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인화학교 사건에 따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특례법’) 개정 법률
시행에 대한 입장
‘성폭력 특례법’ 개정 법률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수사과정과 재판에서 장애인 특수성과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
지난 10월 28일 국회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 법률이 통과되었다. 본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존 장애인준강간죄 조항을 강간, 준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으로 세분화하여 처벌하도록 하였고, 법정형을 강화하였으며, 장애여성 및 만13세 미만 여성에 대한 강간, 준강간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였다. 또한 장애인 시설의 운영자 혹은 종사자의 성폭력범죄에 대해 형을 가중하는 조항도 신설하였다. 이와 더불어 6조 5항의 위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비친고죄로 전환한 점은 이번 개정 법률의 가장 큰 성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법 개정이 과연 성폭력 피해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가에 대한 질문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성폭력 특례법 6조 개정과정은 법 개정의 내용이 담고 있는 법 해석상의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검토 과정을 생략하여, 여론무마용 근시안적 임시방편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적법한 법 개정 절차, 장애인 특수성을 고려한 법 해석 그리고 수사과정 상의 피해자 인권 보장을 요구한다.
하나, 법 실효성 검토 및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국회의 법 개정 과정에 유감을 표한다.
국회는 이번 법 개정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개최하는 공청회조차 없이 법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영화 <도가니> 개봉 이후 다시 이슈가 된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 해소에는 성공했지만, 실질적으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정당한 처벌을 가능하게 하도록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을 거쳤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법 개정 과정은 실효성 있는 법 개정의 노력보다 여론무마용 전시행정의 일환으로 그칠 우려를 안고 있으며, 앞으로의 법 적용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예상 가능케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정부는 신중하게 법 개정 절차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둘, 새 개정안에 대한 법 해석은 그 동안 항거불능 조항의 협소한 해석에서 벗어난 2007년 7월 27일 대법원 판결과 같은 장애인의 특수성과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 법 개정 중 ‘항거불능’ 문구 삭제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개개인의 맥락을 고려한 넓은 해석에 대한 바람을 담은 요구를 국회가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애가 원인이 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성폭력 처벌 규정을 삭제하면서, 개정법 6조 4항에서 ‘장애인에 대하여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간음과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항거불능’ 삭제에 관련한 해석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따라서 새 개정안은 성폭력 피해 장애인의 특수성과 인권을 고려한 적합한 법 해석이 돼야 한다.
셋, 성폭력 피해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높은 형량 도입의 취지를 무시하고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개정된 법률에 따라 엄격한 법리적 판단 기준을 적용하여 수사재판기관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법원과 검찰은 유죄 확정 시, 중형에 대한 부담을 피하기 위해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피해자 진술을 요구하거나 비장애인 중심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등의 부당한 성폭력 범죄 판단 기준을 피해자에게 적용하는 과오를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개정된 성폭력 특례법 6조의 수사재판절차상 법 적용 과정을 더욱 철저히 지켜보며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인권 보장을 위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2011. 11. 17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장애여성공감,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