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이 끝난 후 활동가들, 신청인들, 대리인단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제공: 모두의 결혼)
지난 10월 10일, 한국에서 혼인평등소송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당일 유튜브 생중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와서, 소식을 접하신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당일 기자회견은 한국의 동성혼 법제화 실현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모두의결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법률센터의 공동주최로 개최되었고, 운동을 함께하는 활동가들과 소송의 신청인들(당사자들), 신청인들의 대리인단을 맡은 13명의 변호사가 참석하였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근변호사인 저(도경)도 대리인단의 구성원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혼인평등소송"은 혼인신고를 하였으나 두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불수리처분'을 받은 동성부부 11쌍이 이에 대해 불복하는 사건으로, 서울가정법원, 서울남부·동부·북부·서부지법과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 등 총 6개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소송은 한국에서 동성부부에게도 법적으로 혼인할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입니다. 기자회견에서 당사자들은 소송에 임하는 각자의 소감을 밝히며, 동성부부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사실상 부부로 살고 있음에도 법적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한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 되고 난 후에는 어떤 삶을 기대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과 동성혼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결혼제도는 많은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특히 가부장제 아래 오랫동안 불평등하게 유지되어 오던 가족 내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어왔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그러한 운동을 꾸준히 함께 해 왔습니다. 여러 노력들이 모여, '호주제, 부성승계강제주의' 등 그 당시에는 아직 폐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여겨졌던 불평등한 가족법 내의 제도들이 사법부의 판단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위헌으로 선언되고 개정되어 왔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 내에는 여러 차별들이 존재하고, 공고한 이성애 가족 중심주의가 친족성폭력을 포함하여 가족 내 폭력 문제를 더욱 더 드러내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관련 행사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운동, 전략 찾기 연속 간담회 2차 '이상한 정상가족'을 넘어 새로운 시민적 유대 상상하기> 후기 보러가기: https://www.sisters.or.kr/activity/law/6904) 이런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동성혼 법제화는 공고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일으키고 우리 가족법에 남아 있는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하여 보다 평등한 '가족'을 만들 수 있는 큰 변화가 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와 너, 우리 안의 모든 사람들이 존중받고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함께 응원해주시면 더 없이 기쁠것 같아요.
소송의 의미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식지인 나눔터 다음호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두근두근)! 기자회견 후기는 당일 참석자들의 발언 일부를 공유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발언 중인 신청인 손문숙님과 경청 중인 다른 참석자들 (제공: 모두의 결혼)
“지아와 저는 2년 전 마포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어짜피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혼인신고를 했던 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마포구청도, 서울시도, 대한민국 정부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이 소송에 원고로 참여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보통의 시민으로서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내가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가족으로 이미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손문숙 (신청인)
“저는 옆에 있는 김찬영과 함께 지난 10년간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처럼 일터에서 일상을 보낸 뒤, 집에서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차려먹고, TV를 보며 ‘오늘 별일 없었어?’라는 대화를 나누고, 반려견을 돌보는 게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기쁨이자 원동력입니다. 평범한 부부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법 앞에서는 언젠가부터 한없이 작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함께 살면서도 서류상에나, 같이 살 집을 구할 때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유산 문제를 상의하려고 해도 우리는 가족이 아닌, 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꾸리는 삶의 모습에서 절반으로만 비칠 뿐이었습니다. (...) 누군가 제게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제가 결혼을 평등하게 인정받고 싶은 이유 역시 누구나 그렇듯 ‘가족’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지금의 가족이 가장 자연스럽고 소중합니다. - 정규환 (신청인)
“동성부부들이 결혼을 원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삶을 나누며 가족으로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결혼이 보장하는 보호와 존중, 존엄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습니다. 성소수자 시민들이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이곳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존엄의 문제이자 ‘당장의 시급한 먹고 사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 성소수자들은 그동안 이 존엄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이어왔으며, 이번 소송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러분의 이웃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동성부부들이 동등한 보호와 존중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 소송의 원고로 나섰습니다. 이 여정에 동료 시민 여러분들도 따뜻한 지지와 연대를 위한 대화로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호림 (모두의결혼 활동가)
이 글은 상근변호사 도경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