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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육아하는 페미니스트 모임 : 육모임 그 첫 번째 만남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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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모임] 육아하는 페미니스트 모임 육모임, 그 첫 번째 만남 후기 


7 8일 월요일 점심 서울 합정역 인근에서육아하는 페미니스트 모임(육모임)’이 열렸습니다. 참여한 페미니스트는 모두 8. 이제 갓 세 돌을 넘긴 아이를 키우는 초보 양육자부터 아이를 서른이 넘는 성인으로 키워낸 선배 양육자까지 다양한 인원이 모였습니다.


설레는 분위기에서 첫 인사가 시작됐습니다. 자기소개를 겸한 첫 인사에서신선한 느낌을 받았다면 이해가 가시려나요? 이제 갓 네 번째 생일을 맞는 쌍둥이를 키우는 저에게 자기소개는 정말 오랜만에 경험한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새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주로 아이들의 동급생 부모, 유치원 교사 등이었기 때문에 아이소개는 한 적 있어도 자기소개는 거의 한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를 소개하려니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참석한 페미니스트 엄마들에게서도 조금은 어색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의 성을 모친의 것으로 정정한 혜윤님의 소개를 들으며 이야기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양성쓰기를 실천한 적 있었지만 마치 별명처럼 썼던 것일뿐, 실제로 모친의 성을 쓰기로 결심한 성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되짚어보는 엄마 성 쓰기의 의미는 또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엄마로서 저는, 가족에서 제 지위와 역할·위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었을까요?

 

혼인신고서를 적으면서도 한 번도 엄마 성 쓰기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던 저로서는 괜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아마 많은 양육자들이 그렇듯 저희 아이들도 외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자라고 있거든요.


점심식사를 겸한 육모임은 란님이 준비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서로 털어놓는 것으로 본격적인 대화의 장을 열었습니다. ‘육아란 무엇일까한 문장으로 정의해달라는 첫 질문은, 적절했지만 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은희님이 내놓은 정답이 없는 것이라는 말은 육모임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제 입에서 맴도는 답이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육아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한 경로가 있다고 믿고 올바른 모델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에 따라 이렇게 키워야 해라는 제 고집이 아이에게는 폭력적인 것이 아니었을지 멈칫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성장경로와 성격, 정체성을 인정하겠다고 결심했던 자칭 페미니스트엄마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다가 얼마 전에 읽은 자료를 꺼내 보았습니다. ‘육아에는 정답이 있다는 한 육아 전문가의 주장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성평등한 육아에는 정답이 있을까요?


육모임의 많은 이야기는 이렇게 모임이 끝나고 나서도 생각할 지점을 마련해줬습니다. 저는 지금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벌써 자리잡고 있는 딸 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신데렐라가 내딸을 잡아 먹었다’,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인 페기 오렌스타인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결혼하기도 전의 일입니다. 한동안 책장에 꽂혀 있기만 하던 책을 얼마 전 새롭게 꺼내 읽었습니다.


저는 남매 쌍둥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변명하자면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보수적인 어머니와 함께 공동육아를 하느라 성평등한 육아를 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공주님에 대한 로망을 키우고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두 손을 모으며 빙글 춤을 추는 시점에 이르게 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페미니스트 엄마라는 단어가 성립할 수 있을까요? 육아 속에서 페미니즘은 실천 가능한 것일까요?


사실 이번 육모임에서 우리는 정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했지만 페미니스트 엄마가 아무리 이상적인 성평등 육아를 실천하더라도 불평등한 사회의 불평등한 인식 속에서 페미니즘은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동안 육모임의 이야기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토로하는 시간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마음 먹는다면 언제나 유해 영상물을 접할 수 있습니다.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친구는 쉽게 만날 수 있죠. 페미니즘은 마치 악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 보았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번 육모임에서 우리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처 다 끝내지 못했습니다. 언제까지고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법, 정해진 모임 시간이 끝날 무렵이 되자 다들 조급해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엄마들의 브런치 모임은 많지만 페미니스트 엄마가 모이는 일은 없거든요. 아직 못한 이야기가 많은데,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괜히 아쉬워졌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자녀를 기르는 선배 페미니스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뜻 깊고 유익합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이번 육모임이 최근 가진 육아 모임 중에 가장 의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육모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라자면 육모임이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는 페미니스트 엄마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 있는 작은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모든 육모임 참석자들이 동의했듯 저희는 다시 만나서 성평등한 육아, 페미니즘 육아를 고민하고 방법을 알아나가는 노력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다음 모임은 잠정적으로 9월로 결정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엄마들에게는 7월과 8, 여름방학이라는 거대한 과제가 다가오고 있거든요. 저도 당장 다음주부터 과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아마 이렇게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또 한뼘 자란 아이들과 한뼘 더 자란 엄마인 저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무언가를 가지고 다시 육모임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 육모임 첫 번째 만남 후기는 만 4세 남매 쌍둥이를 육아하는 페미니스트 '요다'가 작성했습니다. 

 


[안내] 육아하는 페미니스트 모임, 두번째 만남은 9월 6일 오후 12시 30분에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