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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화제의 행사, 권김현영 박사논문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연구> 발표회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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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화제의 행사, 권김현영 박사논문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연구> 발표회


신청폼이 열리고 24시간만에 마감된 화제의 발표회를 아시나요? 바로 권김현영 연구활동가의 박사학위청구논문 발표회입니다. 너무 빨리 마감되어 대기가 가능한지 전화도 속출했었습니다. ‘의자를 안 주셔도 된다. 바닥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겠다’는 문의도 있었다는 소문… 권김현영님은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연구>를 쓰고, 연구결과를 발표한다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처음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셨다고 해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출신’이라는 점도 밝히시면서요 (찡긋)



(왼쪽에 권김현영님이 서 있고 참여자들이 앉아 발표를 듣고 있다. 벽에는 두 개의 화면이 켜져 있다. 하나는 문자통역 화면이고, 하나는 발표자료 화면이다. 문자통역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발표 내용이 쓰여 있다. “그리고 2024년에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연구를 박사 학위 청구 논문으로 완성했습니다. 신난다!”)


권김현영님은 한국 반성폭력운동을 피해자 대리인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관심이 부재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대리인’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반성폭력 운동이 ‘피해 당사자 운동’이어야 한다는 지향 때문이라고도 분석하셨습니다. 한국 반성폭력 운동이 처음 시작된 1980년대 이후, 성폭력을 처벌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피해자 권리를 보장하는 지원 정책이 생기는 등 운동은 법제화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도화된 성폭력 피해자 권리 담론에서 어떻게 여성주의 운동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운동 내외부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지요. 권김현영님도 그것을 짚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피해 담론이 폭증하는 상황 등이 현재 성폭력 담론이 마주하고 있는 교착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논문은 운동론의 차원에서 피해자 대리인을 다시 정의하고, 그 역할과 의미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대리인’이라고 하면 변호사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거예요. 실제로 성폭력 사건을 법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변호사는 피해자의 법적 대리인이 됩니다. 하지만 반성폭력운동에서 ‘피해자 대리인’이라고 하는 것은 사법제도의 틀을 벗어나 더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이 연구가 만연한 법/제도화의 논리 속에서 회자되는 ‘대리인’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운동의 차원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운동의 역사를 1980년대부터 살피는 분석, 그리고 피해자 대리인을 인터뷰하며 그들이(혹은 우리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질문하는 방식이 모두 흥미로웠습니다. 



(왼쪽에 권김현영님이 서 있고 참여자들이 앉아 발표를 듣고 있다. 벽에는 두 개의 화면이 켜져 있다. 하나는 문자통역 화면이고, 하나는 발표자료 화면이다. 발표자료 화면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왜 그 일을 합니까? 라는 질문”)


논문의 저자이자 발표자로서, 인터뷰에 참여한 피해자 대리인들에게 ‘왜 그 일을 했는지’ 질문했더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단 얘기도 들려주셨어요. 발표를 들으며 저도 제게 질문해보았습니다. ‘나는 왜 성폭력 피해자를 대리하는 일을 했지? 그 일을 왜 지금도 하고 있지?’ 이유가 딱히 없긴 하더라구요. 그냥, 그 때 제게 주어졌던 일이었고, 제가 목격하고 연루되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했습니다. 아마 이 후기를 읽는 많은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발표장소를 측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회자가 서서 마이크를 쥐고 있다. 참여자들이 경청하고 있다.)


논문의 서론과 결론에 대한 발표가 80분가량 이어졌고, 이후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습니다. 참여 신청할 때 사전질문해주신 분도 계셨고요, 손을 들고 질문하는 분, 발표회를 위해 마련된 오픈카톡방에 질문을 적어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질문 몇 가지를 여기 옮겨보겠습니다.


논문에서 정의한 ‘후사건적 주체’라는 개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적 질문과, ‘성폭력이 페미니스트 사건으로 사건화되는데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도 발표를 들으며 ‘이 논문에서 정의하는 ‘사건’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들어 이 질문이 반가웠습니다. 발표를 통해 나눠주신 설명 덕분에 궁금증이 대부분 해소되긴 했지만요. 권김현영님은 어떤 성폭력 사건이 페미니스트 사건으로서 ‘사건화’되는 과정을 계기로 하여 한국 반성폭력 운동이 전개되었다고 밝힙니다. 이때 ‘사건화’란, 이전에 자명했던 성폭력에 대한 인과 관계의 틀이 깨지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권김현영, 2024:24-25) 발표회에서는 그 예시 중 하나로 미투운동을 들어주셨어요. 그동안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해당 여성이 꽃뱀이거나, 승진을 하지 못해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했을 것이다’라고 이해되었습니다. 이런 편견은 자명한 인과관계로 생각되었죠. 그만큼 피해를 말하는 여성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피해를 말할 수 없는 분위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미투운동은 직장에서 이미 일정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여성들이, 얻을 것이 없음에도 자신의 피해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런 자명성이 깨집니다. 당연한 것이 깨지고 사회는 성폭력에 대해 다시 질문할 수 있어지는 것이지요. 피해자 대리인은 인과 관계의 틀이 깨진 후, 피해자와 함께 성폭력을 사회적 사건으로 구성하고 역할하는 사람들입니다(권김현영, 2024:27). 성폭력은 가해자의 행위를 중심으로 규정되지만, 후사건적 주체들에 의해 페미니스트 사건이 됩니다. ‘후사건적 주체’나 ‘사건’에 대한 논의는 반성폭력 운동의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도 새로운 전환을 마련하는 설명으로 느껴졌습니다. 사건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다룰 것인지, 정체성 정치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페미니스트 무브먼트로서 성폭력 지원을  설명할 수 있는 해석틀로요. 


(사회를 맡은 오매 활동가가 마이크를 쥔 채 활짝 웃고 있다.)


(마이크를 든 권김현영 발표자가 미소를 짓고 있다.)


질문이 끝나고, 여성학 박사 선배이자 반성폭력 운동의 주체로서 함께 해왔던 전희경님과 이미경님의 축하 발언도 있었답니다. 권김현영님이 논문 쓰기로 고뇌할 때, 전희경님은 ‘괜찮아, 박사논문 아무도 안 본다’라고 (따뜻한 거짓말인… 왜냐면 그 자리에서만도 ‘전희경 선생님 박사논문 엄청 읽었는데!’ 라고 수근거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격려하셨다고 합니다. 이미경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권김현영이란 사람을 스카웃했던 역사를 가진 인물이자, 성폭력 2차피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선배로서 축하의 마음을 한껏 담아 발언해주셨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연구' 현수막 아래에서 이미경님이 마이크를 들고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다.)


저녁 7시20분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진 이 날의 발표회는 치열하면서도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후기에는 논문이나 발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지는 않았어요. (제가 발표를 잘 이해했는지 좀 불안하기도 하고, 아직 논문을 덜 읽었기 때문입니다 ^.^...) 이 논문은 조만간 다른 형태의 발표로, 단행본으로도 나올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모두 그때를 기다리며…! 



(‘논문 발표회,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 연구’ 현수막 아래 열 네 명의 사람들이  모여 찍은 단체사진이다.)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수수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