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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가정의 달' 맞이 단호한 시선] 5월, '건강가정' 아닌 '새로운 유대'의 달
  •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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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맞이 단호한 시선]

5월, '건강가정' 아닌 '새로운 유대'의 달


5월 가정을 달을 맞이하여 지자체 정부와 기업에서는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가 한창이다. 가정은 여러 홍보물에서 화목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성애부부와 자녀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가족이 일상적인 위협과 폭력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매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되는 전체 상담 건수의 약 10% 정도가 친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임에도 친족성폭력은 가끔 뉴스에서 접하는 “비정상적인” 가정의 “비일상적”인 폭력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통념은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더 폭력을 드러내기 어렵게 한다. 정상 가족 중심주의가 공고한 사회에서 친족성폭력을 고발하는 피해자는 “평화로운 가정을 깨뜨린 존재”가 되고 가정 안에서 낙인과 2차 피해의 대상이 된다. 가족 구성원에게 성폭력 피해를 말했음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가족 행사에 가해자가 참여한다거나 선량한 가해자가 그럴 리 없다며 오히려 피해자가 의심받는 일은 흔하다. 이렇게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가정 내 폭력이 숨겨지며 ‘정상적인’ 가정은 유지된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가정을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양육‧보호‧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로 정의한다. 이처럼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혼인‧혈연‧입양을 기반으로 한 가정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친족성폭력은 더욱더 이야기되기 어렵다. 가령, 보호자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미성년자의 경우, 혼자서 통장이나 핸드폰을 개설할 수도, 집 계약을 맺을 수도 없다. 법적 성년이 되더라도 온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연락한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55.2%는 피해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상담을 한다. (2019년 상담통계) 공소시효가 이미 도과된 상담 사례도 57.9%나 된다. (2021년 상담통계)

그래서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나왔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은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하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매년 가을에는 상담소와 함께 광장에서 생존기념축제의 장을 열었다. 2023년 축제의 제목인 “좋지 아니한家: ‘정상가족’ 바깥의 우리들, 연결되자!”는 친족성폭력이 왜 드러나지 않는지, 친족성폭력 피해자로서 어려움은 무엇인지 워크숍과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도출한 구호다. 광장에서 생존자와 연대자들은 법 개정을 넘어 가부장적 ‘정상가족’이 가족 내 폭력을 은폐하고 이성애 핵가족 외 다른 형태의 가족을 배제하고 차별한다는 것을 고발했다. 생존자 주거권 보장을 말하며 혈연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복지와 제도가 짜여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친족성폭력은 일상 속 어디에나 일어난다는 구호는 그 자체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균열 내는 외침이다. 그리고 이 균열은 ‘정상가족’을 벗어났을 때 서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상상으로도 연결된다. 21대 국회에는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법안과 마찬가지로 가족구성권 3법이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그리고 5월 30일은 22대 국회 개원일이다.22대 국회에서는 친족성폭력 생존자에게 최소한의 법적 권리인 공소시효 폐지와 더불어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이와 함께 가족을 재사유하며 정치화하는 가정의 달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