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1일 제22차 회의에서 아동성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여성단체 등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며 목소리 높여왔던 ‘심신미약에 이르지 않은 음주는 감경 사유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잘못된 관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러나 왜 이것이 아동성폭력 범죄에만 국한되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성폭력 범죄의 양형을 판단할 때, 음주가 감경인자로 관례적으로 고려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폭력을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폭력 행위로 인식한다면 범인을 지목하고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여 일으킨 범죄에 대해서 가해자가 만취상태였다는 주장만을 가지고 간단히 감경 판단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폭행을 저지르고 재산상의 손실을 입히는 행동을 했다면, 그 행위를 두고 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성폭력은 폭력이라기 보다는 욕망과 관련한 행동이라는 잘못된 통념 때문에, 성폭력은 인권침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욕망에 따른 조금 난폭한 행동 정도로 관대하게 처리된다. 이런 관행이 이제껏 성폭력 가해자들이 뻔뻔하게 법망을 피해가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피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전전긍긍해야 하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성폭력 신고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해마다 사건만 터지면 처벌을 강화하는 갖가지 법안들이 만들어지지만 실제로 처벌받는 가해자는 별로 없는 사회. 이 사회는 결국 피해자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성폭력 예방이라는 사회의 기본적인 목적 달성은 여전히 요원할 뿐이다.
아동은 성인과 비교하였을 때 사회적 약자이므로 아동 대상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것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음주가 양형을 낮추어주는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피해자가 취약한 아동이기 때문이 아니다. ‘술-욕정-성’에 얽힌 잘못된 통념이 성폭력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게 하고, 결과적으로 가해자에게는 관대하고 피해자에게는 냉혹한 잘못된 관행을 낳기 때문에 음주감경 관행을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유발의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비난할 만한 소지가 있는지 없는지 찾기에 여념이 없는 이 사회에서, 음주감경으로 인한 피해에 성인 피해자가 더욱 취약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22차 회의가 아동성범죄 양형기준만을 검토하기 위해서 소집된 회의였다고 해도, 연령이나 유형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양형인자를 검토할 때에는 마땅히 아동 이외의 경우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맞다. 음주를 감경사유에서 배제해야 하는 취지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아동성폭력범죄에 한정된 음주감경배제 결정은 한참이나 모자란 것이다.
2009년 1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