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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웃음팡 눈물팡 연대팡 다큐멘터리 <영웅서사> 상영회
  • 2025-12-31
  • 96

12월 셋째주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마지막 행사, 12월 18일(목) 저녁 7시 한국성폭력상담소 B1 이안젤라홀에서는 상담소와 오랜 연을 맺어온 디지털성폭력 피해생존자님과 연대자 두 분의 2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웅서사> 상영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영웅서사> 포스터 이미지

이 영화는 사진작가인 가해자의 디지털성폭력을 막고자 싸움의 길을 선택한 디지털성폭력피해자와 든든한 두 분의 연대자가 보낸 2년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두렵지만 끝까지 싸워보겠다고 다짐한 피해자의 용기와 가장 가까이에서 피해자의 일상을 함께한 두 친구의 사랑이 90분 내내 마음 따뜻하게 이어지는 영화입니다. 담당자로서 미리 볼 기회를 얻었을 때 세 분의 우정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이 영화 얼른 영화제 가야 한다고 활동가들에게 소문내고 다니곤 했답니다. 아름다운 포스터와 소개문구, 그리고 어느 멋진 분의 홍보 덕에 순식간에 참여신청이 마감되었어요. 저마다의 기대와 궁금증을 품고 영화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여럿이서, 다같이 봐야 시너지를 발휘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웅서사>가 그랬어요. 세 분이 만담을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다같이 깔깔 웃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깔깔 웃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안전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감각을 공유하며 울고 웃다보니 러닝타임 9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러닝타임을 마치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유랑 활동가가 사회를 맡아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웃음이 넘쳤던 시간이었지만 막상 질문 타임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현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답니다. 영화가 주는 울림이 모두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훌쩍이는 사람들에게 휴지를 건네주는 다정한 마음을 여러분께도 공유하고자, 인상깊었던 질문과 소감을 남겨봅니다.


로그라인에 '2년 간의 투쟁기이자, 그냥 함께 있어 재밌었던 시간들'이라는 표현이 있었잖아요. 2년간의 시간이 어땠을까? 투쟁의 시간이 재미있을 수가 있나? 그게 궁금해서 상영회를 신청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니 너무 알겠는 거예요.

저도 제 친구의 사건에 연대자로 조력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이 영화를 보며 그 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Q. 힘든 순간을 버텨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 촬영본 중 영화에 담기지 못한 많은 부분이 가해자를 향한 '농담'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셋이서 이 힘듦을 농담으로 승화하며 보낸 시간이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Q. 제가 지원하는 피해자분들이 "괜찮아지는 날이 올까요?" 라는 질문을 하시는데, 제 안에는 모델이 없더라고요. 영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저도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괜찮아지는 날은 반드시 옵니다. 물론 피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싸우기도 하고 일상을 보내다 보면 괜찮아지는 순간은 반드시 와요.


올해부터 피해자 지원 업무를 시작하면서, '피해자의 일상과 리더십'에 대한 모델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위에서 어떤 지원자 분이 건넨 질문처럼 다른 피해자는 어떻게 살아요? 라는 질문에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너무 한정적이더라고요. 싸우는 피해자의 모습, 무기력하고 힘들어하는 피해자의 모습에 대한 상상은 너무 쉬운 반면 평범하게, 내 곁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피해자,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주체로서의 피해자에 대한 상은 정말 찾기 힘들더라고요. (그 점에서 윤가은 감독님의 <세계의 주인>도 너무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다정하고 상냥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세 분의 일상과 대응기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다 나란히 앉아 장난치는 모습, 경찰의 압수수색을 축하하며 치킨을 뜯는 모습, 언론 인터뷰 방영을 앞두고 긴장하는 모습, 대응의 방향을 상의하고 실행하는 모습, 서로 끌어안고 우는 모습... 

그 점에서 일부러 일상적인 장면을 많이 담아내려 노력했다는 감독님의 말이 유독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힘을 엿볼 수 있어 너무나 반갑고 감사했어요. 어느 활동가는 "피해자의 힘,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후기를 공유해주기도 했습니다.

피해자와 연대자 두 분, 상담소의 담당 활동가 외에도 피해자의 편에 서서 법률대리인을 맡아준 이근옥, 원민경 변호사님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두 분 모두 개인적으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신데도 시간을 쪼개어 상영회에 와 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려봅니다.

상담소 상영회를 마치고 각자의 공간에서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다는 요청도 쏟아졌답니다. 벌써 상영회 일정이 잡혔다는 소식도 속속들이 들리고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영웅서사>로 열심히 검색해주기를 바라며, 이번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후기는 여성주의상담팀 닻별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