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잊혀지는 존재들과 연결하고 연대하기
- 제7차 여성회의 후기 <페미니즘 ∞ 기후정의: 연결하고 연대하기>
지난 11월 13~14일,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한 제7차 여성회의에 다녀왔습니다. 여성회의는 2년마다 전국의 여성운동 활동가가 모여 여성운동의 전환을 모색하는 한국 여성인권의 공론장입니다. 이번 회의는 <페미니즘 ∞ 기후정의: 연결하고 연대하기>를 주제로 기후운동 활동가가 함께 참여하였고,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 속에서 지금 여성운동의 현장은 어떠한지 나눴습니다. 더불어 여성주의 관점에서 기후정의를 논의하고, 실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연대하는 매우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는 여성회의에서 만날 여성운동가들과의 만남이 기대된다는 지리산, 같이 숲을 걷고 산을 오르내리는 힘으로 강간문화를 바꾸고 싶은 오매, 새로운 지역으로, 새로운 책과 게임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랑, 디지털 성폭력과 성폭력 해결의 제도화에 대해서 최근 고민이 많은 호랑, 맥주를 좋아하고 단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인 동은, 연대의 힘으로 살아왔고 이제 그 힘을 나누고자 하는 수민까지 총 여섯 명의 활동가가 참여했습니다.
회의가 개최되는 천안 연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조금 벗어나니 창밖에는 군데군데 가을이 묻어났습니다. 도심에서 보기 어려웠던 단풍들을 통해 11월의 가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작고 굽이진 도로를 지나 천안 연수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보다 온전한 가을을 만났습니다. 빨간 단풍나무, 노란 은행나무, 주황빛으로 물든 붉나무 등 잠시 잃어버렸던 가을과 재회하였습니다.
여성회의 주제처럼 기후위기로 점점 잃어가는 ‘봄과 가을, 꿀벌, 계절을 잊은 꽃과 사라진 단풍’, 사라지고 잊혀지는 존재에 대해 깨달으며 1박 2일의 여성회의에 참여하였습니다.
회의장에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건네받은 것이 있었는데, 개인 이름이 새겨진 볼펜이었습니다. 그 볼펜을 보며 참석자 각자가 하나의 존재로 오롯이 인정받는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대상화되고 분리되고 소외받던 사회에서 온전한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 한 명 한 명 개인이 모여 여성운동이 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 개인은 기후에 포함된 하나의 자연이라는 섭리를 느꼈습니다. 결국 기후정의는 여성정의였고, 스스로를 지키는 일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안내문의 절반 이상이 참가자 이름과 소개로 채워진 것도, 나를 지키고, 우리를 지킨다는 비슷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기후정의는 왜 페미니즘의 문제인가], [기후행동을 주도하는 페미니스트들], [기후정의를 위한 페미니스트 연대]라는 큰 방향 속에서 각자의 위치와 현장의 경험을 나누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였습니다. 일상이 된 기후 위기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하고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농어업은 탄소를 흡수하는 유일한 산업으로 “땅을 살리면 매년 인류가 만들어 낸 온실가스 1/3을 그 땅이 흡수할 수 있고”,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농생태학’, 그들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생산체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 ‘식량주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도화된 농업산업, 식물공장을 짓고, 스마트팜 단지를 만들고, 대량 식량수입을 통해 농민의 권리, 씨앗의 권리, 땅에 대한 권리 등이 점차 배제되고, 그 안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무비닐 농사, 보리와 생강의 사이짓기 등을 통해 더불어 짓는 농사를 실천하는 여성농민들을 보며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모두가 빠른 속도를 낼 때 올곧게 자신들만의 적당한 속도로 꾸준히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유발하고 대량폐기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이고, 대량생산을 위해 자본의 자원과 노동력 착취가 일어나고, 소비와 소비를 미덕으로 장려하는 사회에서 대량소비를 위한 과노동이 일어나고, 결국 감당 못할 쓰레기로 인해 대량폐기가 일어나고 환경이 파괴되는 구조라는 것, 자본 시장에서 장기간 노동과 24시간 호출을 감당할 수 있는 노동자를 선호하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별고정관념과 돌봄전담자가 된 여성은 노동자로서 이등노동자로 취급받는 상황에서 여성노동자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 대량생산과 환경파괴, 여성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구조는 모두가 여성노동자로서 살아온 시간을 통해 보다 친숙했고 경험했던 일이라 공감하고 인상깊었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젠더폭력과 군사산업, 기후위기와 세대 간 정의, 풀뿌리운동과 초국적 연대, 탈성장과 정의로운 전환, 마을에서 만나는 기후 행동 등 다양한 주제 속에서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뜨거운 회의는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기후정의’를 연결하고 실천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틀간의 여성회의는 그저 있는 그대로 하늘과 땅과 나무의 존재로 아름다웠고, 우리의 존재는 순간순간을 존중받았습니다. 그것은 작은 간식에도 담겨있었고, 회의장 공기에도 스며있었습니다. 나이와 지역, 경력, 소속과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연대가 되는, 페미니즘 확장의 시간이었습니다. 다 함께 훌라를 배우고 아침에 숲에 나와 춤을 추는 시간은 자연을 느끼고, 나의 몸과 감각을 되돌아보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기후정의는 가부장적 문화의 얼굴을 한 파괴적인 수많은 요소, 재난, 고난에 대해 맞서는 여성들의 싸움의 연장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존재만으로 소중한 상담소 활동가들의 후기를 모아 함께 나눕니다. 2년 후에 다시 만나요.
오매: 비건 간식과 식사가 감동적이었어요. 연수원 인근 지역 이주여성 모임에서 케이터링 오도록 계약하셨다는 이야기, 단체 식당에서 김치도 비건으로 담가주시도록 협의했다고 들었어요. 준비과정이 뚝심과 의지가 정성이었구나 싶었고, 영혼이 배부른 1박 2일이었습니다.
유랑: “전쟁과 기후위기: 군사산업의 지역화에 대한 고민들” 발표가 인상 깊었어요. 평소 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였는데 전쟁을 하나의 국가로 비유하며 전쟁이 발생시키는 탄소량을 통계로 본 것이 인상 깊었고, 수도권 중심적인 한국에서 방위산업이 지역의 핵심 산업이 되어가는 사례를 보며 서울 거주자로서 고민이 깊어졌어요. 세상에 알아야 하는 다양한 의제가 많고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구나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동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여러 페미니스트 활동가를 만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미 많은 지역, 단체에서 젠더관점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구나, 기운을 받아서 상담소에서도 어떤 활동을 해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탈성장과 관련한 세션을 들었는데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이런 거창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생태 한계 안에서 맛있는 거 머고 작당모의하고, 자연 속에서 춤추는 삶… 좋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떠올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호랑: 여성농민에 관한 이야기 “기후위기의 최전선, 여성농민의 권리를 말하다”가 너무 좋았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발제를 준비하면서도 왜 한국사회의 이야기를 많이 못 담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이 됐어요. 그리고 단풍이 아주 그냥 좋았습니다. 예쁜 노랑과 빨강을 많이 담아 왔네요.
* 참고로 호랑은 “기후위기 시대, 젠더폭력에 맞서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대표해 발표하였습니다.
지리산: 여성회의때마다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의 열기로 힘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각자의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존중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뒷풀이 마당에서 AI에게 성명서를 맡길 수 있느냐를 이야기하다가 AI 슈퍼컴퓨터를 작동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고, 그 열을 식히느라 바닷물에 담그면 바다생물이 죽고 바다 온도가 올라가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기후위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해야할지 고민하고 다짐하게 했어요.
이 글은 상담소 회원이자 활동가 수민이 작성하였습니다.