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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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문]
성폭력, 비친고죄로 개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김OO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범죄를 근절하겠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전자발찌 소급적용, 사형집행 추진, 보호감호제 부활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추진되는 방안들은 개인의 인권을 크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위헌의 소지마저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들이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가의 실효성 여부도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사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생색내기용으로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간 정부와 정치권은 2007년 아동 성폭력 사건, 2009년 조△△ 사건, 2010년 김○○사건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성폭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생색내기용으로 여러 가지 법안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발의된 법안들은 그 자체로 여러 문제적인 소지를 갖고 있으며, 성폭력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정부와 정치권은 임기응변식 강력처벌책만을 내어놓을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폭력범죄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바로 성폭력의 비친고죄화입니다.
• 성폭력 범죄는 5대 강력범죄 중 하나임에도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어, ‘범죄’라는 인식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대형사건에는 관심이 집중되지만, 개별적․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 개인이 고소를 결심하느냐 여부에 맡겨져 무관심 속에 여전히 은폐, 암수화되어 있습니다.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친고죄의 목적은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의 개인적인 치부,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문제라는 인식을 심각히 확산해왔습니다. 성폭력 범죄자가 재범에 쉽게 다다르는 원인은 성폭력은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친고죄 규정은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잠재적 성폭력범죄자를 비호하고 잘못된 메시지를 줌으로써 성폭력 범죄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는 동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민들, 일반인의 인식 또한 이와 유사하여 ‘왜 유독 남들은 안하는 고소를 한 것이냐’ 며 피해자를 먼저 의심하고 비난하는 행태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만 성폭력 범죄는 일상적으로 예방, 견제될 수 있습니다.
• 성폭력 ‘친고죄’로 인한 고통을 성폭력피해자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극단적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 부과하는 형벌을 위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의 적용범위는 극히 협소하여 성폭력 예방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고소, 신고율은 7.1%(2007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불과합니다. 43.2%의 기소율(2008 범죄자 처분결과, 법무부)과 유죄판결되는 비율을 더하면 성폭력 범죄로 확정되는 경우는 전체 성폭력 발생 건수 중 매우 미미한 비율입니다.
직접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에 대해 의심하고 경계하는 문화는 수사, 재판 단계에서도 존속되며, 고소의 진정성-무고죄 의심, 이를 이용한 피의자 측의 합의종용으로 인하여 형사법상 구제과정을 중도 포기하는 피해자가 속출하게 합니다. 13세 미만, 친족성폭력 피해자 등의 경우 비친고죄, 14세-19세 피해자의 경우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지만 그 역시 친고죄 문화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다른 범죄피해자에 비해 훨씬 더 까다로운 의심에 놓이며, 이를 헤쳐나가야 하는 피해자는 도리어 형사법절차상 2차 피해를 겪게 됩니다.
성에 대한 왜곡되고 차별적인 문화로 인해 대대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은 친고죄 규정에 의해 그 편견이 불식되기보다 오히려 공식화되어 왔습니다. 이는 형사법체계가 성폭력 문제를 경감하고 예방하기보다는 피해자 개인에게 부담과 고통을 전가하는 꼴입니다.
• 성폭력, 지금이 비친고죄로 전환되어야 할 때입니다.
성폭력은 형법체계상 중한 범죄임에도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어 형법의 시스템 장애를 유발합니다. 친고죄 규정 때문에 형사사법체계는 성폭력범죄에 일관되게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게 됩니다. 성폭력의 불법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단지 피해자의 고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의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형사사법의 중대한 결함임에 틀림없습니다.
성폭력은 타인의 신체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범죄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확정할 수 있는 친고죄의 개정은 매번 시기상조론에 좌절되면서, 극소수의 재범자에게 극단적인 형을 부과하는 방안만이 시행되는 것은 실질적 예방과 인식개선을 통한 성폭력 발생원인 차단이라는 목표를 좌시하는 꼴입니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기대가 더 성숙해지고 있는 이 때, 성폭력 비친고죄화는 최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대책입니다.
오늘 열릴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성폭력 고소율 7.1%의 장벽을 극복할 보다 근본적인 대책안이 반드시 상정되어, 본회의에서 적극 논의․통과되기를 촉구합니다.
2010. 3.23
국회의원 곽정숙(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