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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없는 세상 만들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정치권이 되길 바란다

 

 

19대 총선 공천 결과 및 후보 자질 논란에 대한 한국성폭력상담소 논평

 

  

 

 

19대 총선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각 당은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많은 진통을 겪었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각 정당들은 하나같이 여성 후보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도덕성’과 ‘성범죄 전력’을 중요한 공천 기준에 포함시키는 등 젠더 이슈를 적극적으로 공천 과정에 포함시키는 듯 보였다. 그러나 몇 후보들의 성폭력 사건 관련 전력이 선거 과정에서 제기되었고 소속 정당에서 후보자를 옹호하거나 적극적인 해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따라서 ‘성범죄 전력자 공천 배제’가 정치권 스스로 젠더관점에 대한 성찰을 거치지 않은 구호뿐인 실천이 아니었는지 짚어 봐야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1. 성범죄 전력자 공천 배제는 반성폭력 의지 표명의 첫 단추일 뿐이다

 

성범죄 전력이 있는 후보를 공천에서 배제한 정당이 성폭력 문제와 관련된 불신을 모두 씻었다고 판단하는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성범죄 전력이 있는 후보를 공천 배제하거나 여성후보를 전략 공천한 것만으로 반성폭력 감수성을 가진 후보들을 공천했다고 볼 수 없다. 과거 성폭력 전력으로 탈당하거나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후보자들의 젠더의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만 보아도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 한 후보의 경우 과거 여성 기자를 성추행했던 국회의원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또한 ‘나꼼수 코피사건’으로 여성 비하발언 논란에 휩싸였던 민주통합당 후보는 과거 인터넷 방송 진행시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발언과 여성비하 발언을 수차례 했던 전력이 드러나 사과하기도 했다. 각 정당들이 공천심사과정을 통해 후보들의 젠더 감수성을 검증하려 한다면 ‘성범죄 전력자 공천 배제’ 이상으로 후보자들의 젠더의식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함을 증명한 사례들이 아닐 수 없다.

 

후보자 공천은 끝났다. 그러나 문제 후보자가 드러나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선거에서 패할 것을 우려하여 매우 수세적으로 대응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권자들도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성폭력 관련 문제들을 상대 후보 진영에 의한 비방으로만 인지하거나 사소화시켜서는 안 된다. 성범죄 등 성폭력 관련사건 발생 유무로 특정 정당의 반성폭력 의식 정도를 파악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제기 이후 정치권의 태도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2. ‘공천 결과 불복’과 ‘무소속 입후보’를 감행하는 후보들의 오만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공천배제에 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의 존재는 정치권의 젠더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이 매우 심각한 수위임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성폭력을 자행했던 정치인들이 성폭력 이후 어떤 태도로 시민들 앞에 나섰는가를 되돌아보면 아직 정치권의 갈 길은 너무나 멀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주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던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의원직 박탈 안건은 ‘죄 없는 자 그에게 돌을 던지라’는 선배 정치인의 말과 동료 의원들의 침묵으로 통과되지 못했다. 그는 공천 탈락 결과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여성 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벌금형과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던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5선 의원에 도전한다. 성폭력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들에게 각성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성폭력 전력 후보들의 과감한 출마는 오만함 그 자체이다. 정치권은 이와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국회의원 대상 실효성 있는 성폭력 예방 교육과 젠더 감수성 모니터링 제도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3. 당 내규에 따른 성폭력 사건 해결이 진보적 가치의 전부인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과거 민주노총성폭력사건 처리 과정에서 사건해결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당사자는 당내 절차를 준수하여 사건을 해결하였으며, 2차 가해자도 아닌 후보의 공천 취소 요구는 무리라고 반박하였다. 해당 후보는 공천결과 그대로 후보직을 유지하고 있다.

안정보다 변화를, 변화를 통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지향점이라면 성폭력 사건을 당 내규에 따라 처리했다는 것만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며 유권자들이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피해 당사자의 호소를 듣고 ‘내규에 근거하여 성폭력 사건해결을 완료하였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당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당내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을 만들어 잘 준수한 것은 공동체의 기본 덕목일 뿐이다. 성폭력 사건 해결 내규가 피해자 치유와 인권 증진을 위하여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넘어가지 않는 한 진보정당들은 ‘조직차원의 건강한 해결’을 내세워 피해자를 입막음하는 허울뿐인 내규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4. 인권이 함께하지 않는 정권심판과 쇄신은 의미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구호를 요약하면 ‘쇄신’과 ‘정권심판’이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변화’를 내세우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일상에서 숨을 조여 오는 많은 사회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당들의 ‘쇄신’과 ‘심판’은 상대 정치 집단과 정권에 대한 비난에만 집중하고 있다. 젠더, 인권정책과 같은 갈급하지만 외면되기 마련인 사안들을 적극적으로 정책화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정당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최근 성폭력 관련법들이 순조롭게 제·개정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관련법의 내용이 현실에 조응하지 않는 문제들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또한 성범죄 형량강화만 강조되다보니 유죄 선고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성폭력을 줄일 수 있는 실효적 방안에 대한 끈질긴 고민 없이 법 개정을 통한 성범죄 형량강화에만 몰두했던 기존 국회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하여 반성폭력 운동에 힘쓰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정규 교육과정 내 통합적 인권교육안 마련과 같이 실질적인 성폭력 예방 정책을 통하여 반성폭력 의식 확산에 힘쓰고, 친고죄 폐지를 통해 성폭력 범죄 신고율을 높이는 데 함께할 국회의원을 간절히 기대한다. 모든 정당과 19대 총선 당선자들이 젠더 감수성을 강화하여 정치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재구성해나간다면, 반성폭력 운동 단체와 국회가 함께 성폭력 없는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구현되도록 힘을 합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대 국회에서 이러한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2012. 04. 05.

 

(사)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