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구조요청 무시하는 경찰과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며,
지난 1월 12일, 가해자 A씨는 별거중인 피해여성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여성의 전 남편과 자녀들을 인질로 삼아 하루 동안 감금하다 결국 무참하게 살해했다. 사건 발생 4일 전 피해여성은 경찰서에 찾아가 ‘가해자 A씨에게 흉기로 허벅지를 찔렸고, 예전부터 폭행을 당해왔는데 남편을 구속시킬 수 있느냐’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민원상담관이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안일하게 처리한 바, 결국 피해여성의 전 남편과 자녀가 무고하게 목숨을 잃고만 것이다.
본 사건의 피해여성이 도움을 요청한 곳은 안산상록서로, 지난해 11월 남편에 의해 살해 암매장당한 피해여성이 사망하기 전 여러 차례 신고했던 곳이다. 이에 지난해 12월 3일, 전국의 여성단체와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보호시설들은 관련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발하였고, 경기지방경찰청에서도 징계위원회를 열어 경찰관 1명을 해임하는 등 5명에게 내부 징계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발한 사건에 대해 진척이 없는 사이에, 그리고 징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정폭력사건을 안일하게 취급하는 사이에, 또 다시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잃고 말았다.
우리는 두 달도 채 지나지 않는 시점에서 또 다시 같은 경찰서의 잘못된 초동대응으로 가정폭력가해자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에 극심한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지난 2012년 수원에서 112로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건에 대해 “가정폭력인 줄 알았다”며 늑장 출동하여 결국 피해자를 살해당하게 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으며, 가정폭력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경찰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토로하는, 결국 피해사실을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된, 수많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경찰은 1.3%를 기억하라. 조직의 수치와 뼈아픈 반성으로 기억하라. 1.3%는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이다. 100명의 피해자 중 1명만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현실, 그나마 그 한 명에게도 제대로 된 지원을 못 하고, 또 안 하는 현실, 그리하여 피해자가 무참하게 살해당하게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기억하라.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을 대하는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폭력을 4대악으로 규정하고, 근절을 ‘선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전 국민에게 가정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가정폭력범죄를 신고하라고 독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기도내에서 발생한 가정폭력 사건은 2013년 5,179건에서 지난해 5,394건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이 지난 해 긴급임시조치를 한 건수는 243건으로 2013년의 268건보다 오히려 줄었다. 그만큼 경찰의 적극적인 현장개입이 줄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현장에서 체포될 때 재범률이 현저히 감소한다. 가정폭력이 ‘집안 일’이 아니라는 것,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국가가 몸소 보여줄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즉시 현장에 나가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여 범죄수사에 임하도록 하고 있는 응급조치를 넘어, 출동한 경찰이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때 가해자를 격리하거나 100M이내 접근금지를 취하도록 하고 있는 긴급임시조치를 넘어 체포우선주의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가정폭력범죄를 처벌이 아닌 교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당장 멈춰야 한다. 그중 대표적인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는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제도로 가정폭력을 범죄가 아닌, 개인적 성행의 문제, 그리하여 성행을 교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상담으로 가정폭력 재범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없다.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상담으로 폭력을 교정할 수 있다’는 섣부른 기대만 줄 뿐이며, 결국 피해자들을 언제 또 폭력이 발생할지 모르는 가정에 머물게 하거나, 그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본 사건을 “사이코 패스”가 저지른 “반사회적 일탈 행위”로 둔갑시키는 언론에게 당부한다. 본 사건은 우리 사회가 막을 수 있는 예견된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자들의 의식과 의지의 부족, 그리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 비참하고도 무능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가정폭력범죄는 사회적 개입으로 막을 수 있는 범죄이다. 따라서 가정폭력에 대한 통념을 온존 강화시키는 보도는 지양하고,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변화를 위해 앞장서길 바란다.
국가는 가정폭력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전국의 여성단체, 가정폭력상담소와 보호시설은 슬픔과 분노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가정폭력사건에 미흡하게 대처한 관련 경찰과 책임자 모두를 처벌하라!
2. 가정폭력가해자 체포우선제도를 도입하라!
3. 가정폭력가해자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를 폐지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라!
4. 경찰은 미온적인 가정폭력사건처리 관행을 철저히 반성하고, 가정폭력 업무체계를 전면 쇄신하라!
5. 정부는 실효성 있는 가정폭력근절 대책을 수립하고,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즉각 실시하라!
2015년 1월 27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장애여성공감,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전국135개소),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전국64개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국123개소), 전국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전국25개소),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전국27개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전국25개 지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