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병사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들에게도 안전한 군대를 만드는 것
-동반 자살한 28사단 병사들을 추모하며-
‘자살충동과 정체성 혼란’으로 병영생활을 힘들어하던 28사단 이모 상병이 스물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부대에서 우울증세로 힘들어하던 동료병사와 함께 동반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남긴 휴대전화 마지막 메모는 그가 홀로 느꼈을 고통과 두려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기조차 힘들게 한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는 두 병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누구보다 그의 죽음에 상처가 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언론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이모 상병은 입소 후 부대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과 8차례, 정신과 치료를 4차례나 받아온 ‘소위’ A급 관심병사였다. ‘자살충동과 성정체성 혼란’ 등을 이유로 사단 비전캠프와 군단 그린캠프에도 입소했다고 한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자살 가능성이 높은 두 병사를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보낸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해당 부대에서는 상담도 제공하고 비전캠프에 참여시키는 등 관심병사 관리를 제대로 해왔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관심병사’ 관리문제로만 협소하게 바라봐선 안 된다. 그동안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상담과 치료의 질보다 관심병사 지정과 같은 형식적인 절차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닌지 책임만은 면하고 보자는 이들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제2의 이 상병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관심병사 지정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지휘관들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고민하는 병사의 고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부대관리훈령의 ‘동성애자 병사 복무’ 규정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 지, 개선될 사항은 없는지 그 실태를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 상병의 지휘관들이 최소한 부대관리훈령 규정대로 성소수자 인권보호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면, 성소수자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상담을 할 수 있게 했다면 (부대관리훈령 제268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환경 속에서 자살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010년과 2013년에도 성정체성 고민과 자살 위험을 호소한 병사들이 결국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자살에 이른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국방부는 재발방지 약속을 하고, 책임을 다했다는 식의 해명자료를 배포하고 있지만 관심병사 지정과 형식적인 상담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부대적응 자체를 막고 있고 이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성소수자 병사들에게 손 내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등을 떠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윤일병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연일 폭로되는 군 인권침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은 군대가 과연 안전한 곳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13년에 실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욕구조사에 의하면 군대는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비우호적인 곳이라고 조사되기도 했다. (86.9%, 응답자수 3,158명) 우리는 이 상병이 다이어리에 남긴 문구처럼 “견디기 힘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성소수자 병사들이 군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관심병사’로 지정되어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리는 상황을 지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군 부적응자라는 낙인 속에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28사단 두 병사의 명복을 빈다. 국방부는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또한 성소수자 병사들이 인권침해에 노출되지 않고,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재발방지 대책마련에 힘을 써야 한다. 인간 존엄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군대는 또 다른 윤 일병, 또 다른 이 상병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하길 바란다.
2014. 8. 14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