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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한국성폭력상담소 × '세계의 주인' 특별상영 & GV
  • 2025-12-31
  • 165

지난 12월 15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보는 ‘세계의 주인’ 특별상영과 GV가 진행됐습니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연결된 이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자리가 마련되었어요. 



성폭력상담소 사전 부스를 살펴보는 관객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먼저 온 관객분들을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작은 부스를 열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된 가족 내 성폭력 대응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식지나 각종 굿즈, 생존자들의 수기집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윤가은 월드를 이해하는 또다른 방법 감독님의 에세이 「호호호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무려 사인본을 후원 굿즈로 안내하였는데 역시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완판되었답니다:)  



윤가은 감독님의 훈훈한 후원 현장.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극장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개봉한 지 거의 두달이 지난 시점이었고, 월요일 저녁 상영이었는데도 빈 좌석이 거의 없이 꽉꽉 들어찼어요. 좋은 영화를 함께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사람들의 설렘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기대하던 GV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제안으로 마련된 자리답게 반성폭력 활동가와 생존자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관객들의 자리로부터 나왔습니다. GV 구성도 아주 알찼어요. 윤가은 감독님, 자문을 통해 엔딩크레딧 ‘Thanks to’ 첫줄에 이름을 올린 영광의 주인공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원장님이 게스트로 함께해주셨습니다. 모더레이터는「 글쓰기의 최전선」등 부지런한 저서 활동과 더불어, 일하는 청소년이나 미등록 이주 아동 같은 사회에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기록해온 르포작업자 은유작가님이 맡아주셨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는 2013년부터 피해생존자들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인연을 이어와,  이번 GV에 초대를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모더레이터 은유 작가님.


GV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은유작가님이 나눠준 감상평이 깊게 인상에 남았어요. 영화의 여운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해석을 멋진 얻은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기본적으로 고통에 대한 해석 투쟁의 영화로 봤어요. 우리가 어떤 고통을, 힘든 일을 겪잖아요. 근데 어떤 고통을 겪을 때 보통은 해석된 고통을 겪잖아요.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말이 먼저 들어와 있고 그럼 그 들어와 있는 언어로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이라면 적어도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말은 할 수 없지 않을까. 지우기 힘든 말 하나를 지워준, 강력한 가부장제 언어 하나를 이단옆차기로 날려버린 너무나 멋진 영화였다” 


본격적인 GV의 첫 질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문과 준비기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세계의 주인’을 준비하시면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자문에 요청하시기도 했고, 영화에 녹아있는 내용들이 감독님의 방향성안에서 반성폭력 운동의 담론과 고민을 충실하게 담고 있어 ‘도대체 어디까지 자료조사를 하신거지?’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게스트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원장님


조은희 원장님 : “ 당시 자문을 할 때는 시나리오를 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제가 볼때는 감독님이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싶어서 오신 것 같았어요. 저희는 그래서 피해 생존자 열림터 생활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얘기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에 특히 친족성폭력 피해자일 경우에는 가족들이 특히 엄마도 피해 생존자의 지지자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도 많은 상황이라서 피해 생존자들이 굉장히 외롭고 고군분투하면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열림터에서 퇴소를 하거나 생존자로 살아가면서 친족성폭력 피해자일 경우에는 특히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얘기를 주로 말씀 드린 것 같아요. 정말 두서없이 말씀드렸는데 챙겨가는 거는 사실은 감독님의 역량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자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는, 감독님 자문 요청 이메일이 왔을때 술렁거렸던 활동가들과 흡사 팬미팅이었던 첫 미팅자리예요.  메일이 온 순간부터 활동가들이 저를 엄청 재촉했어요. 빨리 답장드리라고. 마치 지금 답장 안드리면 감독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는 것 처럼. 그래서 날짜를 정하는 메일에 제가 미리 얘기를 했어요. ‘감독님 저희 활동가들이 전부 만나고 싶어 하니까 자문을 받으러 오시게 되면 활동가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그렇게 정말 팬미팅을 가졌습니다. 활동가들 다 사인받을 거 준비하고, 막 설레하고.”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님


윤가은 감독님 : “제가 이 이야기의 정체가 뭔지 모르는 채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냈고요. 성폭력을 이야기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이제 죽비로 맞듯이 대면을 한 다음에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성폭력이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폭력인지 그리고 성폭력 생존자들이 겪은 여러가지 사례들, 그리고 그 이후에 트라우마에 대한 여러가지 논의들, 회복에 관한 과정들 관련한 연구서나 책, 다큐멘터리나 예술작품, 생존자들의 수기를 전방위로 읽고 쓰다가 다시 엎는 과정이 있었어요. 새로운 것을 읽고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이게 아닌 거예요. 이게 진실이 아닌 거죠. 그래서 다시 쓰고 다시 쓰고 하는 기간이 제법 길었는데 그 가운데서 늘 제가 이런 이야기구나 그러니까 이것이 좀 더 진실에 가깝나라고 느꼈던 책들이 늘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발간한 혹은 기획한 자료인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야기를 어떤 구조로 해야 될지에 대한 마음을 잡지 못하는 동안은 상담소 문을 못 두드렸어요. 이건 저의 한계일 수도 있는데 저는 자료들을 많이 읽다 보면은 그 안에 잠식돼서 못 쓰게 되더라고요. 그 안에 너무 많은 진실이 있어서 진실이 통합이 안되고 특히 성폭력은 그러하고. 그 기간동안 그래서 용기를 내서 막 달리다가 완전히 버렸다가를 반복했어요. 그래서 이제 이야기를 잡는 데까지 시간을 옴팡 쓰고 이제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라고 정했을 때는 진실을 담아야 하지만 가야할 방향을 담는게 저한테도 목표가 됐다고 할까요? 적어도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영화로 제가 길러낸 어떤 진실은 담되 조금 더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가는게 맞지 않을까. 어쨌든 어떤 종류의 기적이나 환타지를 영화가 담고 있다는, 작가로서의 저의 생각인거죠. 그래서 그 정도로 방향을 잡은 다음에 시나리오를 쓰고 그 다음에도 못 갔어요. 이게 또 펀딩이 안돼 투자가 안되면 이제 영화를 못 만드니까 거기서 계속 맴맴 돌다가 이제 드디어 극적으로 투자를 받게 되는 시점에서 무조건 만들게 된다고 생각했을 때 찾아가서 이런 기획안을 이제 보여드렸고 질문을 굉장히 많이 했었죠.”

 

이 날 자리에서 또하나 중요하게 다뤄졌던 것은 성폭력을 다루는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방법이었어요. ’세계의 주인’ 개봉 전 감독님께서 기자들에게 손편지를 보내 ‘중심 인물과 줄거리에 대한 핵심 정보를 노출하지 않은 채 관람할 수 있도록’, 그리고 ‘주인이 과거에 겪은 일을 유추할 만한 언급을 가능한 한 감춰 달라’고 요청한것이 알려졌습니다. 이 부탁에 기자들은 물론 많은 관객들도 일종의 ‘스포일러 방지’에 적극 동참했었지요. 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성폭력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트리거 워닝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도 “성폭력을 다루는 영화는 관객과 어떻게 만나는 것이 적절할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앞에 두고 여러번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조은희 원장님은 이날 자리에서 이 논쟁에 대해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트리거 워닝의 여부만이 중요한 문제일까? 질문하면서 이 영화에서 무엇이 불편했는지, 구체적으로 더 분명히 말해지면 어떨까 제안하셨습니다. 단순히 트리거워닝 여부의 문제로 이 논의가 협소해지면 앞으로 성폭력을 다루는 이야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말해질 수 있을지 논의가 진전되기 어려운 점을 짚어주셨어요. 영화를 보고 어떤 종류의 힘듦, 상처를 느꼈다면 그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성폭력이 여전히 말하기 어렵고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압력이 강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언어화해야할지 몰라 제대로된 해석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뤄보아야 할지 더 질문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의견 나눠주셨습니다. 

 

윤가은 감독님은 언론 시사회라는 시스템, 이 영화가 외부에 공개되는 첫 자리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무척 고민하면서 손편지가 쓰여진 상황을 들려주었습니다.   


“성폭력생존자가 보고 상처받는 영화가 되는 것이 제가 가장 바라지 않는 결과였어요. 제가 언론시사회에 나눠드렸던 쪽지가 무스포 홍보로 이야기가 되는데, 사실 그 쪽지는 홍보의 반대편에서 읍소하는 취지에 가까웠어요. 그 쪽지는 기자님들께 영화를 소개하는 첫 자리인 언론시사회 시스템 안에서 부득이하게 배부했는데요.


이 이야기는 반으로 딱 접혀서 주인이가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몰라라는 뉘앙스를 주다가 그것이 정확한 정보에 의해 밝혀지는게 중반부에 있고 그 뒤에는 주인이라는 친구가 혹시 앞에서 여러분들이 보던 것과 다르게 보이나요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구조로 제가 이야기를 짠건데요. 또 말씀하셨듯이 주인이 스스로가 성폭력생존자라는 것이 내 전체가 아니고 일부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상황에서 부득이하게 기사라는 것은 헤드라인이 걸리고 헤드라인에 이 영화는 그럼 어떻게 소개될 것인가를 우리가 다방면으로 고민했을 때 성폭력 영화, 성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를 다룬 영화 이렇게 밖에는 소개될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랬을 때 이 영화에 이미 선입견을 가지도록 소개하는것밖에 안돼서. 어떻게 보면 제 안에 그 단어가 가지는 선입견에 대한 엄청난 공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그런 부탁을 드리면 안되는데 제발 아무것도 쓰지 말고 영화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이런 '무례한' 편지를 쓰느라 오랫동안 쓰고 고쳤어요. 개봉 이후에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이것이 저의 한계라는 것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영화로, 길어낸 진실은 담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는 게 목표가 되었어요.” 


‘세계’를 담아내는 이야기를 나누는 만큼, 무대 위 3명의 대화가 너무 흥미로운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한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지는 GV였습니다. 그럼에도 관객과의 대화인만큼 질문 시간에도 다양한 의견과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친족성폭력 생존자분중 한 분은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샘나고 질투나고 화가 났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그런 엄마가 없었고, 그런 친구도 없었고, 그런 선생님도 없었고, 그런 동생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시간 가부장제 속에서 순종해야 했어서 그런지 억울함이 큰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를 애쓰고 힘들게 만들어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다. 이 영화가 출발선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저는 반성폭력 활동가로서 영화 속 법정의 한 장면처럼 ‘어떤 흠결도 없는 피해자’만을 골라내겠다고 몰아세우며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퍽퍽한 현실을 분노하면서도 더 가깝게 느끼곤 하는데요. 주인이를 품어내는 세계, 주인이가 나아가는 세계는 무엇이어야할까? 골똘히, 또 벅차오르며 상상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힘과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 기쁜 날이었습니다.    


이 후기는 성문화운동팀 동은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