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법안 발의 환영 <발의를 넘어, 통과로!> 토론회 준비 기획단 첫 모임!
10월 15일 화요일 저녁 7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수수, 동은, 유랑, 단단, 성내천, 명, 영서, 푸른나비 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어요. 몇 번 만난 사람들도 있고, 아주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처음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공간의 약속>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 나이도 하는 일도 정체성도 다른 사람들이란 것도 새삼 깨달았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란 공통점이요.
(사진: 기획단 모임이 시작되긴 전 동그랗게 배치한 책상 모습이다)
모임은 자기소개로 시작되었어요.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는 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내 이름은 무엇인지. “지연된 정의를 만드는 시작”이라서, “생존자의 회복의 출발점”이라서, “생존자의 삶을 위해”, “친족성폭력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권력형 폭력”이기 때문에,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기 때문에, “생존자의 권리와 피해보상”을 위해… 다양한 이유가 나왔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키워드 토크’였습니다. 친족성폭력은 가족 관계에서 일어난 성폭력이며,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는 법제도의 영역이라 피해자의 눈으로 법과 제도를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1) 정상가족이데올로기, 2) 법적 해결의 의미, 3) 일상과 회복 이라는 세 가지 주제와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연결짓는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 중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얘기를 소개해드립니다.
경찰에게 ‘당신이 신고했기 때문에 가해자가 처벌받는게 아니라, 그 폭력은 우리 사회가 벌을 줘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처벌하는 거다’라는 말을 들은 생존자의 말하기가 있었습니다. 친고죄 폐지에 대한 설명이었다는데요. 그때 ‘아! 친족성폭력을 처벌하기로 온 사회가 합의했구나!’ 란 생각 때문에 마음의 큰 응어리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하셨어요. 같은 의미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란 온 사회가 피해자의 친족성폭력 말하기를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합의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친족성폭력은 결국 가족 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이기 때문이죠.
친족성폭력에 있어 피해자의 말하기를 더 기다려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는 ‘그것이 내부고발이기 때문’이라고 짚어주셨어요. 직장에서도 내부고발자들이 나오기 쉽지 않은데, 가족의 내부고발은 더욱 어렵다고요. 피해자들은 딸이든, 여동생이든, 손녀였건, 처제였든 모두 가족 내의 최약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해자들은 이 권력관계를 이용한다는 점도 다시 짚어졌어요. 또 가족이 경제적 공동체로 기능한다는 점도 함께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스스로의 자원이 생길 때까지 사회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의 의미라는 점을 새로 새겨보았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법 개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반박할 것인지, 그 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어졌어요. 법이 지키고자 하는 ‘안정성’과 ‘형평성’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회의원들에게 되물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또 ‘가족’이라는 것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자는 얘기도 많았어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에 너무 빠져서 가족 내에서 폭력을 당하던 개인을 간과하는 것이란 설명도 이어졌구요. 국회의원들이 뭘 알까, 우리가 더 잘 안다! 더 쉬운 말로 전달해주자는 다짐들이 있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친족성폭력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의도 나왔습니다. 최근에 부모가 자녀를 씻기거나 만지는 등의 돌봄 행위를 할 때 어떻게 경계를 지킬지 교육하는 일도 있지만, 친족성폭력 대응에 대한 학교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더욱 고립되고, 말하기 어려워지고, 피해가 지속되는 것이란 진단도 했습니다. 또 친족성폭력 피해 이후 심리상담에 들인 돈이 어마어마한데, 여기에 대한 구상권 청구 방안이 있을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았답니다.
결국 법이 바뀌면 관계도 바뀐다는 얘기와 함께, 다음 시간에는 국회가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어떤 의견을 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근거를 확인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치열한 논의 끝에 <키워드 토크> 시간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사진: 2004년, 2006년, 2008년의 친족성폭력 관련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발행하거나 내용 생산에 기여한 자료들이 놓여있다.)
이후에는 <우리가 원하는 정책과 법은 어떻게 만들고 실현시키는걸까?>를 주제로 한 정보나눔 시간이 있었어요. 기획단을 연 상담소에서 미리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얘기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혹시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통과되는지, 그 과정을 잘 알고 계시나요? 기획단에서는 ‘저는 법은 법관이 만드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란 얘기가 나왔는데요. 사실 이 글을 적는 저도 비슷했습니다. 아니 그렇잖아요, 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사실 얼마나 많겠어요…. 단어도 어렵지, 왜 어떤 건 7년형이고, 어떤 건 10년형인지, 내가 그걸 알기 위해 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지…(이것도 기획단 모임에서 나왔던 말로 기억해요 ㅎㅎ)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일! 필요에 의해 찬찬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겠죠. 법의 제출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관할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본회의를 거친 후 공포되기 까지 무슨 일이 있는지를 여러 예시를 통해 살펴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선거, 국민청원, 입법예고 중 의견개진, 여러가지 캠페인 등.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의 캠페인과 집회, 최근 혼인평등법 소송 등을 보면서 힘과 힌트를 얻었습니다. 국회와 법이 공고하게 버티고 서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할 때, 어떤 역할로 어떻게 압박하면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해서요.
마지막으로는 소감을 나누며 다음 모임을 기약했습니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가족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국가가 가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받는 압박과 억눌림, 피해가 지속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엉.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누구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것인지 같이 얘기해보자는 다짐도 있었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 법적 해결의 의미, 일상과 회복에 대한 각자의 글을 써서 모임에서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1대, 22대 국회 상임위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어떻게 검토하고 의견을 냈는지 같이 살펴보기로 했어요. 우리의 주장에 힘을 보태기 위해 반대 주장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그래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에 ‘우려’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반대의견을 내는 입장들의 근거도 함께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은 10월29일, 화요일 저녁에 시작됩니다. 두근두근이에요.
이 후기는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수수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