늘고 가슴이 잘 드러나나요? 특정 성별로 사람들에게 인지된다는 것은 이만큼 얄팍한 특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그 자체로 공고한 성별이분법을 무너뜨립니다. 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남성다운’, ‘여성다운’ 특성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성별인정법의 발의부터 제정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그 날까지,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1)

  • asdfewr
    2023-12-05

    참 살다살다 희한한 법안을 발의하네요. 성별을 구분하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혹하니 자신이 성별을 인지하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인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